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마음이 곧 세상의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정치풍자소설 '대권무림' 35화] 에피소드 4 - 묵언의 바다, 백성들의 소리 없는 외침
적이 가까이에 있으면서 조용한 것은 험한 지세를 믿기 때문이다. 멀리서 싸움을 걸어오는 것은 아군의 진격을 바라는 속임수다. 적이 험한 지형을 버리고 평지에 있으면 지형상 어떤 큰 이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나무가 움직이면 적이 다가오는 것이요, 많은 풀을 쌓아올리는 것은 아군의 눈을 흐리게 하려는 속셈이다. 새가 날아오르면 적의 기습부대가 근접하는 신호이며, 짐승이 놀라 달아나면 적의 복병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온 사방에 먼지가 높고 바르게 일면 적의 병차가 오는 것이요, 먼지가 낮고 넓게 퍼져 일어나면 보병들이 다가오는 것이다.
<손자병법>의 '행군편'에 있는 말이다. '조짐'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앞서서 알 수 있는 징후를 말한다. 하여 징후를 잘 살펴 도래하는 변화를 읽을 수 있고 닥쳐오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 조짐을 잘 읽으면 전쟁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적절한 대비가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을 미리알고 대피하는 짐승들이나, 잠수함의 산소 함량을 예측하는 토끼나, 배의 침몰을 예측하고 달아나는 쥐 떼들과 같은 판단력이 인간에게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 갬블러(도박사)들에게 우선시되는 도박철학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를 파악하는 일이라 한다. 당연한 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금 액수보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도박 자금이 훨씬 적다면 게임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나에게 백만 원이 있는데, 게임하는 상대가 고작 십만 원을 가지고 도전해 온다면 할 이유가 있겠는가? 십만 원을 따기 위해 백만 원을 베팅할 바보는 없다. 만약 진다면 그것은 곧 가신의 탕진이요, 상대방에게 그냥 주는 헌금인 셈이기 때문이다.
꼬장미령 영선구로나발진이 모래바람만이 단풍잎같이 혀끝에 걸려 입안을 까끌거리게 하는 한강하구의 대련 장소에 나타났을 때, 중구모모스 경원미모령과 무념무상 원순희망제작창은 이미 도착하여 한 사람은 호흡을 정련하고, 또 한 사람은 검 끝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그리움이 전신을 휘감은 상태의 기다림은 수만 볼트의 에너지가 공급된 역동으로 엔돌핀이 형성되어 지루하지 않지만, 긴장의 끈을 조이고 정식 대련에 앞 선 공력원소를 탐색하려고 비공식적(오프 더 레코드)으로 만나는 자리는 불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자나 한비자가 경륜을 펼치고 몽테스키외를 거쳐 마그나카르타로 귀결된 법치수호 깃발의 정당성과 법치 무림의 외연을 지나치게 신뢰한 석연공자의 마차 바퀴가 빠지자, 종자 좋은 천리마를 타고 고속으로 달려 온 경원미모령은 무혈입성이었고, 이미 시민 무림의 절대 지지 완장을 팔뚝에 두르고 경철대안차랑과 철수바이러스공이 끊어 준 고속철도 편으로 가장 앞서 도착한 원순희망제작창은 이미 한나절도 더 지난 기다림으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미 추분도 지나 밤과 어둠의 전령이 강안을 어슬렁거리는 깊어가는 가을의 바람은 쓸쓸했다. 사위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하였고, 간혹 모래나 자갈을 가득 실은 대형 덤프트럭이 강바람을 몰아세우며 지나갈 때 들리는 차량의 소음을 제외하곤 물결소리도 잠자는 듯 했다.
밤섬을 지날 때 졸던 눈을 잠시 떴었던가? 민주공방의 내부혈전은, 한물 간 도반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고만고만한 권법들을 수련도 없이 사용하는 탓에 쉽게 지나간 듯 보였으나, 영선구로나발진은 미처 도력에 완급을 조절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끝난 예비 비무 탓으로 오히려 허탈하고 허전한 기운이 피로를 몰고 와 마치 부지불식간에 오십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는 듯했다.
