"<광개토태왕> 통해 우리 시대 필요한 리더십 고민"
[현장공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대하사극 표방
▲ KBS 1TV 대하사극 <광개토태왕> 제작진은 21일 기자들과 속초 세트 근처에서 만났고, 22일 촬영 현장을 공개했다. 이날은 고운(김승수 분)이 후연을 떠나 고구려로 가려고 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 KBS
"진정 아버님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컷! '정녕'이라고 나와 있는 대로 해줘야지."
KBS 1TV 대하사극 <광개토태왕> 촬영이 한창인 속초 세트장. 후연에서 고구려로 떠나려는 고운(김승수 분)을 막는 연기자의 대사를 김종선 감독이 정정해줬다. 대본에 나와 있는 '정녕'이라는 단어와 달랐기 때문이다. 토씨 하나라도 의도된 것과 다르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감독의 치밀함이 드러났다.
▲ <광개토태왕>을 이끄는 수장, 김종선 PD는 <왕과 비> <대조영> <태조 왕건> 등 굵직한 작품들을 연출해 온 사극의 거장으로 불린다. ⓒ KBS
사실 광개토태왕을 주인공으로 삼는 이야기의 장단점은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이라는 것. 철저히 공인된 기록을 바탕으로 하면서, 남녀노소가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시골에 있는 어머니도 알아들을 수 있게 하라"고 정확한 대사 전달을 요구하는 김종선 감독의 말마따나 <광개토태왕>은 쉬운 대하사극을 표방한다. 중년 남성들에게만 인기 있는 장르라는 고정관념을 깨면서도 퓨전이 아닌 정통 역사 드라마가 그것이다.
같은 왕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김종선 감독이 "비교를 해본 적이 없다"는 MBC의 퓨전 사극 <태왕사신기>와는 자연히 분위기가 다르다. 김종선 감독은 퓨전 사극의 길을 열었던 <허준><대장금><동이>의 이병훈 감독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고 맛있게 끌어가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호평하면서도 "그분은 그분의 스타일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태곤, "아무도 흉내 못 낼 캐릭터 만들어갈 것"
아직 광개토태왕이 되지 않은 담덕을 연기하는 이태곤은 실제로 보니 화면보다 풍채가 더 좋았다. 작년 <황금물고기> 때보다 체중을 6kg 가량 더 늘려 지금은 86kg에 달한다는 그는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하던 배포 큰 광개토태왕의 이미지와 꽤 잘 어우러졌다.
▲ <광개토태왕>에서 주인공인 담덕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이태곤은 <연개소문> 이후 두 번째 사극 출연이다. 이태곤은 "45회 이후 담덕이 왕위에 오르면 이전과 다른 분위기의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 Kbs
"감독님과 이야기할 때 젊게, 화끈하게 가자고 했다"는 이태곤은 무엇보다 남자답고 시원한 담덕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의 연기에 대해 "시원시원해 좋다"는 평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그는 앞에 있는 사람이 귀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 내지르고, 연기할 때 주변에서 '미친 애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패기 넘치는 모습을 강조해왔다. 그에게, 수많은 전쟁을 하고 천여 개의 성을 뺏을 정도의 기와 포부를 가진 광개토태왕은 그렇게 표현해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다보니 고생스러운 장면일수록 이태곤에게는 인상 깊게 남았다. 물속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장면은 무려 4.5m 깊이의 풀에서 촬영했지만 수영강사 출신이라는 이력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를 대역 없이 해낸 그의 연기 덕분인지 앞으로 수중신이 한 번 더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외에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이태곤은 30회에서 죽음을 맞이한 거란 족장 타다르와의 맞대결을 꼽았다. 또, 자신을 해치려 했던 사갈현과의 대결신 또한 그가 혼신의 힘을 다 한 장면. 하지만 공교롭게도 추석 연휴에 방송돼 오히려 시청률이 떨어졌다고. 이태곤은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민족 대이동이 무섭더라"고 회상했다.
담덕의 강성을 부드럽게 유화시켜 주는 것은 그와 국혼이 예정돼 있는 도영(오지은 분)과의 로맨스. 하지만 이태곤은 "로맨스가 극의 흐름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오히려 "로맨스는 백제와 후연과의 골이 커져 광개토태왕이 정복전쟁을 하게 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도 "나라는 굉장히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여자는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에 가슴이 아프다"는 이태곤은 역할에 많이 빠져 든 모습이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광개토태왕이 또 사극으로 만들어질지 모르겠지만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 겁니다. 절대로 내가 했던 광개토태왕을 아무도 흉내 못 내게끔."
얼굴 붉히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여유로운 촬영 현장
<정조암살미스테리 8일><신기전><선덕여왕> 등의 사극에 출연했던 박정철은 <광개토태왕>에서 백제의 아신 역으로 최근 합류했다. 광개토태왕의 남하정책에 맞서지만 번번이 패했던 아신왕을 연기해서인지 인물에 대한 아쉬움을 갖고 있었지만, 욕심도 강하게 느껴졌다. 이미 5개월 이상 촬영을 해온 다른 연기자들과 걸음을 맞춰야 한다는 중압감이 오히려 촉진제가 되는 모양이었다.
"신중하고 치밀한 성격의 아신은 욕심과 추진력도 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것 같아요. 담덕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비운의 왕이죠. 아신왕은 14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한 번도 광개토태왕을 이기지 못했어요. 수차례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심에 위쪽으로 올라가지만 늘 패배하고 내려왔죠. 45회부터 담덕이 왕이 되면 백제와 본격적으로 붙을 텐데, 아신으로서는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아요. 백제인들이 원래 성격이 급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우스갯소리지만 아신은 결국 화병으로 죽지 않았을까요."
▲ 배우 김승수는 MBC 드라마 <주몽> 이후로 5년 만에 <광개토태왕>으로 사극에 다시 출연했다. ⓒ KBS
그가 다시 사극에 도전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사극의 대가 김종선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랑하는 <광개토태왕>의 장점은 김 감독이 고집하는 여유로운 촬영 스케줄이다. 최근 생방송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스케줄이 빡빡한 MBC 사극 <계백>과 달리 <광개토태왕>은 무려 10회의 여유분이 있다고.
김승수는 "그나마 급하지 않아서 얼굴 붉히지 않고 웃으면서 연기할 수 있다"며 "촬영 현장이 열악한 첫 번째 이유는 대본이 늦게 나오기 때문인데 우리는 그런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감한 이야기를 한 것에 곧 멋쩍어 했지만, 현대극보다 힘든 점이 많다는 사극 현장에서 중요한 내용임은 분명했다.
김승수의 말에 따르면, 이제 32회를 지난 <광개토태왕>은 100회 방영은 기정 사실화됐다. 적어도 내년 8월까지 긴 호흡을 끌고 가야 한다. 김종선 감독은 "광개토태왕을 통해 우리 시대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 지 생각할 수 있도록 그려질 것"이라고 앞으로의 그림을 예상했다. 그 큰 그림의 그 시작은 담덕이 태왕으로 올라서는 때부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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