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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초고에서 빠진 이야기는?

[대담 2]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록|2011.09.30 13:34 수정|2011.09.30 13:59

▲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2일 부산 연제구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과의 대담을 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이날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 때마다 농담을 준비했지만 때로는 실패해서 분위기가 썰렁해지기도 했다"며 자서전 '운명'에 실리지 않은 참여정부 뒷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뒤 첫 국무회의 때 커피를 직접 타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직접 커피를 타주기도 했다. 국무회의장 문 앞에 커피 테이블을 놓고 일회용 커피를 타먹도록 했다."


"국무회의 때마다 농담을 준비해 인사말을 하실 때 풀어놓았다. 때로는 농담이 통해서 국무위원들이 크게 웃었던 적도 있지만 실패해서 분위기가 썰렁해지기도 했다. 국무회의에서의 격의없는 토론을 위한 당신의 배려다. 꽤 여러달 동안 농담을 준비해 오셨는 데 나중에는 바닥이 났는지 그만 뒀다."

"시골 어른들이 잘 사용했던 촌철살인같은 표현을 많이 쓰기도 했는 데 통역하는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자서전 <운명>에 실리지 않은 참여정부 뒷이야기의 한토막이다. 소탈했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진다.

문 이사장은 최근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노무현 평전을 게재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을 지난 22일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만나 대담을 나누면서 노 전 대통령의 철학과 사상적 배경, 참여정부의 뒷이야기 등에 대해 소개했다. 이날 나눈 대담 내용은 김 관장의 노무현 평전에 녹여낼 예정이다.    

"대연정을 제안한 까닭은..."

▲ 노무현 평전을 집필 중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 유성호


우선 김 전 관장이 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이다. 정의와 원칙을 강조하고 3당 야합을 배격한 노 전 대통령의 행보와도 맞지 않다. 왜 그런건가?"

사실 20만 부 이상 팔려나간 그의 베스트셀러 <운명>에서도 그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문 이사장은 "그 부분이 초고에는 실려있었는데 진의가 왜곡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 마무리 작업에서 들어냈다"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신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보다는 일부 사안에서 한나라당과 공조했던 민주노동당과의 소연정에 기대를 걸었다. 연정을 제안할 때 대연정이라고 하지 않고 '어떤 형태의 연정'이라고 말하면서 소연정의 가능성까지도 열어놓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예 토론조차 되지 않았다. 되레 보수와 진보진영에서 뜬금없는 돌출발언으로 협공을 받았다. 하지만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정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고, 당선자 시절에도 국회 시정연설에서 거듭 밝힌 바 있으며, 심지어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을 때에도 같은 의견을 말한 적이 있다"면서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 여소야대 정국이었는데 극단적인 대결주의 문화로는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불가능하다.
2) 부산 경남 지역은 총선거 때마다 민주당이 20-30%의 지지를 받는데 50% 안팎의 지지를 받는 한나라당 승자독식 구조의 소선거구제도는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 민주당도 20%정도의 대표를 낼 수 있는 선거제도를 한나라당이 받아들일 경우 다수 정당이 된 정파에게 총리를 내줄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뜨거운 주물처럼"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다. 그런데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가 사람사는 세상일까? 문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적 민주주의라고도 표현했다. 절차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 시민적 민주주의에서 한단계 더 발전한 개념인데 이를테면 노동권을 비롯해 사회권이 다 보호되는 민주주의, 경제적 민주화도 포함하는 민주주의, 지역주의 정치가 타파되고 정책정당화되는 것 등."

그렇다면 이런 노 전 대통령의 사상적 배경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강했다. 뜨거운 주물처럼. 부림 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투신했고, 그 시기에 쏟아져 나온 사회과학 서적을 거의 다 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 또는 리버럴한 진보주의적 세계관을 가졌다. 처음에는 휴머니즘에서 출발했지만..."

문 이사장은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사법시험을 통해서 기득권에 들어간 이후에도 휴머니즘적 애정이 변하지 않았고, 국회의원 시절에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입지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현실에 발을 디딘 혁명가"

▲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 유성호


다음은 김 관장과 문 이사장의 일문일답 요약이다.

- 노 전 대통령은 다른 지역도 아닌 부산에서 3당 합당을 거부했다. 정치적으로 도박이다. 그로 인해 10년의 정치 공백기를 가졌다. 그 결단의 배경은 뭔가?
"개인적 출세를 위해 국회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6월 항쟁에서 승리했는데 양김 분열로 군부정권이 연장됐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한 방편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부산 지역 재야 인사와 6월항쟁의 동지들과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서 다수의 권유에 따라 출마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운동 진영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던 통일민주당이 3당 합당을 통해 독재권력과 야합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선택이었다. 개인의 결단이라기보다는 조직적 결단으로도 볼 수 있다."

- 한국 상황에서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볼 때 노 전 대통령의 행위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혁명가적인 자세였다. 게다가 우리 근현대사는 불의와 부정직이 지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이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첫째는 신념이나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그것을 버리면서까지 국회의원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대의를 중시했다. 또 굉장한 낙관주의자다. 당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기에 당연히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항간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기 위해 부산에 왔다고도 말하는데, 어렵지만 옳은 일을 하면 유권자들이 지지할 것이라는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바위에 달걀 부딪치기식의 절망적인 몸부림이 아니라 실제로 이뤄질 수 있다는 낙관을 가졌다."

- 노사모는 기존 정당조직이나 정치인 후원회와는 다른 수평적 팬클럽이었고 한국정치 문화 생태계를 일군 사건이었다.
"일종의 정치인 팬클럽인데, 인간관계가 작용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노무현으로 표상되는 정신과 이념, 가치 지향에 공감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정치적 시민운동이다. 노 전 대통령도 노사모는 당초에 고유명사였는 데 나중에는 일반명사가 됐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바람직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 시민주권 등의 노 대통령 표현은 다 노사모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여긴 것이다."

-조선일보를 포함한 족벌언론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가한 행위는 익히 알려졌는 데,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은 힘있는 언론과 타협하거나 굴종한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유일하게 지지선언을 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실제로 국회의원 시절 <조선일보>가 허위사실을 보도했을 때 모두들 싸우는 것을 말렸다. 더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언론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 누가 바로 잡고 제동을 걸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소송했고 승소했다.

수구언론들은 언론의 사명을 포기하고 특권 기득권층으로 스스로 편입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전도된 상황을 바로잡아서 서민대중에게 주류의 지위를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꾸로 수구언론들은 노 대통령과 계급이 다른 것도, 혁명을 하자는 것도 아닌데 비주류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흔드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해 아주 강한 적대감을 보였다.

눈 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그들과 타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분은 원칙을 고수하는 신념체계를 가졌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혁명가였다고 보나?
"제도의 틀 내에서, 의회민주주의 내에서 모색한 것이다. 민주화운동, 인권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정치활동을 한 것이다."

"현실에 발을 디딘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한계와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혁신과 혁명을 추진했던 분이다. 비서들에게도 일을 줄이고 혁신하라고 계속 이야기 했다."(대담 배석자-  김경수 전 청와대 연설기획 비서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블로그 ⓒ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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