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살 먹은 이팝나무... 근데 그게 없네
천연기념물 제183호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를 만나다
▲ 이팝나무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된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 ⓒ 하주성
지난 9월 4일, 전북 고창군 지역을 답사하는 날은 이상하게 나무만 둘러본 날이었다. 수령이 꽤 오랜 나무들을, 아마도 하루에 10여 그루는 보았을 것이다. 그중 한 그루가 바로 전북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 313-1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183호인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이다.
'이팝나무'란 이름은 '이밥' 즉 '쌀밥'과 같은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즉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이는 것이 마치 쌀밥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설에는, 여름이 시작될 때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 받침대가지를 받쳐 놓은 보조 받침대. 가지가 부러질까봐 보호를 한 것이다 ⓒ 하주성
▲ 줄기중간에서 여러갈래로 갈라져 뻗은 가지들 ⓒ 하주성
높이 10.5미터... 천연기념물 치고는 작네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는 마을을 들어서면 마을 입구에 넓은 공원과 같이 곳이 있고, 마을 입구 쪽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는 나무들을 심어 놓았는데, 그 가운데는 작은 이팝나무들이 보인다. 중산리 이팝나무는 수령이 약 250살 정도로 보이며, 나무의 높이는 10.5m 정도에, 가슴높이의 둘레는 2.7m 정도이다.
중산리는 마을을 들어서는 도로보다 낮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산리 마을 앞의 낮은 지대에 단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나무의 모습은 가지가 고루 퍼져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먼지 등으로 나무의 생육상태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중산리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들 가운데 작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 잎주변으로 길이 있어 매연 등으로 생육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다 ⓒ 하주성
▲ 줄기여기저기 조그마한 수술자국이 보인다 ⓒ 하주성
"저 나무에는 전설이 없어... 우리도 안타까워"
현재 우리나라에는 7그루 정도의 이팝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지방 기념물 6그루를 합해 모두 13그루가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이팝나무들 중에는 마을에서 전해지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36호인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으로 섬김을 받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85호인 김해 신천리 이팝나무는 한쪽 가지가 길 건너 우물을 덮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우물을 보호한다고 믿는다. 이런 이유로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2월 말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리는데, 이곳의 말로 '용왕(龍王) 먹인다'라고 한다.
▲ 밑동밑동에도 꽤 커다란 수술자국이 보인다 ⓒ 하주성
천연기념물 제214호인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는 모두 7그루가 지정이 되어있는데, 마령초등학교 담장 곁에 서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팝나무를 '이암나무' 또는 '뻣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팝나무가 모여 자라는 곳은 어린 아이의 시체를 묻었던 곳이라 하여 '아기사리'라고도 부른다.
이와 같이 오래된 나무들은 대개 그 마을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중산리 이팝나무에는 그 어떤 전설도 전하지가 않는다. 마을 앞 정자에서 쉬고 계시는 어르신들께 중산리 이팝나무에 전해지는 어떤 이야기가 없는지, 말씀을 드려보았다.
"저 나무에는 아무런 전설도 없어."
"대개 천연기념물에는 무슨 전설 등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말여. 우리도 저 나무에 무슨 이야기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전해내려오는 것이 없어. 우리들도 참 안타깝지."
"저 작은 나무들은 어디서 가져온 것인가요?"
"글쎄, 사람들은 저 큰 나무 자식이라고 하는데, 딴 곳에서 갖다 심은 것 같아."
그 외의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가 없었다. 천연기념물을 만나 무엇인가 잔뜩 기대를 걸었는데, 아무런 이야기 하나 못 건지는 이런 날은 맥이 풀린다.
▲ 이팝나무중산리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중에서 수령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하주성
우리나라의 크고 오래된 이팝나무는 꽃이 많이 피고 적게 피는 것으로,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팝나무는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에, 비의 양이 적당하면 꽃이 활짝 피고 부족하면 잘 피지 못한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강수가 필요하므로 이팝나무의 생육에 따라 풍, 흉년을 미리 점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을 어르신들조차 전설 하나 간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중산리 이팝나무. 그러나 그 나무의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다면, 그만 해도 마을의 자랑이 아닐까? 중산리를 떠나면서 나무가 오래도록 잘 자라기만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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