"시장에 들러 장사를 해보니, 서울공국의 백성들이 얼마나 좋아들 하던지. 아, 글쎄 상인들은 장사도 마다하고 불구경, 손님들은 장보기도 포기하고 왁자글왁자글하는데, 아유 이건 뭐 인기가 하늘을 찔려요.
가브리엘에서의 목욕 봉사로 말들이 많다지요? 왜 아픈 데를 건드리실까. 내 딸이 다운증후군인 거 모르세요. 원래 오프 더 레코드 하려던 봉사가 노출되니 어떻게 해. 원래 진정한 무도인의 주위에는 도전자들의 시기가 있기 마련. 자, 형조의 중요직책을 거쳐 무림의회의 지도자로 성장하기까지 나의 폭풍 과거는 세인들이 인정하는 바, 무공수련이란 마치 시골 논에서 아이들이 열차가 지나간 뒤에도 한참을 흔들어대는 손짓처럼 아쉬움이 남는 법.
허나 인지찰즉무도(人至察則無徒)라고 타인의 허물을 오래 경계하면 따르는 자가 없는 것. 나의 무림철학에는 타인의 결점이나 부족함도 포근하게 감싸주라는 <채근담>의 설법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원순 공, 영선 령. 이 정도 공력이면 이 원조모모스 서울특별공국의 맹주로 등극해도 뭐 어색하진 않겠지요?"
원순희망제작창은 눈을 감고 가양대교인가, 행주대교인가, 한강의 다리 중 세인의 관심에서 제법 무심한 다리를 지나는 리어카들의 은륜소리를 들으며 침묵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아파트와 층고를 알 수 없는 건물들의 사이를 휘돌던 바람이 가로등 불빛에 녹아 모래톱에 깔리자, 관용의 힘으로 천하를 위무하며 무쇠도 녹이리라던 시민 무림의 지도율사는 무념무상한 미소를 희미하게 그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 원래 무공을 수련하는 자의 기본은 엄청난 양의 독서입니다. 정련된 호흡으로 완성된 신체의 원력처럼 책 읽기를 통한 지식의 함양은 이 나라 최고의 무술비권인 '무예도보통지'의 완전정복을 지나 단군천황제가 저술한 천하 세상 하나 밖에 없는 비권인 '천룡비결록'의 완성을 가능하게 합니다.
쉽게 돈이나 버는 세속의 삶을 버리고 은자하다 보니 많은 것이 달아났으나 책만은 나를 버리지 않더군요. 매화와 난초, 그리고 국화와 대나무에 흐르는 절개처럼 나를 지지해주는 그 서책들의 마음 씀이 하도 기꺼워 나도 서고를 크게 장만하여 그들을 지켜줬습니다.
서울의 백성들과 나의 '도덕치명권'을 신뢰하는 펀드 가입자들께서는 나에게 이번 비무대회의 출전료를 전액 마련해 주셨습니다. 결국 낡은 무도의 윤색된 정신을 버리고 새로운 무공과 질서로 거듭나려는 백성들의 자발적 노력이 서울특별공국의 위상을 새로 세우고, 나아가 대한민주무림대국의 청사진을 완성하라는 채찍질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나, 희망제작창. 이제 조건 없는 국민경선 참여로 서울특별공국의 백성들의 생각과 희망이 온전히 포장되는 성숙하고 질서 있는 사람 사는 서울의 진정한 맹주가 되기위해 지금까지 시민 무림을 통해 보여 준 비전과 열정을 뛰어넘는 희망을 보여주겠습니다.
전국에서 제 펀드에 코 묻은 돈까지 넣어주신 5000명이 넘는 많은 희망지킴이들 감사, 또 감사합니다. 이로써 나는 대한의 빚쟁이가 되었어요. 단순히 돈이 아닌 꿈과 희망을 투자해주신 백성님네들. 나, 눈물, 콧물 펑펑 나려해요."
