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향후 10년 석유 고갈, 어떤 시대 도래하나?

[서평]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의 <장기 비상시대>

등록|2011.10.06 17:52 수정|2011.10.06 17:52

책겉그림〈장기 비상시대〉 ⓒ 갈라파고스

많은 사람이 석유 고갈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에어컨, 자동차, 비행기, 전기, 조명, 의류, 음악, 영화, 슈퍼마켓, 전동 공구, 고관절 치환 수술, 국방 등 그 어느 것 하나 화석 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게 없다. 심지어 원자력 발전소도 그것의 건설이나 정비나 핵연료의 추출과 가공마저도 값싼 석유에 의존한다. 

그런데 석유가 다 쓰고 없어진다면 어떤 시대가 도래할까? 한쪽에서는 비관론이, 또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낙관론이 대두되지 않을까?

한쪽에서는 석유 고갈과 함께 인류가 공멸한다는 주장과, 다른 쪽에서는 인간의 지혜로 바다 위에 문명을 건설한다거나 나노기술로 유기분자 기계를 만든다거나 우주지구를 만들지 않겠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의 <장기 비상시대>는 낙관론보다는 비관론 쪽에 무게를 더 두면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는 이미 인류의 석유가 고갈되어 있고, 그 정점을 지났다고 진단한다. 그에 의하면 그 '정점'이란 '말기적 쇠퇴'를 뜻하는 것이고, 그것은 '백미러'로 드러나 있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다.

그런 파국이 닥쳤는데도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언론들이 잠잠한 까닭은 뭘까? 각 나라마다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붕괴와 시위로 몸살을 앓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물론 그런 일이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이요, 그런 비관론은 단순한 음모론에 지나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0년대 중반에 쉘 석유 회사의 연구 책임자였던 허버트는 미국의 알려진 석유 매장량 및 전형적인 생산율과 소비율을 바탕으로 일련의 수학 모델을 만들어내더니, 1956년에는 미국의 석유 생산이 1966년과 1972년 사이에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허버트는 또 발견율이 수십 년 전의 생산율과 같은 궤적을 그을 것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는 비율이 1930년대에 절정에 달한 뒤로, 탐사 기술이 크게 발전했음에도 계속해서 가차 없이 떨어졌으니, 결론은 명백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60쪽)

쿤슬러는 허버트의 보고를 토대로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1970년에 정점에 도달했고, 이제는 하양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허버트가 타계한 이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전 세계 석유생산량의 정점도 2010년을 기점으로 꺾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알래스카와 북해의 마지막 대발견이 남아 있긴 하지만 향후 10년이면 그것들도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펼칠 수 있다.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 남아 있는 석유를 뽑아 올리려면 이전에 들어간 비용보다도 훨씬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더욱이 기후가 혹독한 곳에 묻혀 있으면 파내기도 어렵고, 미국과 이슬람과의 관계처럼 서로 원한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다툼과 전쟁도 불사해야할지도 모른다고 내다본다.

"상황이 아무리 유리하게 돌아간다 해도, 사우디의 석유 매장량은 앞으로 50년 이상을 가지 못할 것이며, 전통적인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21세기가 끝나기 전일 것이다). 향후 전망은 심각하다. 이 지역은 아무튼 석유에서 비롯되는 보조금에 의탁해 살고 있는 현재 수준의 인구는 도저히 부양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많은 사우디인들은 이런 점들이 도달할 논리적 귀결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들을 짓누르는 끔찍한 운명의 무게를 느낄 것이다."(113쪽)

중동의 석유 재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그동안 석유 덕에 정말로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그런데 향후 50년 뒤에 그것이 사라진다면 그야말로 석유 노다지 시대를 마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것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바에 의한다면 원유에 의존하는 미국의 산업과 경제도 마찬가지요, 신흥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도 그 시점이 되면 과거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원유고갈에 따른 대체 방안은 없을까? 이 책의 제4장에서는 석유 이후의 대체 연료에 대해서 밝혀주고 있다. 이른바 천연가스, 석탄, 타르샌드(역청모래), 혈암유(頁岩油), 에탄올, 핵분열, 태양광, 풍력, 수력, 조력, 메탄하이드레이트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체 에너지들조차도 석유의 고갈을 메워주진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유가 뭘까? 그  에너지들을 생산하는 과정들이 실은 석유로 가동해야 만들 수 있고, 석유로 운송해야만 쓸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까닭이라고 한다.

"액티브 방식(태양광발전)은 사정이 다르다. 액티브 방식에는 입증된 기술이 존재한다. 그리고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만큼은 아니어도 꽤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태양광발전이 화석 연료 경제의 범위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실리콘과 플라스틱과 금속을 이용해 태양전지를 만들 줄 알며, 플라스틱과 납을 이용해 축전지도 만든다. 전기의 저장과 흐름을 조절하는 충전 컨트롤러나 변환기 같은 것들을 만드는 법도 안다. 하지만 석유나 가스나 석탄이 없는 미래에도 그런 것들을 만들 수 있을까?"(156쪽)

한편 이 책은 무분별한 석유 사용과 함께 뒤따라 급증하고 있는 질병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에이즈나 사스나 광우병 같은 '합성' 세균 같은 신종 질병뿐만 아니라 항균제에 면역성을 갖게 된 질병들, 그리고 바이러스성 전염병인 독감이나 새로운 영역으로 침투해 가는 생물 매개 질병들도 실은 석유산업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루나 이틀이면 세계 어느 곳으로든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그에 따른 질병들도 세계 어느 곳으로든 손쉽게 퍼져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뭔가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향후 50년 시대의 장기 비상시대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이 책에서는 고유가 대비책으로 여행과 운송의 운행규모도 서서히 줄어들게 될 것이고, 대신에 가까운 주변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며 살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장기 비상시대의 교육사업도 점차 사장 산업이 될 수 있고, 변호사나 부동산 중개업과는 달리 농업이나 축산이나 목수 일등 진짜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의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 모든 것들이 원유고갈에 따른 전망이다. 그러니 이 책을 번역한 이한중 씨가 권정생 선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에 있는 내용으로 이 책을 갈무리하고 있는 것은 뜻 깊은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승용차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달아나야 한다. 30평짜리 아파트에서 달아나 이전에 우리가 버려두고 떠나왔던 시골로 다시 돌아가서 15평짜리 작은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 가까운 데는 걸어 다니고 먼 곳에는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녀 한 달에 백만원 하던 생활비는 50만원으로 줄어들 것이다. (중략) 작은 집에서도 네 식구 다섯 식구는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승용차를 버리면 기름 걱정 안 해도 되고 일부러 걷기 운동 안 해도 자연히 걸어 다니게 되고 살찔 걱정도 없다. (중략) 그러기 위해 가난한 삶을 우리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승용차를 버리고 30평 아파트를 반으로 줄이는 길뿐이다. 그래야만 석유 전쟁에 파병을 안 해도 떳떳할 수 있다."(396쪽)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