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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에 고독한 형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리뷰] 마이클 코넬리 <앤젤스 플라이트>

등록|2011.10.06 10:23 수정|2011.10.06 10:23

<앤젤스 플라이트>겉표지 ⓒ 랜덤하우스

마이클 코넬리의 1999년 작품 <앤젤스 플라이트>(마이클 코넬리 저, 랜덤하우스 펴냄)는 '해리 보슈 시리즈'의 여섯 번째 편이다. 시리즈 주인공인 LA의 형사 해리 보슈는 전편인 <트렁크 뮤직>에서 난데없이 결혼을 하면서 독자들을 의아하게 (또는 흐뭇하게) 만들었다.

보슈가 결혼을 할 거라고 예상한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보슈는 그동안 고독한 코요테 같은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결혼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왠지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작가는 혼자서 LA의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보슈에게 어쩌면 연민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보슈가 결혼을 하면 좀 더 정서적으로 안정된 형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앤젤스 플라이트>를 펼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 바로 '결혼 이후에 보슈가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전직 FBI 요원이었던 부인 엘리노어와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을지, 아니면 위태로운 결혼 생활을 하루하루 유지하고 있을지.

기차 안에서 살해당한 민권 변호사

<앤젤스 플라이트>는 보슈가 결혼하고 1년 후에 시작된다. 보슈는 여전하다. 자신의 팀원들은 잘 챙기는 편이지만 상관에게는 그리 고분고분하지 못하다. 수사능력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거칠고 불 같아서 다른 동료들과 충돌하는 일이 가끔 생긴다. '사랑의 힘'도 보슈를 바꾸어 놓지는 못한 것이다.

보슈는 LA 경찰국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싸움과 정치적 계산에도 환멸을 느낀다. 그래도 형사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이 일을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보슈의 약점이고, 보슈의 상관들은 그 약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앤젤스 플라이트>에서도 이렇게 정치적인 계산을 해야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토요일 새벽, 보슈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출동한다. LA 시내에서 91m를 왕복운행하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철도 '앤젤스 플라이트'에서 총에 맞은 시신이 발견된다. 그 시체의 신원은 흑인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하워드 일라이어스로 밝혀진다.

일라이어스는 경찰을 상대로한 소송 전문 변호사로 부와 명성을 쌓아왔다. 경찰의 폭력이나 부정부패, 인종차별 등이 그가 주로 다루어왔던 분야였다. 웬만한 경찰들은 전부 그에게 소송을 당했을 정도다. 당연히 일반 시민들은 그의 활약에 열광했고 반대로 경찰들은 그를 죽어 마땅한 쓰레기처럼 취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일라이어스를 살해한 것이다. 보슈는 얼떨결에 수사의 책임자로 지목 받게 되고 이 사건이 굉장히 민감한 사안임을 알아차린다. 모든 언론과 시민들이 주목하고 있다. 수사결과에 따라서 1992년의 LA 폭동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보슈는 의욕적으로 수사를 시작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조금씩 어긋나고 있는 결혼생활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결혼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보슈

보슈처럼 오랫동안 혼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결혼생활이란 것이 낯설게 여겨질 것이다. 그것은 부인 엘리노어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결혼과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행복과 만족을 얻지 못한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보슈는 자신이 앤젤스 플라이트 기차 안에 앉아있는 꿈을 꾼다. 맞은편 선로의 반대편 기차에는 엘리노어가 앉아있다. 보슈는 엘리노어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보슈를 외면한다. 이 꿈처럼 이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해리 보슈 시리즈에서 보슈와 엘리노어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 궁금해진다. 작품 속에서는 늘 복잡한 사건이 터지지만, 그런 사건들은 항상 해리 보슈가 명쾌하게 해결했으니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대신에 엘리노어와 함께 하는 보슈의 삶, 또는 엘리노어가 없는 보슈의 삶은 모두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앤젤스 플라이트> 마이클 코넬리 지음 / 한정아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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