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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농업과 음식 전통, 지구적 식량 문제의 해답"

2011 슬로푸드대회 국제컨퍼런스, 아시아 리더들의 연대회의 제안

등록|2011.10.07 10:59 수정|2011.10.07 10:59
"인간의 절제할 줄 모르는 욕심 때문에 하늘과 농부의 관계, 우주 자연과 농부의 관계, 농부와 소비자의 관계는 신뢰가 무너지고, 나눔이 없고, 모든 게 돈으로 계산되는 삭막한 관계로 굴절되고 말았습니다. 유기농업으로 생산된 농산물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물'이 아니라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고 회복해주는 '매개물'입니다."

2011 슬로푸드대회 개막식이 열린 9월 29일, 경기도 남양주시청 제2청사에서는 '아시아·오세아니아의 음식 다양성과 유기농 발전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국제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컨퍼런스에는 네팔, 뉴질랜드, 레바논,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태국, 필리핀, 한국, 호주 등 아시아·오세아니아 14개국에서 온 22명의 슬로푸드 전문가, 교수, NGO 활동가들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 제17차 세계유기농대회와 함께 열린 2011 슬로푸드대회 개막식 ⓒ 슬로푸드코리아


제1세션의 주발표자로 나선 김종덕 경남대 교수(슬로푸드문화원 부이사장)는 "오늘날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세계 식량체계에 편입된 후 음식 다양성과 음식문화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며 "이 지역의 국가들은 글로벌푸드의 유입으로 식품안전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기아가 증대되고, 식량주권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아시아·오세아니아에서 세계 시장과 경쟁하기 위한 관행농업이 확산되면서 생물다양성 저하, 토양 오염 등으로 인해 영농의 지속가능성이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식량위기에 직면해 이 지역 국가들이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슬로푸드와 로컬푸드의 확산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세계 식량체계 편입 후 식량 위기

태국 슬로푸드 지부의 라차보딘 분차요 지부장은 재래종 종자 보존과 보급을 주요 과제로 노력하는 작은 유기농 농장인 '펀펀(Pun Pun)'을 소개했다. 펀펀의 경영자들은 농민들에게 보급한 재래종 종자로 키운 채소 품종이 홍보 부족으로 팔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이 재래종 채소들을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식당을 열었다. 남아도는 채소 물량을 소화하고,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펀펀 유기농 채소 식당'은 현재 종다양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이자,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훌륭한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 29일 남양주시청 제2청사에서 열린 '아시아·오세아니아의 음식 다양성과 유기농 발전을 위하여' 국제컨퍼런스 ⓒ 슬로푸드코리아


네팔 슬로푸드 지부의 알준 바타라이 지부장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사람들 중 70% 가량이 극빈국 농촌지역에 살고 있으며, 이중 거의 절반 이상의 남녀가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을 겪고 있고, 절반은 글을 깨치지 못했다"고 극빈국의 기아 문제를 짚었다.

그는 최근 유가 상승으로 인한 식량 가격 폭등 문제를 지적하고, "가장 가난하고 소유지가 없는 이들, 생계를 책임진 여성들이 식량 가격 상승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며 정치적 변화를 위한 행동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사자가 말을 하지 않으면 사냥꾼의 이야기만 남는다"

인도의 생물다양성 보호 기관에서 활동하는 쁘랑 로이는 "세계화와 단일화의 여파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 가량에 영향을 주는 토착민의 지식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며 "천년 동안 내려온 전통지식이 환경 문제와 인류의 참살이에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자가 말을 하지 않으면 사냥꾼의 이야기만 남는다"는 인도의 전통 속담을 인용하며, "여러분 자신이 스토리텔러가 되어 여러분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슬로푸드 운동의 철학이 보다 확산되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컨퍼런스 참가자들은 향후 슬로푸드 운동의 발전을 위해 아시아·오세아니아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데에도 인식을 같이 했다.

김병수 슬로푸드문화원 정책위원장은 "고대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가 있으며,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태동한 아시아의 다양하고 우수한 음식과 농수산물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사업을 함께 하자"면서 아시아 각국 슬로푸드 리더들의 연대회의를 조직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유럽을 비롯한 다른 대륙의 오늘날 음식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음식 재료와 요리법과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면서 "패스트푸드와 정크푸드의 만연으로 음식이 건강한 생명 유지를 위한 약이 아니라 독이 되어버린 오늘날, 아시아의 농업과 음식의 전통이 전 지구적 인류의 삶과 문명에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각국 슬로푸드 리더들의 연대회의 제안

이와 맥락을 같이 하여 30일 오전 남양주 체육문화센터에 마련된 슬로푸드마당에서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 지부장 회의가 열렸다.