원순희망제작창이 흘리는 눈물이 네온사인 불빛에 걸려 오색 창연한 빛으로 물드는 사이, 마치 종착역에라도 다달아 단잠이 깨어 조금은 지친 듯 서 있던 꼬장미령이 탐색전을 끝내고 두 다리를 곧추 세웠다.
초식동물이지만 세상에 두려울 것 없는 코끼리의 뒷발처럼, 발차기와 투창에 공들인 무공이 던지면 닿을 듯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지금이라도 당장 창을 던지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참으며, 어쩌면 자신의 인생과 우련 닮아 있는 듯한 원조모모스 경원미모령의 이마에 목불(目佛)화염을 방사하던 꼬장미령이 한 구절의 시처럼 입을 열었다. 짧으나 강렬한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경제위기, 부정부패, 민심의 대란으로 얼룩진 서울에는 내가 있어야 합니다. 무념무상님, 시민 무림의 순수하고 기초적인 도장을 운영하다가 정치 도반에 오니 힘드시죠? 마타도어도 장난 아닐 거예요.
국민경선은 당연히 아름다운 경선으로 갈무리하겠지만 '입담은 즐거워' 방송국의 전문앵커로, 정치 무림의 그 혼탁한 기운을 제거하고 나만의 무권을 공고하게 확립한 이 꼬장미령의 세계에는 아직 보여주지 않은 무궁무진한 진공이 있답니다.
아무리 정치 무림이 왜곡되고 불신되어 제3의 물결의 노도가 거세도 정당을 통한 무림 질서의 확립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민주주의, 민생복지,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개척한 민주공방의 새로운 핵인 나, 꼬장미령의 덕치에는 책임정치와 보편적 복지의 확산을 통한 진짜 서울이라는 대 명제가 갈려 있습니다.
전통적인 민주 에너지 민주공방의 투사들과 서울 시정의 투명한 미래를 위하여 도력을 추정해 온 이 대설산(大雪山), 영선구로나발진의 진정성에 서울특별공국의 백성들은 기꺼이 한 표를 행사 할 것입니다.
오라버니, 이제 시민들의 뜻과 힘은 충분히 알았으니 잘 선택해 주실 것을 믿어요. 자, 미모령, 아무리 노력한다고 제주 기름진 토양에서 새록새록 자람 감귤이 어느 날 갑자기 탱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공국의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아세요?"
희미한 달빛 아래 고요히 흐르던 강물만이 세 도반의 적요하지만 불꽃 튀는 설전을 지켜보며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어디선가 가을을 뚫고 오르는 물안개가 짙어지고 있었다. 강 양편의 건물들의 불빛이 명멸해가며 물안개 속에 세 사람이 내뿜는 기운만이 적외선의 파장으로 잡히는 것과 동시에 수억 년을 흐르는 강물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과 몇 십 년 전의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내는 강물의 울음소리가 세 도반에게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세 사람이 일제히 강물을 바라본 것으로 보아 들리는 것이 확실한 듯했다.
'먹은 것이 없어 젖이 나오지 않은 엄마는 배가 고파 칭얼대는 아기에게 말라비틀어진 젖꼭지를 물렸다. 젖꼭지를 물고 한껏 기분 좋은 아기가 옹알이하며 엄마젖을 힘껏 빨았다.
부족한 영양 탓에 젖물이 오르지 않은 엄마는 몹시 아팠지만, 혹시라도 소리를 내면 아기가 울지 않을까 걱정되어 아픔을 참고, 대신 가슴 밑뿌리를 쥐어짜며 단 한방울의 젖이라도 나오게 하려 안간힘을 하였다.
그러나 마치 아우슈비츠나 시베리아, 굴락 강제수용소의 수용자들처럼 앙상한 엄마의 몸피에는 어떠한 물방울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 흔한 보리밥덩이도 먹지 않은지 며칠 지난 엄마의 몸에 영양은 한낱 사치에 불과한 단어였으니까.
