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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는데 쌀 곳이... 그게 '원전'입니다

[강연]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광화문과 강남에 원전 짓는다면?"

등록|2011.09.29 11:10 수정|2011.09.29 18:01

▲ 강연을 하고 있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제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다면 광화문과 강남에 원자력발전소를 짓겠다는 공약을 내걸겠습니다. 원자력 발전은 보통 생산 전력의 1/3만을 사용하고 나머지 2/3은 폐열로 처리합니다.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울산 등 저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전력사용량이 많은 서울에 원전을 세워 발전의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2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원관 중강당에서 열린 '원자력과 민주주의' 강연회에서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던진 말이다. '원자력체제,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연설한 김 발행인은 서울 같은 대도시의 번영을 위해 지방을 희생시키고 있는 현실을 재치 있는 입담으로 꼬집으며 시종일관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참석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열렬하게 호응했다.

"핵발전소에서는 평소에도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발전소 근처에서 오래 산 부부들은 아기를 갖기 어렵습니다. 도시에 발전소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도시는 지방의 희생을 통해 전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처럼 원자력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배가 터질 것 같지만 배설할 곳 없는 핵폐기물

서울에는 이제 곧 폐쇄될 예정인 당인리 발전소 등을 제외하면 거의 발전소가 없다. 가장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도시가 전력을 거의 생산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대신 멀리 떨어진 고리, 영광, 울진, 영광, 월성 등에 위치한 핵발전소에서 전기를 끌어와 쓰고 있다.

김 발행인에 따르면 원전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도 원전 주변 주민들은 알게 모르게 방사능 피해를 입고 있다. '방사능공중보건프로젝트'라는 미국의 민간 환경문제 연구기관은 2000년 4월 보고서에서 원자로가 폐쇄된 뒤 주변 지역 유아들의 사망률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1987년에서 1997년까지 폐쇄된 미국의 7개 핵발전소를 대상으로 한 이 연구는 반경 80km 이내에 살고 있던 생후 한 살까지의 유아 사망률을 조사했다. 1997년 미시건주 빅록포인트 발전소가 폐쇄된 이후 주변 지역의 유아 사망률은 54.1퍼센트나 줄었다. 이는 암, 백혈병, 이상출산 등 방사능 오염 피해로 여겨지는 질병 원인이 제거됐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김 발행인은 "원자력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원전은 하청·재하청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쓰고 버리며, 민심을 황폐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핵발전소의 위험 구역에 투입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점잖게 나와서 성명서를 읽으며 유감을 표하는 이들입니까? 아닙니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사례로 보면) 주로 하청·재하청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고농도 방사능 피폭위험이 상존하는 곳에서 작업을 합니다. 원자로 융해나 연료봉 폭발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필사적인 작업에 매달려 있는 현장 작업자들은 최하층 노동자들입니다."

김 발행인은 얼마 전 일본 언론에서 사고현장에 투입된 노동자를 인터뷰한 예를 들었다.  일본 정부를 그들을 '영웅'이라고 칭송했지만 노동자는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살기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최하층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원전이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원전 중심의 전력 생산은 현 세대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를 재난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핵폐기물을 치울 곳이 없습니다. 현재의 원전은 일단 밥은 먹었는데, 쌀 곳이 없어서 얼굴이 빨개져 있는 모양새입니다. 수십만 년이라는, 인간에게는 거의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핵폐기물의 방사능이 소멸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과 장소가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핵발전소는 핵폐기물을 버릴 곳을 찾지 못한 채 발전소 부지 내에 핵폐기물을 엉거주춤 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 발행인은 바다로 배출되는 원전의 온배수(냉각수로 사용된 뒤 버려지는 따뜻한 물)도 바다속에서 바로 확산되지 않고 '핫스포트'란 열덩어리가 되어 대륙붕의 생물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궁극적으로 해양생태계 전체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 ⓒ 이화여성신학연구소


"핵무기 보유에 대한 미련이 원전 집착 낳아" 

"이제 핵발전은 전력생산 방식 중에서도 가장 값비싸고, 위험하며, 비효율적인 방식이라는 것은 인정할 겁니다. 그런데 왜 핵발전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요?"

김 발행인은 크고 작은 핵사고로 인한 재앙에도 많은 국가가 핵발전소를 포기하지 않고 기를 쓰고 증설하고자 하는 데는 핵무기 보유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원자력발전과 핵무기는 쌍둥이입니다. 원자력발전을 통해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의 경우도 원전을 건설하면서 핵무기 보유라는 군사적 야심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핵무기 보유에 대해선 진보와 보수가 은근히 동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핵기술이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핵폭탄 덕분에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 가능했다는 잠재적 인식이 한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김 발행인은 "핵발전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해온 기득권 체제가 완강히 버티고 있고, 핵기술에 대한 대중적 환상도 여전히 남아있어 핵발전시스템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천적 대안으로 '시민합의회의'와 '정전의 날'을 제안했다.

"우리가 이렇게 떠들어봤자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원전 시스템을 포기한 나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이 그렇지만 특히 주목할 나라는 덴마크입니다. 덴마크는 아예 원전을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오일쇼크 등의 이유로 원전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덴마크는 지방분권이 활발한 나라다. 자치적·민주적 방식으로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능력과 습관을 키워왔다. 원전문제가 중요한 사회현안으로 떠오르자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않고 시민합의회의를 통해 많은 시민이 직접 의견을 내 '원전 거부'를 결정했다.

"궁극적으로는 전력소비를 줄이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일주일에 하루는 '전기 없는 날'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전기가 없으면 못 산다고 하지만 막상 전기를 쓰지 않고 지내보면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여성신학연구소가 녹색평론사, 한국교회환경연구소와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강연회는 29일까지 계속된다. 28일에는 장윤재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가 '선악과, 원전, 그리고 생명의 미래', 문규현 신부가 '원전과 생태민주주의, 하느님 나라'를 주제로 강연했다. 또 29일에는 일본의 핵 재처리 공장 건설에 저항하는 지역주민들의 투쟁을 기록한 영화 <로카쇼무라 랩소디>가 상영되고 감독과의 대화시간도 마련된다. 행사기간 동안 이화여대 중강당 앞에서는 다큐사진작가 모리즈미 다카시의 반핵 사진전도 열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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