▲ 2011 슬로푸드대회 개막식에서 발언하는 파올로 디 크로체 국제슬로푸드협회 사무총장 ⓒ 슬로푸드코리아


파올로 디 크로체 국제슬로푸드 사무총장은 "국제슬로푸드 운동의 힘은 바로 150개국 10만 명의 회원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운동이 발전하려면 돈과 전문가와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지역 조직이 발전하지 않으면 이것은 힘들다"며 지역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농부, 학생, 소비자, 정치인, 언론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세계의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음식을 공유하고 비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아시아의 슬로푸드 리더들에게 당부했다.

파올로 사무총장은 또 "한국에서 열린 이번 슬로푸드 대회와 각각의 이벤트는 정말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잡지와 출간물들 역시 훌륭했다"고 칭찬했다.

김원일 슬로푸드문화원 사무총장은 "작년에 내 친구가 슬로푸드대회에 왔었는데, 다른 식품 박람회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더라. 하지만 그것은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이런 회의와 워크숍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전시 공간에서 보여주는 쇼는 슬로푸드 운동을 대중화하기 위한 방식이고, 무대 뒤의 이런 모임과 컨퍼런스는 슬로푸드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데 의미 있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화를 위한 쇼와 네트워크를 위한 논의가 함께 발전해야"

한편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한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 리더들은 이번 한국 방문과 슬로푸드 대회가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감사와 칭찬의 말을 잊지 않았다. 

▲ 2011 슬로푸드대회에 참석한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 리더들의 개막식 입장 ⓒ 슬로푸드코리아


태국에서 유기농 음식점을 운영 중인 요리사 라차보딘 분차요 씨는 "한국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들이 인상적이었다"며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태국에서 굉장히 유명하다,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마오리 원주민 대표로 이번 회의에 참석한 펄시 티피니 씨는 "우리 고조할아버지는 음식이 곧 약이고,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고 가르쳐주셨다"면서 자연과 우주의 원리에 순응해 살아온 마오리족의 문화적 전통을 설명했다. 이는 한국의 '식약동원(食藥同原, 음식과 약은 같은 것이다)'의 원리를 연상케 해 참가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마오리 족의 치료사이기도 한 티피니 씨는 양말을 신고 다니지 않는다. 땅의 기운을 그대로 느끼고 교감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한국은 매우 정신적인(spiritual) 에너지가 살아있는 땅"이라면서 "한국인들이 스스로 가진 자산을 소중히 여기고, 개발과 발전보다 자연에서 받은 선물인 아름다운 강산을 잘 보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과 멋진 대회가 인상적이었다"

차를 재배하는 네팔개발계획의 알준 바타라이 씨는 "한국 언론에서 김치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는데, 음식 문화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이곳 한국에 와서 많이 배우고 있다. 한국의 전통 민화를 이용한 전시회장의 예술적인 구성이 마음에 든다"고 소감을 말했다.

▲ 국제 슬로푸드 리더들은 아시아·오세아니아의 식량 위기 해결을 위해 연대와 화합을 다짐했다. ⓒ 슬로푸드코리아


부인과 함께 방한한 슬로푸드 일본 협회 토시아 사사키 부회장은 "2004년에 일본 슬로푸드 본부를 처음 창립할 때 회원 수가 2천명이었는데 지금은 1400명으로 줄어들었다. 최근에 있었던 지진과 쓰나미가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면서 경제 문제나 노동력 문제 등 각 지부가 나름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올해 12월에 나가사키에서 테라마드레 대회가 열린다고 소개하며, 한국과 많은 교류를 하고 싶고 한국인들이 많이 참석해주었으면 한다는 바람과 함께 한국어로 만든 팜플렛을 가져와 전달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아킬벡 카시모브 슬로푸드 지부장은 "키르기스스탄에서도 테라마드레 회의를 개최하고, 농부, 식품 관련 종사자들이 많이 온다"면서 "올해 처음 한국에서 열린 국제 지부회의에 참석했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29일, 30일 이틀에 걸쳐 열린 이번 컨퍼런스는 슬로푸드문화원이 주관하고 남양주시가 주최한 '2011 슬로푸드대회'의 메인 행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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