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 ⓒ 오마이뉴스 유성호
찬 밤이다. 풀벌레 우는 찬 밤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그녀는 지금 35미터 높이의 '공중감옥'에 고립되어 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35미터 공중감옥에 고립된 채 잘못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고 외치고 있다. 앗 뜨거 앗 뜨거, 이글거리는 공중철판의 여름을 지나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차디찬 밤을 견뎌야 하는 공중철판의 가을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다. 그 끔찍한 날들은 벌써 270여 일을 훌쩍 넘었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그녀를 그 공중감옥에 방치할 것인가.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에서 말한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라는 말이 뼛속 깊이 사무쳐오는 시월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열자는 사람들이 모여 떠나는 희망버스도 벌써 5차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에서도 정치권에서도 정부에서도 일관되게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이토록 일관된 자세라니! 잘나고 똑똑한 그네들이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만 않았다면 김진숙씨는 진즉에 계단을 타고 총총 걸어 내려왔을 것이다. 희망버스 따위 또한 떠날 일 없었을 것이다. 이게 진정 사람이 주인인 세상인가. 참으로 참혹하고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해도 119대원이 출동하여 구해주고 지켜주는 세상인데, 우리는 김진숙이라는 사람을 270일도 넘게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다. 정녕 우리에게 희망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어쩌다가 우리는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사실, 그 전까지 나는 부끄럽게도 세 번이나 떠났던 '희망버스'를 타지 못했었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그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조금은 덜어내고 싶어서 그곳에 갔는지도 모른다. 도착시간 오후 6시 12분. 여전히 불볕이라 40도는 족히 될 크레인 위에서는 저녁 끼니를 때우는 중이라고 했다. "좀 이른 시간 아닌가?" 라고 누군가 혼잣말을 하자 "전기를 끊어 놔서 해가 지면, 숟가락조차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어요" 라는 푸념이 들려왔다. 다름 아닌 김진숙씨와 함께 고립된 85호 크레인 상부 아래칸의 네 명의 노동자 중 한 명의 아내였다.
그녀는 성냥개비처럼 말라있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불이라도 당겨지면 순식간에 사그라질 것만 같은 얇디얇은 성냥개비 같았다. 금방이라도 툭하고 끊어질 것만 같은 성냥개비,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 성냥개비 같은 여자가 마저 입을 떼었다. 지난 설날에 자식들이 고립된 아버지를 향해 세배를 했는데 여직 세뱃돈을 받지 못했다고, 하루라도 빨리 저 크레인에서 내려와 세뱃돈을 주면 참 좋겠다고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공중감옥'에 고립된 그녀... 언제까지 내팽겨쳐 놓을 것인가
▲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와 영화인들이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희망버스 지지 한국영화인 276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며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지난 7월 경향신문사 일층로비를 지날 때였다. 누군가 쩔뚝쩔뚝 내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말이다. 다름 아닌 '희망버스'와 함께하고 있는 송경동 시인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친 그는 무척이나 초췌해 보였다. 그런 그와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양말도 신지 않은 그의 한쪽 발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의 발엔 거짓말 안보태고 곡괭이로 찍어놓은 것 같은 흉터가 새겨져있었다.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이어 찍힌 듯한 끔찍한 'ㄴ'자 흉터. 아무리 봐도 앞으로 그는 평생 발을 절뚝여야 할 사람으로 보였다.
따로 묻진 않았지만 '기륭전자 현장'에서 얻은 끔찍한 흉터임에 틀림없었다. "괜찮아, 별거 아냐", 웃는 그가 형이 아니었다면 나는 쌍욕을 실컷 해댔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에게 그런 말을 해댈 자격이 없다.
도대체 그가 무슨 배후를 했는지, 도대체 그가 무슨 손톱만큼이라도 나쁜 일의 배후를 할 위인이라도 되긴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배후자'로 지목 받아 검찰에서 날아온 체포영장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만 했다. 어이없게도 그는 여전히 수배 상태에 놓여있다. 그의 생활 또한 '공중감옥'과 별반 다를 것도 없을 터이다.
그러니까 그 찜통의 여름. 해고 노동자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힘내라, 김진숙!'과 '한진 스머프, 힘내라!'가 적힌 그것은 곧 85호 크레인을 향해 걸렸다. 85호 크레인에 고립된 김진숙씨와 해고 노동자들이 길 위의 해고 노동자들과 마주서서 잠시 힘차게 손을 흔들어댔다. 자꾸 눈물이 났다. 잠시 후 그 곁으로 '생명·평화를 위한 백배 서원'이라 쓰인 또 한 장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그리곤 곧이어, 두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백배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85호 크레인에 고립된 김진숙씨와 노동자들이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막막하게 생각했다. 아니 그때만 해도 곧 내려올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여직 공중에 떠 있다. 참 오사게도 가볍게 떠있다.
다시 말하지만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그녀는 지금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3 5미터 높이의 '공중감옥'에 고립되어 있다. 함께하는 해고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열자는 사람들이 모여 떠나는 희망버스도 벌써 5차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녀를 그 공중감옥에 내팽개쳐 놓을 것인가. 스테판 에셀의 말이 아니어도 분명한 건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덧붙이는 글
박성우씨는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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