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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노끈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

등록|2011.10.08 14:17 수정|2011.10.08 14:17
"내가 뒤로 넘어지면서 이제 죽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겨. 그대로 누워 있었어... 이 네지마시(나사)가 훌렁히 빠져서 요기를 때리면서 뒤로 넘어 진 거여."

할머니는 내가 들어서자마자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숨도 안 쉬고 연이어서 이야기를 늘어 놓으셨다.

"이거여. 내가 새벽에 오줌을 누려고 일어 나는디 그냥은 못 일어나닝께, 이걸 자버 당기다가 그냥  네지마시(나사)가 쏙 빠지매 요길 칭 거여."

할머닌 자전거 철제 안장 같은 사각형의 철제를 가져다가 나에게 보여준다. 할머니의 인중은 1센티 정도의 선을 그으며 이제 겨우 아문 상처를 보인다. 혼자 놀다 다친 상처를 보여주며 말하는 아이처럼,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다 만난 반가움처럼, 혼자서도 잘 처리했다는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숨차게  말한다.

할머니가 무용담처럼 말할 때마다 놀라며 안쓰럽게 들어주는 것으로 할머닌 그 보상이 충분한 듯 얼굴이 점점 활기를 띠셨다.

"그래 가꾸 내가 다시 이걸 만등겨. 저거 있자녀…."

할머니가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눈으로 따라가자 철제 손잡이가 빠진 벽에 튼튼한 노끈이 길게 늘어져 있다. 얼마나 망치로 내리쳤는지 큰 못이 서너개 문틀에 짓이겨지듯 박혀서 노끈을 꼭 조이고  있었다.

"이걸 어르신이 박으신 거예요?"

다시는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겠다는 할머니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려…."

며칠 전, 할머니가 새벽에 철제손잡이를 잡고 일어서다 박혀 있던 나사가 쑥 빠지면서 튀어나온 철제모서리로 코밑을 관통한 일이 벌어졌다. 넘어지면서 손에 잡고 있던 철제모서리로 자기 얼굴을 찍으며 뒤로 넘어졌다. 뒷머리도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다행히 내출혈은 없다 한다. 아침까지 혼자서 참고 기다리다 근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셨다.

이처럼 물가에 놓인 아이같이 불안 불안한 연로한 독거 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방문간호를 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다. 보건소의  방문간호사이다.

젊은 사람이라면 '119 소방 안전센터'에라도 연락해 도움을 받겠지만 모든 것이 취약하기만한 노인  혼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아침까지 기다려 근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것이다.

이 집은 올 여름에 폭우로 지하방에 물이 넘쳐서 양수기로 물을 퍼낸 적도 있는 집이다. 눅눅한 할머니의 지하 단칸방 앞에 문도 없는 초라한 화장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화장실이라고는 하지만 오래된 누런색 좌변기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변기 카바 노릇을 하는 헌옷이 빙 둘러져 있다. 언제 만들었는지 때가 꼬질꼬질한….

"휴…."

할머닌 그걸 보여주며 민망한 듯 웃고, 나는 안쓰럽고 어이없어서 웃는다.

친한 친구 같은 지역 119소방관 선생님께 전화를 해 연계를 준비한다.

"샘! 우리 할머니가 혼자 다급할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무엇 좀 없을까요?"
덧붙이는 글 지역신문에 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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