잠시 동안 좋아라하며 엄마의 젖꼭지를 함몰하던 아기가 아무리 빨아도 젖이 나오지 않자, 이내 지쳐 젖꼭지에서 입을 떼며 배고팠을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울었고, 아이의 우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엄마도 아이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처음에는 젖꼭지가 너무 아파서 울었고, 나중에는 아이에게 우유는커녕 마음껏 젖이라도 먹여줄 수 없는 신세가 서글퍼서 울었다. 무엇보다도 지긋지긋한 가난에 지치고 외로워서 설악산 구룡폭포처럼 울었다.
울던 아기는 자기보다 더 서럽게 우는 엄마를 보자 울음을 그쳤다. 자기보다 더 서럽게 우는 엄마를 보니 필시 엄마가 자기보다 훨씬 배가 고파서일 거라는 본능에 슬쩍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의 '행군편'에 있는 말이다. '조짐'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앞서서 알 수 있는 징후를 말한다. 하여 징후를 잘 살펴 도래하는 변화를 읽을 수 있고 닥쳐오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 조짐을 잘 읽으면 전쟁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적절한 대비가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을 미리알고 대피하는 짐승들이나, 잠수함의 산소 함량을 예측하는 토끼나, 배의 침몰을 예측하고 달아나는 쥐 떼들과 같은 판단력이 인간에게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꼬장미령 영선구로나발진이 모래바람만이 단풍잎같이 혀끝에 걸려 입안을 까끌거리게 하는 한강하구의 대련 장소에 나타났을 때, 중구모모스 경원미모령과 무념무상 원순희망제작창은 이미 도착하여 한 사람은 호흡을 정련하고, 또 한 사람은 검 끝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그리움이 전신을 휘감은 상태의 기다림은 수만 볼트의 에너지가 공급된 역동으로 엔돌핀이 형성되어 지루하지 않지만, 긴장의 끈을 조이고 정식 대련에 앞 선 공력원소를 탐색하려고 비공식적(오프 더 레코드)으로 만나는 자리는 불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자나 한비자가 경륜을 펼치고 몽테스키외를 거쳐 마그나카르타로 귀결된 법치수호 깃발의 정당성과 법치 무림의 외연을 지나치게 신뢰한 석연공자의 마차 바퀴가 빠지자, 종자 좋은 천리마를 타고 고속으로 달려 온 경원미모령은 무혈입성이었고, 이미 시민 무림의 절대 지지 완장을 팔뚝에 두르고 경철대안차랑과 철수바이러스공이 끊어 준 고속철도 편으로 가장 앞서 도착한 원순희망제작창은 이미 한나절도 더 지난 기다림으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미 추분도 지나 밤과 어둠의 전령이 강안을 어슬렁거리는 깊어가는 가을의 바람은 쓸쓸했다. 사위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하였고, 간혹 모래나 자갈을 가득 실은 대형 덤프트럭이 강바람을 몰아세우며 지나갈 때 들리는 차량의 소음을 제외하곤 물결소리도 잠자는 듯 했다.
밤섬을 지날 때 졸던 눈을 잠시 떴었던가? 민주공방의 내부혈전은, 한물 간 도반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고만고만한 권법들을 수련도 없이 사용하는 탓에 쉽게 지나간 듯 보였으나, 영선구로나발진은 미처 도력에 완급을 조절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끝난 예비 비무 탓으로 오히려 허탈하고 허전한 기운이 피로를 몰고 와 마치 부지불식간에 오십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는 듯했다.
"시장에 들러 장사를 해보니, 서울공국의 백성들이 얼마나 좋아들 하던지. 아, 글쎄 상인들은 장사도 마다하고 불구경, 손님들은 장보기도 포기하고 왁자글왁자글하는데, 아유 이건 뭐 인기가 하늘을 찔려요.
가브리엘에서의 목욕 봉사로 말들이 많다지요? 왜 아픈 데를 건드리실까. 내 딸이 다운증후군인 거 모르세요. 원래 오프 더 레코드 하려던 봉사가 노출되니 어떻게 해. 원래 진정한 무도인의 주위에는 도전자들의 시기가 있기 마련. 자, 형조의 중요직책을 거쳐 무림의회의 지도자로 성장하기까지 나의 폭풍 과거는 세인들이 인정하는 바, 무공수련이란 마치 시골 논에서 아이들이 열차가 지나간 뒤에도 한참을 흔들어대는 손짓처럼 아쉬움이 남는 법.
