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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친일파·뉴라이트는 한뿌리...서울대 탓도"

[인터뷰]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저자 이주한

등록|2011.10.14 17:12 수정|2011.11.08 18:21
노론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당파싸움, 망국 같은 말들일 것이다. 노론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지만 흘러간 과거의 일로 여기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 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졸업 이후 노론이라는 단어에 대해 특별한 의미부여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역사교양서를 몇 권 읽은 뒤 노론 소론의 문제가 과거완료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내게 충격을 안겨 준 책은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등과 같은 이덕일의 역사교양서였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사도세자의 고백>,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와 같은 대중역사서 저자 이덕일은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에서 조선 후반기 집권세력 노론 후예들이 친일파로 살아남고, 그들 영향력이 아직도 한국역사학계를 지배한다며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이덕일은 노론 후예, 즉 친일파 후예들이 정설로 만든 '고조선 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존재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정면 반박한다. 또한 노론후예학자들은 단군조선을 부인하고 독립운동사를 말살해왔다고 말한다.  

"해방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대부분의 역사학도들에게 현대사는 일종의 금기 영역이었다. 이른바 국사학계 태두가 만들었다는 현대사 연구 금지 원칙은 표면상 현대사는 객관성을 갖기 어렵다는 명분을 들고 있었다. 청동기시대가 되어야 고대 국가가 시작된다는 국사 교과서의 공식이 단군조선을 부인하기 위한 의도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한국에만 있는 현대사 연구 금지 원칙 또한 독립운동사를 말살하기 위한 의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한참 후였다." 

이덕일의 이 같은 주장은 노론소론 문제를 지나간 역사의 무의미한 퇴적층 정도로 여겼던 내게 큰 의문을 던져주었다. 도대체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이른바 국사학계 태두'로 불리는 이병도를 필두로 하는 식민사관이 건재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직도 식민사관이 건재한 이유

▲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표지. 저자 이주한은 조선 시대 노론이 식민사관으로 이어졌고, 이들이 청산되지 않은 채 한국의 역사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

이덕일과 함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이주한(47)은 최근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덕일과 주류 사학계의 논쟁을 추적하면서 우암 송시열(1607~1689년)을 영수로 하는 노론 세력 후예들과 식민사관이 여전히 한국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음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10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이주한 연구위원을 만나 역사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노론 권력의 비밀에 대해 들어 보았다.
- 일반인들은 노론이라는 말은 역사책에나 나오는 죽은 단어로 여긴다. 어째서 노론이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것인가?
"조선 후기 집권 세력인 노론 후예들은 친일파로 살아 남았고, 이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강단 역사학계를 지배하는 것은 조선총독부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이다."

- 노론 후예들이 대부분 친일파가 됐나?
"친일파가 해방 후에 청산되지 않고 기득권층이 됐듯이 조선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노론의 대다수가 나라 팔아먹는데 조직적으로 가담하고 일제 앞잡이 노릇을 했다."

-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에게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은 76명의 수작자를 분석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수작자는 사실상 '노론당인 명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권 노론 일색이다. 76명 중 80퍼센트에 가까운 57명이 노론 계열이다."

-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식민사관이 건재하게 뿌리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일제는 조선의 얼인 조선어와 조선사를 치밀하게 통제하고 조작했다. 일제는 조선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고, 조선은 예로부터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논리를 조선사편수회와 경성제국대학을 통해 창조했다.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가 국사학계 태두로 서울대에 있으면서 식민사관을 정설로 굳혔다. 그가 주장하는 실증사학의 미명을 거둬내면 황국사관이다. 경성제국대학 후신인 서울대학교가 학문권력을 장악하고 민족사관이 단절되면서 식민사관은 견고하게 한국사를 틀어쥐었다."

서울대에서 왕따 당한 민족주의 역사학자의 증언

안중근 의사가 사형 당한 여순감옥에서안중근 의사가 사형장으로 가면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던 장소에서 기념촬영을 한 이주한 연구위원(2006년 겨울). ⓒ 권태균


- 조선시대 노론과 한국 주류역사학계를 연결하는 숨은 고리가 바로 친일파, 친일사학자란 말인가? 
"바로 그 점이 주류 사학계의 아킬레스건이다. 얼마 전 연세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하면서 서울대 국사학과의 식민지성을 비판했던 김용섭 선생은 회고록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지식산업사, 2011년)를 통해 식민주의 역사학을 청산하지 못한 한국 주류사학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용섭 교수 회고록을 보면 '6·25전쟁 이래로 남에서 제기되는 통사의 편찬 문제는, 아직은 깊은 연구에 기초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청산 없이, 우선은 기성의 일제하 세대 역사학자들에게 일임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기성학자들은 일제하 일본인 학자들에게서 역사학을 배우고, 그들과 더불어 학문 활동을 같이해 온, 이른바 실증주의 역사학 계열의 학자들이 중심이었다'는 증언이 있다." 

