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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이 진짜 이야기하는 것

책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를 통해 본 우리 사회

등록|2011.10.13 10:51 수정|2011.10.13 11:59

▲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 열다섯공감

지난 1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실상 정당정치의 위기'라며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며 극한 어조로 한나라당의 잘못을 질타했다고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 지원 여부를 놓고 고심하던 박근혜 전 대표도, "정치 전체가 위기"여서 힘을 보탠다고 밝혔다.

정당정치의 위기는 비단 여권에서만 흘러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대부분의 언론까지 '정당정치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정당정치의 위기가 곧 정치의 위기인지, 또 정치 발전에 장애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과 모든 정치권, 언론이 위기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뭔가 기존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되집어 보면 작금의 위기가 어디 한 분야,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세계경제 전체가 나락으로 빠져들고, 국가경제는 심각한 위기 국면에 접어 들고 있으며, 서민경제 또한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암울한 전망들만 넘실거린다.

안철수 때문에 정당정치가 위기라고?

정당정치의 위기든, 정치의 위기든 이 '위기'는 이러한 세계적 경제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은 한 뿌리에서 잉태된 문제이며 위기를 키워낸 숙주 또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 두 분야에서 일어나는 위기의 공통의 분모를 찾고 기존 질서 전체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진단도 처방도 결코 쉽지 않다.

정치판에 발들여 놓은 적 없는 IT지식인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으로 야기된 '안철수 현상'. 박원순 후보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그의 행보는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지만 여전히 '위기의 대안'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정당)정치가 위기고 세계가 경제적 대혼란에 빠져드는 이때, 안철수는 대안으로 떠오른 것일까.

"그러나 평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은 안철수가 아닌 민심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라는 개인의 위대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민심이 만들어 낸 것이다. 민심은 안철수라는 스타성만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민심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대안적 리더십을 안철수는 통해서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에서 민경우 외. 열다섯의 공감.

저자 민경우의 지적은 타당하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사퇴하고 많은 정치인의 출마가 언론에 오르내릴 때, 대부분의 사람은 무관심했다. 특히 여당인 한나라당이나 야당인 민주당 인사들의 출마 소식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또 한나라당에서 되겠어?' '민주당이라도 별 인물 있겠어?' 이런 정도가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의 생각이었다. 이런 와중에 박원순의 출마 소식에 이어 안철수 교수의 출마소식이 흘러 나왔다.

구시대 정치와의 단절이 국민의 요구

정치권은 요동쳤다. 박원순과 안철수의 동시 출마는 여당의 반사이익을 가져오기에 한나라당은 다소 기뻐했다. 그러나 안철수 교수가 "한나라당이 잘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박원순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한나라당은 패닉 현상에 빠져 들었다.

안철수는 '그분'에서 졸지에 '강남좌파'가 되어 버렸다. 이런 현상은 민주당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박원순 후보와 안철수 교수 두 사람의 출마가 동시에 거론되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관리도 쉽지 않은 모양새였다. 또 어떻게 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정당 중심으로 끌어갈 것인가를 두고 고심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이번에만 감지된 게 아니었다. MB정권의 실정과 부패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높아 갔지만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조차 여론을 선점하고 국민에게 희망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MB정권 하에서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야당 쪽 후보들이 선전을 했지만,  MB 실정에 대한 실망감과 지역의 역학구조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예전 "모든 게 노무현 탓"에서 "MB 싫어"로 바뀐 정치 구도. 한동안 국민의 정치 요구는 분출구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안철수라는 인물의 기대감으로 용암처럼 폭발해 버렸다. 그것도 차기 대선 주자 지명도 1위 박근혜 전 대표를 흔들면서 말이다.

"국민들은 기존 정치권의 자성과 혁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 정치와의 단절' 그리고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원하고 있다."

"안철수는 IT산업의 상징이다. 1980년대 초반 IT산업을 맨 처음으로 받아들인 세대로서 수직형 효율화 모델에 맞선 수평적 네트워크 모델을 제기하고, 개방형 리더쉽을 구축하며 이를 몸소 실천해 왔다. 이 때문에 안철수라는 이름은 IT시대의 가치와 대안적 리더쉽을 대변한다. 이것은 현재의 정당정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의미한다" -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에서.

박정희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까지 50여 년의 긴 세월 대한민국은 화두는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군사정권 문민정권 모두 산업화를 주창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긴 세월 동안 국민이 제대로 주인 행세를 한 적은 없었다. 보수정권이나 진보를 내세우는 정권조차도 제왕적 모습을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에게 대의를 양도받은 정치꾼은 여야 할것 없이 '내 말이 옳이니 나를 따르라''를 강요했다. 국민은 언제나 계몽해야 될 대상이었고 정치가나 지식인들의 사명은 국민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9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밝힌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포옹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경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결정은 사용자의 고유 영역이었으며, 수출이 잘되고 회사가 커나가기 위해서 노동자는 인내만을 강요받았다. 회사가 잘 되어야 노동자도 먹고산다는 말은 산업화 이후 50여 년 동안 되풀이되고 있다. 수출이 잘 되기 위해서는 환율급등으로 인한 물가 인상도 참아야 하고, 차 한 대 수출하면 얼마나 이익인데 그까짓 나락 한 가마니에 목을 매냐고 개방을 정당화했다.

새로운 패러다임과 수평적 리더쉽이 필요한 때 

그러나 국민들은 알기 시작했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의 손에 의해 뽑힌 정치인들이 자기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의 말만 믿고 따라가기 보다는 서로 소통하고 토론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가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회사가 잘 되어야 노동자가 살 수 있지만, 회사가 잘 되어도 노동자는 가난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차 수천 대를 수출할 수 있는 개방이 되어도 그 탓에 오른 물가나 폭락하는 나락값은 어떤 보상도 없다는 사실을. 국민의 힘에 통제되지 않는 모든 권력(정치, 경제, 언론 등)은 부패한다는 것을. 그래서 "국민들은 기존 정치권의 자성과 혁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 정치와의 단절' 그리고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븐 잡스 죽음의 세계적 애도. 미국 월가에서 시작돼 확산 일로에 있는 1%를 향한 99%의 시위,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수그러들지 않는 안철수 신드롬. 이런 현상들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수직적이고 음모적인 그리고 독선적이고 독점적이기까지 한 정치와 경제 구조를 이제 수평적이고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보자는 전 세계인의 요구이자 절규다. 기존 정치공학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안철수 현상. 이 또한 수평적 리더쉽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저항인 것이다.

IT 기술의 혁신. 높아진 의식 수준과 학력은 더 이상 국민을 독재와 민주의 프레임 속에 갇혀 놓지 못한다. '나를 따라라'식은 리더쉽으로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80년대 대학에서 대자보는 알려내고 깨우침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소통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 또 앞으로 수많은 선거,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될 지점에 왔다. 구시대 프레임을 이제 바꿀 때가 됐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진보의 세상을 희망하는 운동진영이야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정치인, 지식인들의 역할은 바꾸어야 합니다. 제시하고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토론하고 모아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안철수 교수에게 배워야 할 지점은 이것입니다.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하는 기자회견에서 '경쟁에서 살아가는 미래세대를 위로하고 싶다'고 한 안철수 교수의 말 이것이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 나에게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저자 민경우씨의 대답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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