허나 인지찰즉무도(人至察則無徒)라고 타인의 허물을 오래 경계하면 따르는 자가 없는 것. 나의 무림철학에는 타인의 결점이나 부족함도 포근하게 감싸주라는 <채근담>의 설법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원순 공, 영선 령. 이 정도 공력이면 이 원조모모스 서울특별공국의 맹주로 등극해도 뭐 어색하진 않겠지요?"
원순희망제작창은 눈을 감고 가양대교인가, 행주대교인가, 한강의 다리 중 세인의 관심에서 제법 무심한 다리를 지나는 리어카들의 은륜소리를 들으며 침묵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아파트와 층고를 알 수 없는 건물들의 사이를 휘돌던 바람이 가로등 불빛에 녹아 모래톱에 깔리자, 관용의 힘으로 천하를 위무하며 무쇠도 녹이리라던 시민 무림의 지도율사는 무념무상한 미소를 희미하게 그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 원래 무공을 수련하는 자의 기본은 엄청난 양의 독서입니다. 정련된 호흡으로 완성된 신체의 원력처럼 책 읽기를 통한 지식의 함양은 이 나라 최고의 무술비권인 '무예도보통지'의 완전정복을 지나 단군천황제가 저술한 천하 세상 하나 밖에 없는 비권인 '천룡비결록'의 완성을 가능하게 합니다.
쉽게 돈이나 버는 세속의 삶을 버리고 은자하다 보니 많은 것이 달아났으나 책만은 나를 버리지 않더군요. 매화와 난초, 그리고 국화와 대나무에 흐르는 절개처럼 나를 지지해주는 그 서책들의 마음 씀이 하도 기꺼워 나도 서고를 크게 장만하여 그들을 지켜줬습니다.
서울의 백성들과 나의 '도덕치명권'을 신뢰하는 펀드 가입자들께서는 나에게 이번 비무대회의 출전료를 전액 마련해 주셨습니다. 결국 낡은 무도의 윤색된 정신을 버리고 새로운 무공과 질서로 거듭나려는 백성들의 자발적 노력이 서울특별공국의 위상을 새로 세우고, 나아가 대한민주무림대국의 청사진을 완성하라는 채찍질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나, 희망제작창. 이제 조건 없는 국민경선 참여로 서울특별공국의 백성들의 생각과 희망이 온전히 포장되는 성숙하고 질서 있는 사람 사는 서울의 진정한 맹주가 되기위해 지금까지 시민 무림을 통해 보여 준 비전과 열정을 뛰어넘는 희망을 보여주겠습니다.
전국에서 제 펀드에 코 묻은 돈까지 넣어주신 5000명이 넘는 많은 희망지킴이들 감사, 또 감사합니다. 이로써 나는 대한의 빚쟁이가 되었어요. 단순히 돈이 아닌 꿈과 희망을 투자해주신 백성님네들. 나, 눈물, 콧물 펑펑 나려해요."
원순희망제작창이 흘리는 눈물이 네온사인 불빛에 걸려 오색 창연한 빛으로 물드는 사이, 마치 종착역에라도 다달아 단잠이 깨어 조금은 지친 듯 서 있던 꼬장미령이 탐색전을 끝내고 두 다리를 곧추 세웠다.
초식동물이지만 세상에 두려울 것 없는 코끼리의 뒷발처럼, 발차기와 투창에 공들인 무공이 던지면 닿을 듯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지금이라도 당장 창을 던지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참으며, 어쩌면 자신의 인생과 우련 닮아 있는 듯한 원조모모스 경원미모령의 이마에 목불(目佛)화염을 방사하던 꼬장미령이 한 구절의 시처럼 입을 열었다. 짧으나 강렬한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경제위기, 부정부패, 민심의 대란으로 얼룩진 서울에는 내가 있어야 합니다. 무념무상님, 시민 무림의 순수하고 기초적인 도장을 운영하다가 정치 도반에 오니 힘드시죠? 마타도어도 장난 아닐 거예요.
