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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 쇼'에 깜짝... 사람들 앞에서 불구자 연기

등록|2011.09.26 08:36 수정|2011.09.26 08:36

지하철 아무도 도와주는 손길이 없다. 가짜 연기를 눈치 채서인가. 이런 가짜 연기 때문에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조차 외면받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 김학섭


9월 25일, 우리 내외가 교회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막 온수역을 지났을 때였다. 문 옆에서 유심히 열차 안을 살피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의 손에는 사각형의 빈 통이 쥐어 있었다. 바로 앞 칸에서는 중년 남자가 물건을 팔고 있었다. 청년은 그 사람을 유심히 살피고 있더니 그가 다음 칸으로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그 자리에 엎드렸다. 뭣을 하려는 건가?

사람들이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청년은 아무 거리낌 없이빈종이 박스를 앞으로 밀며 무겁게 몸을 끌고 앞 칸 통로로 엎드려가는 게 아닌가. 마치 다리를 못 쓰는 사람처럼, 나는 차라리 저 풍경이 연극이었으면 했다. 그는 그렇게 엎드려 가더니 통로 가운데서 죽은 듯이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동정을 구하려는 것이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이쪽 칸에 있는 사람들은 그 청년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다 목격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그는 몸이 건강해 보이는 청년임을 이쪽 칸 사람들은 다 봤다.  그의 '일인 연기'를 보자 모두 기가 막한 얼굴을 했다.    

지하철 안 사람들은 냉정했다. 그에게 아무도 동정을 베푸는 사람이 없었다. 멀쩡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혐오의 눈초리로 바라볼 뿐이었다. 심지어 어떤 승객은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아무 일이라도 하지 무슨 짓이냐고 분개까지 했다. 그 청년은 그 소리를 들었을 터인데도 못들은 체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 주일날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을지로 삼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청 쪽으로 가는 데 어떤 청년이 몸을 끌고 힘겹게 지하철 통로를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벌렸다. 여자들은 서슴없이 동정을 베풀었다. 물론 나도 동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잠시 후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지하철이 시청역에 당도하자 걷지 못한다는 그 청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건너편 열차에 오르는 것이 목격 되었다. 지하철 칸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모두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청년의 모습 때문에 기분이 우울했다. 

그리고 오늘 또 우연히 이런 일을 목격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뭔지 알고 싶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혹여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연극을 한다면 하루 속히 손을 떼라고 권하고 싶다. 열심히 땀 흘려 돈을 모으는 일에 매진하라고 권하고 싶다.

튼튼한 몸은 건강한 재산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이 있다. 처음에는 비록 땀 흘리는 일이 어렵고 힘이 들겠지만 나중에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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