-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런 사실을 역사 연구자들은 다 알고 있나?
"이는 역사학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용섭 교수는 한 일간지 인터뷰를 통해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민족주의 성향 때문에 서울대 교수 재직 시 왕따를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고백하기도 했다. 주류역사학계가 노론 후예로서 식민사관을 확대재생산해온 생생한 증언과 증거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어서 다행이고 무척 고무적이다.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를 읽으면서 새삼 충격을 받고 전율했다. 김용섭 선생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말이 쉽지 실천은 간단치 않다."

-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진보적인 경향으로 알려져 있다. 교과서가 너무 좌편향으로 쓰였다고 보수단체나 뉴라이트 계열에서 문제 제기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한국사는 한마디로 누더기라고 보면 된다. 일제가 조선사를 날조할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고대사였다. 조선의 뿌리, 조선의 정체성을 근원에서 뒤집는 침략주의 정책으로 일제는 조선사를 다뤘다. 일제가 왜 조선사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정설로 만들겠나?"

- 근현대사는 진보이면서, 고대사는 식민사관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 비틀어진 한국고대사의 원형을 밝히려는 노력을 국수주의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사에 대해 식민사관의 텍스트만을 인정한다. 주류역사학계는 새로운 팩트가 발견되면 무시하거나 팩트 자체를 자의적으로 조작하는데도 말이다. 민초를 고통으로 내몬 노론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말하는 것도 모순이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다음 책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다룰 계획이다."

-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의 부제들을 보면 '정별설, 노론 수호의 총대를 메다' '안대희의 정조 독살설 비판' '오향녕의 극우 파시즘' '노론사관의 적통 유봉학' 등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했다. 명예훼손의 소지는 없나?
"나는 있는 것을 있다 하고 없는 것을 없다 해서 걸릴 것이 없다.  출판사에서 법률적 검토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 현직 대학교수를 극우 파시즘이라는 원색적 용어를 사용해 비판했는데 너무 심한 독설 아닌가? 왜 극우파시즘이라고 말하는가?
"단지 정치권력 문제만으로 한정해서 쓴 개념은 아니다. 노론의 가치는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치며 극우파시즘으로 연결된다. 나와 다른 견해, 다양한 상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정설로 상대를 지배하려 한다. 강한 권력 독점과 지배욕, 통제욕, 대중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주의를 극우파시즘이라 표현했다. 노론이즘은 한국판 메카시즘이고 극우파시즘과 맥을 같이 한다."

노론에서  친일파, 다시 뉴라이트로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앞)과 이주한 연구위원(뒤)이 회원들과 함께 강화도 정제두 묘를 답사했다. 정제두는 주자학만이 유일사상으로 자리 잡은 조선 후기에 목숨 걸고 양명학을 연구했다. ⓒ 최진섭

- 얼마 전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국정감사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일부 학자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교과서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역시 식민사관의 잔재라 할 수 있나?"뉴라이트 아니 올드라이트의 뿌리도 결국은 청산하지 못한 식민사관이고 노론사관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민족의 이해보다 자신의 이해를 앞세우는 사대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신문 보도를 보면 뉴라이트 계열의 한국현대사학회가 정부에 낸 건의서에서,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내용을 지우자고 요구했다고 한다."

- <한겨레>는  '반국가, 반민주 맨얼굴 드러낸 한국현대사학회'라는 9월 27일자 사설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을 합리화시키는 한국현대사학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이들의 행위는 "대한민국 정통성의 원천인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투쟁을 기억에서 없애려는 것이다. 이것은 일제의 병탄을 정당화하고 친일을 합리화하기 위한 식민지 근대화론의 밑돌 구실을 한다"고 쓰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여전히 역사학계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나? 극소수의 견해 아닌가?
"식민사관이 역사학계 주류이듯 일제청산을 제대로 못한 현대사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좋은 토양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을 그저 한 이론이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승만 친미독재, 박정희 개발독재, 천민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맥락은 식민지근대화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겉으로는 식민지근대화론과 식민사관을 비판하지만 각론과 구체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

- 몇몇의 노론 후예들, 식민사관의 후예들이 남아 있다고 어떻게 식민사관이 주류 사학계를 지배할 수 있을까.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 놀랄 것도 없다. 지금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을 인구구성으로 보면 몇 퍼센트나 될 것으로 보는가.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문제는 시스템과 사회를 이끄는 지배이데올로기이다.  송자학 연구소, 우암학 연구소 등은 모두 국고로 운영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청 주요 요직도 노론후예학자들이 주로 맡아 왔다. 이번 책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가 해체된 뒤 어느 한 분야도 친일잔재가 제대로 청산된 곳이 없는 것 같다. 독립운동가의 얼굴이 새겨진 화폐 하나 없는 나라이고, 친일파의 동상이 여러 대학에 버젓이 세워진 나라 아닌가. 상해임시정부 정통성마저 부정하려는 '자유 민주' 국가 아닌가?"

- 헝클어진 역사의 실을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한다고 보나?
"우리 모두 큰바위 얼굴이다. 헝클어진 역사의 실은 나부터 풀어야 한다. 식민사관을 청산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제1과제다. 모든 권력은 역사를 통제하고 조작한다. 조지 오웰의 말처럼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를 지배하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내 삶을 걸고 노론의 후예들, 식민사관의 후예들과 맞서 싸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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