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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독도에 태극기 휘날리기 위해 왔어요.

[독도 탐방기]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기념사업회

등록|2011.10.01 14:03 수정|2011.10.01 14:03

▲ 재민이와 나경이가 동도 정상에서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 조정숙


장시간 배를 타야하는 재민(9)이와 최연소 나경(4)이는 지쳐 잠이 들었다. 요 녀석들 자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다. 누가 오누이 아니랄까 어쩜 이리도 독 같은 포즈로 자고 있을까.

맑고 드높은 가을하늘, 가을의 정취도 만끽하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길 뭔가 의미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던 중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료 수집을 위해 독도를 가끔 방문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이기에 독도에 들어갈 기회가 있으면 연락을 해 달라는 부탁을 해 두었었다.

▲ 3시간 동안 배를 타고 독도를 가야 하기에 전날부터 장시간 이동하느라 힘들어서인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잠을 자고 있다. 녀석들 귀엽기 그지없다. ⓒ 조정숙


▲ 할머니할아버지, 아빠와 엄마, 중학교다니는 아들과 초등학교 다니는 딸, 김기천씨 가족이 함께 독도탐방을 함께 했다. ⓒ 조정숙


▲ 하늘엔 구름이 두둥실 파고는 0.5m 잔잔하다. 독도를 가는 날은 행운의 날이었다. ⓒ 조정숙


독도는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렵게 독도를 방문한다 하더라도 잠깐 배를 정박하고 짧은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독도를 보고 돌아와야 하는 관광이 전부이기 때문에 우리 땅 독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기 일쑤였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배로 3시간을 달려 독도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배가 독도에 접안을 할 수 없으면 아쉬움을 머금고 독도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곳이다.

26일 새벽4시에 성남시청에서 출발하여 4시간을 달려 포항에 도착, 포항부두 근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포항에서 배로 3시간을 달려 울릉도에 도착한다. 울릉도에서 다시 3시간을 배로 달려야 독도에 도착한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하자 한꺼번에 내린 관광객들 때문에 비좁은 항구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복잡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하루에 독도까지 갈 수가 없어 울릉도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독도를 방문하기로 하고 오후 시간은 울릉도 관광을 하게 되었다.

▲ 동도에서 바라본 서도 ⓒ 조정숙


독도탐방 기획을 하게 된 동기는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독도 최초 주민이었던 최종덕씨를 기리는 '최종덕기념사업회'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와 유일하게 독도에서 함께 살며 물질도 했다는 딸 최경숙씨(48)가 아버지의 독도를 사랑했던 삶과 독도를 알리기 위해 추진하는 탐방으로 이번이 3번째다.

특별한 방문 일정이기 때문에 동도와 서도를 모두 탐방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2박3일간의 일정으로 독도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탐방일정은 울릉군에 의뢰하여 정식 절차를 통해 통과 되어야 하며, 입도 허가가 나와야 가능하다. 일반 관광과는 달라 광고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알음알음으로 할아버지할머니 엄마와 아빠 손자손녀 3대와 가족단위 등 60여 명이 함께 했다.

▲ 동도 정상까지 가기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 조정숙


▲ 요즘 한창 피는 해국이 푸르디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탐방객들을 맞이 한다. ⓒ 조정숙


이튿날 아침 날씨는 쾌청, 파고도 없어 독도에 입항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이동수단으로 울릉군 수산과 행정선이 특별한 배려를 해주어 독도에 무사히 입항하여 독도 경비대의 안내로 동도를 탐방하게 되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바위틈사이로 연보랏빛 해국이 살랑대는 바람사이로 꽃잎을 한들거리며 푸르디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해맑게 피어 있다. 이름 모를 야생화도 활짝 미소 지으며 탐방객들에게 인사한다.

최종덕씨는 1980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자 독도가 무인도가 아닌 유인도이며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하여 1981년 10월 독도로 주민등록을 옮긴 후 이곳에 거주한 독도 주민 1호이다. 행정 주소지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 산 67번지 독도의 서도 벼랑어귀였다.

수중창고를 설치했고 전복수정법 특수어망 개발, 식수로 사용 할 수 있는 샘물물줄기를 발견하여 무인도가 아닌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었으며 시설물 개발에 많은 노력을 쏟았으며, 1987년 9월 23일 사망할 때까지 독도에 거주하였다.

▲ 독도사랑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 조정숙


누가뭐래도 독도는 우리 땅...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독도에 도착하자 독도 경비대원들에게 위문품 전달식이 있었고 동도 탐방 후 '독도 작은 음악콘서트'가 있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상규(37), 윤상섭(39)씨가 작사 작곡한 '영원한 독도인 최종덕'과 '독도는 우리 땅'등 대여섯 곡의 노래가 독도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독도로 주소를 옮겼던 편부경 시인의 독도를 사랑하는 시가 낭송되었다.

노래가 서도를 향해 한 바퀴 돌아 메아리 되어 돌아오자,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제는 자주 갈 수가 없게 된 이곳, 독도를 방문할 때마다 친정집 오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지만 지금은 마음대로 서도에 있는 친정집을 들어갈 수가 없어 가슴이 저려요." 최경숙씨 눈가에 이슬방울이 맺힌다.

"노랫말에 이름을 넣어 작곡한 노래는 거의 없지만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하면 최종덕씨를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넣어 곡을 쓰게 되었어요. 전문가와 상의하여 음반도 낼 예정이랍니다. 6월에 방문했을 때는 서도에서 커다란 태극기를 걸어놓고 공연을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무슨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태극기를 치워버렸네요."

▲ 독도를 떠나는 탐방객들에게 독도 경비대원들이 손을 흔들며 잠깐동안의 만남을 뒤로하고 아쉬움을 달랜다. ⓒ 조정숙


▲ 동도,서도가 한 눈에 보인다. ⓒ 조정숙


▲ 우리 땅 독도, 우리가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슴 깊이 새기며 독도를 떠난다. ⓒ 조정숙


독도는 어족자원이 풍부하기에 일본인들이 일본 땅이라고 망언을 일삼고, 지난 8월에는 일본 자민당의원3명이 독도정찰차 울릉도로 입도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꼼수를 부리기도 했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하며 일시적인 관심보다는 우리 국민 모두가 지키고 보존해 나가기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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