국민경선은 당연히 아름다운 경선으로 갈무리하겠지만 '입담은 즐거워' 방송국의 전문앵커로, 정치 무림의 그 혼탁한 기운을 제거하고 나만의 무권을 공고하게 확립한 이 꼬장미령의 세계에는 아직 보여주지 않은 무궁무진한 진공이 있답니다.
아무리 정치 무림이 왜곡되고 불신되어 제3의 물결의 노도가 거세도 정당을 통한 무림 질서의 확립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민주주의, 민생복지,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개척한 민주공방의 새로운 핵인 나, 꼬장미령의 덕치에는 책임정치와 보편적 복지의 확산을 통한 진짜 서울이라는 대 명제가 갈려 있습니다.
전통적인 민주 에너지 민주공방의 투사들과 서울 시정의 투명한 미래를 위하여 도력을 추정해 온 이 대설산(大雪山), 영선구로나발진의 진정성에 서울특별공국의 백성들은 기꺼이 한 표를 행사 할 것입니다.
오라버니, 이제 시민들의 뜻과 힘은 충분히 알았으니 잘 선택해 주실 것을 믿어요. 자, 미모령, 아무리 노력한다고 제주 기름진 토양에서 새록새록 자람 감귤이 어느 날 갑자기 탱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공국의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아세요?"
희미한 달빛 아래 고요히 흐르던 강물만이 세 도반의 적요하지만 불꽃 튀는 설전을 지켜보며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어디선가 가을을 뚫고 오르는 물안개가 짙어지고 있었다. 강 양편의 건물들의 불빛이 명멸해가며 물안개 속에 세 사람이 내뿜는 기운만이 적외선의 파장으로 잡히는 것과 동시에 수억 년을 흐르는 강물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과 몇 십 년 전의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내는 강물의 울음소리가 세 도반에게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세 사람이 일제히 강물을 바라본 것으로 보아 들리는 것이 확실한 듯했다.
'먹은 것이 없어 젖이 나오지 않은 엄마는 배가 고파 칭얼대는 아기에게 말라비틀어진 젖꼭지를 물렸다. 젖꼭지를 물고 한껏 기분 좋은 아기가 옹알이하며 엄마젖을 힘껏 빨았다.
부족한 영양 탓에 젖물이 오르지 않은 엄마는 몹시 아팠지만, 혹시라도 소리를 내면 아기가 울지 않을까 걱정되어 아픔을 참고, 대신 가슴 밑뿌리를 쥐어짜며 단 한방울의 젖이라도 나오게 하려 안간힘을 하였다.
그러나 마치 아우슈비츠나 시베리아, 굴락 강제수용소의 수용자들처럼 앙상한 엄마의 몸피에는 어떠한 물방울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 흔한 보리밥덩이도 먹지 않은지 며칠 지난 엄마의 몸에 영양은 한낱 사치에 불과한 단어였으니까.
잠시 동안 좋아라하며 엄마의 젖꼭지를 함몰하던 아기가 아무리 빨아도 젖이 나오지 않자, 이내 지쳐 젖꼭지에서 입을 떼며 배고팠을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울었고, 아이의 우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엄마도 아이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처음에는 젖꼭지가 너무 아파서 울었고, 나중에는 아이에게 우유는커녕 마음껏 젖이라도 먹여줄 수 없는 신세가 서글퍼서 울었다. 무엇보다도 지긋지긋한 가난에 지치고 외로워서 설악산 구룡폭포처럼 울었다.
울던 아기는 자기보다 더 서럽게 우는 엄마를 보자 울음을 그쳤다. 자기보다 더 서럽게 우는 엄마를 보니 필시 엄마가 자기보다 훨씬 배가 고파서일 거라는 본능에 슬쩍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의 가슴 속에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씩 드리워져 있게 마련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