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했는데...이것이 나라를 살렸다
쿠바, 자연순환농법 정착...국가 직영농장 개인에 돌리는 토지개혁 추진
▲ 울금과 파파야 혼작동반작물 또는 기피작물을 혼작하거나 간작하여 병해충을 방제하고 있다. ⓒ 임경욱
카리브해의 진주 쿠바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여 샌디에이고를 들르고, 다시 로스엔젤레스와 멕시코시티를 거쳐 쿠바의 수도 하바나로 가는 데는 비행기 탑승시간만 무려 18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직항로가 없어 치르게 되는 불편함도 불편함이지만 공항마다 강화된 입출국수속이 여행자를 지치게 했다.
지난 8월말 쿠바의 유기농업을 배우기 위해 유관기관 및 농업인단체 대표와 농업인 등 19명으로 꾸려진 우리 연수단은 이런 어려운 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지의 도시 하바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먹거리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증대되고 있지만, 날로 돈이 되는 농업만을 추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연수는 농약과 화학비료로 길러진 농산물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기농업을 확산시켜 나가고자 마련된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식량자급을 위한 증산 일변도의 농업정책을 펼쳐 왔다. 2000년대 들어서야 먹거리의 안전문제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웰빙, 로하스, 매디푸드 등 먹거리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건강과 환경까지 생각한다. 또 우리 몸의 병을 치유하는 방편으로 농산물을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 농장 안의 축사 농장에서 소와 염소, 토끼 등을 키워 경축순환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 임경욱
▲ 지렁이분변토 생산시설농장 한켠에서 농산부산물과 축분을 발효시켜 만드는 지렁이분변토는 고스란히 토양에 뿌려져 흙을 살찌운다. ⓒ 임경욱
국가 위기 극복하라, 그 방법은 '유기농'
하바나(La Habana)는 카리브해의 여러 도시 중 가장 큰 곳이며 쿠바의 중심지다. 전쟁과 혁명의 혼란스런 역사 속에서도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오늘날에도 스페인 식민지시절에 세워진 건축물들이 페인트와 회반죽이 벗겨진 채 100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서있다. 저물어간 옛 영화를 반영하듯 시내에는 50~60년대에 유행하던 커다란 미국 자동차들이 아직도 거리를 활보해 자동차박물관을 방불케 하였다.
열대의 여름은 습기가 많고 더웠다. 인적이 드문 도시는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시내에서 마주치는 젊은이들의 표정은 밝고 환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그들의 눈빛을 보니, 머지않은 곳에 희망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해가 기울고 서늘해지면 도시의 골목은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카스트로가 집권한 지 벌써 50년이 흘렀으며 세계 곳곳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이 곳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남한 면적보다 약간 큰 쿠바는 남미와 북미의 통로에 위치한 지리적 요충지로 스페인 식민지를 시작으로 전쟁과 쿠데타가 끊이지 않는 비운의 역사를 살아왔다. 또 피델 카스트로가 열강의 각축 속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을 선동하여 체 게바라와 함께 일으킨 쿠바혁명으로 집권한 이래 1961년 자본주의 정치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었다. 이후 미국의 경제봉쇄와 구 소련의 붕괴로 국가가 한때 위기상황에 직면했으나, 유기농업과 자립경제 체제로 버티면서 현재까지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쿠바는 1991년 경제난이 가중되자 '평화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유기농업을 통한 식량과 농업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유기농업을 지속가능토록 한 핵심기둥은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유기농 실천전략을 세워 국민들에 대한 교육·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는 점이다. 또 쿠바 정부는 온 국민이 도시농업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맨손으로 황무지와도 같은 도시의 빈터에 텃밭을 일궈 가꾼 그들의 지난한 삶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지나갔다.
쿠바의 유기농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따로 있다. 첫째, 국가 직영농장을 개인 및 협동농장으로 전환해 생산성이 향상되도록 토지개혁을 추진하였다. 둘째,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정부 및 공공조직의 노력으로 음식물찌꺼기, 농산부산물, 가축분뇨를 이용한 흙살리기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셋째, 모든 생물은 스스로 병해충을 극복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고 있다는 생물다양성을 바탕으로 자연순환농법을 정착시켰다.
▲ 농장 안에 꾸려진 유기농 식단방문객을 위해 농장 내에 꾸려진 식당에서는 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이용해 오찬을 차려 주었다. ⓒ 임경욱
우리 일행이 방문한 하바나 외곽의 비베로 알라마르 협동농장은 10.4㏊규모로 조합원이 130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농장 내에 소와 염소, 토끼를 길러 순환농업을 실천하고 있었다. 또 지렁이분변토를 생산하여 활용할 뿐 아니라 배추와 파를 혼작하고, 허브작물과 울금 등 병해충이 싫어하는 작물을 농장 주변에 식재했다.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전래농법을 계승·발전시켜 저비용의 생태농업을 실천하면서, 발생한 이윤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분배했다.
정부의 농업부에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농장을 경영한다는 농장주인 미겔사신은 "관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전환한 후 초창기 3년 동안은 소출이 떨어지는 등 실패를 겪었으나, 정부기관, 농업인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 결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며 "'담배를 피우면 몸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듯이, 농약과 화학비료로 키운 농산물이 몸에 해로운줄 알면서도 먹는다, 담배갑에 경고문을 표시하듯이 관행농산물에도 경고문을 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쿠바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은 경작지면적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아주 미미한 실정이지만 조상대대로 이어져 온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력은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농업인들이 스스로 실천하려는 의지력만 있다면 유기농업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쿠바의 유기농업이 국가위기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대안이었다면, 지금 우리는 소비자가 안전한 농산물을 요구하는 시대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우리는 지금 유기농업을 확산시켜 나갈 수 있는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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