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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코뮨전'...국내외 작가들의 작품들도 선보여

등록|2011.10.13 19:36 수정|2011.10.14 13:47

▲ 백남준아트센터 카페테리아에 걸린 'TV코민'전 대형홍보물 ⓒ 김형순


2012년 아날로그 텔레비전 송출 종료를 앞두고 텔레비전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력과 그 관계를 모색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012년 1월 24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에서 진행 중인 'TV 코뮨전(展)'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대부터 텔레비전을 유기체로 연구하고 실험하려고 했던 백남준의 정신을 이어가는 외국작가 가브리엘 레스터(네덜란드), 앤트 팜(미국), 웡 호이 챙(말레이시아) 등을 비롯해 국내작가 정연두, 임흥순, 박준범, 하태범, 박현기 등의 작품도 이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다.

텔레비전 화면, 캔버스가 되다

▲ 백남준 I '萬里愛情(영원한 사랑)' 혼합매체(Mixed Media) 1990 ⓒ 김형순


백남준은 "TV는 멍청하기에 그 이미지를 변환하거나 왜곡해야만 똑똑한 기계가 된다. TV가 우리 삶을 공격하기에 그 반격으로 우리 스스로 TV를 만들자"라고 했는데 그는 텔레비전을 보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매체로 바라본 것이 틀림없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백남준의 텔레비전 미학을 좀 더 알아보자.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도 다빈치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컬러풀하게, 몬드리안처럼 깊이 있게,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성 넘치게, 폴록처럼 격렬하게 대상을 형상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텔레비전으로도 회화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이런 측면에서 백남준은 텔레비전 모니터를 캔버스로 봤을 확률이 높다. '전파에서 나오는 선이나 전자 붓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발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불가능해 보이긴 했지만 항상 '왜 안 돼(Why not?)'를 입에 달고 산 아방가르드 작가 백남준이 못할 게 무엇이 있었겠는가. 소품 '만리애정(萬里愛情)'은 바로 그런 화풍의 텔레비전 인물화다.

텔레비전, 비디오 그리고 모바일 아트

▲ 백남준 I '전자 오페라 2번(Electronic Opera No.2)' color, sound 7:30min 1970 ⓒ 김형순


텔레비전에서 비디오가 나왔고 이것이 기반이 돼 비디오 아트가 탄생했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면 1930∼40년대 RCA가 기업적 차원에서 텔레비전을 처음 개발했을 때 텔레비전은 생방송만 수신할 수 있었다. 그 이유 때문에 첫 텔레비전 송신 장면이 남아있지 않다. 후에 비디오가 나오면서 그 영상을 녹화하거나 재편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게 훗날 모바일 아트로 발전했다.

위 작품 '전자 오페라 2번'은 여러 실험을 거쳐 1970년에 발표한 비디오 아트의 고전으로 높이 칭송받는다. 베토벤 음악에 맞춰 피아노가 춤추듯 불타는 장면이 장관이다. 이런 게 가능했던 것은 비디오신서사이저 개발자인 일본인 기술자 슈야 아베(Shuya Abe 1932∼)의 도움도 컸다. 나중에 뮤직비디오를 상업화하는 데까지는 10여 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TV 코뮨, 인류공동체 구현
 

▲ 백남준의 'TV코뮨(Video Commune_An experiment for television)' 1970(오른쪽). 이 작품에는 보스턴 공영방송 WGBH와 최초로 작업한 인터액티브 퍼포먼스가 담겨 있다 ⓒ 김형순


1층 상설전시장을 지나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에 'TV 코뮨(Video Commune)'의 장면을 일부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제목의 작품이 나왔을까 궁금해진다.

백남준은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와 비디오 공동시장>(1970)'이라는 글에서 이 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공영 텔레비전 방송이 자국의 문화만 소개하고 상이한 문화를 알리는데 편협함을 보인다면 세계 평화는 위협받을 것이다"라고.  즉 국가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지구의 평화공동체가 깨질 것으로 전망했던 것이다.

특히 그는 아시아에 대한 서구 사회의 무지와 그 때문에 야기되는 단절과 소외를 염려하여 비틀즈의 음악에 4시간짜리 일본공영방송을 통째로 집어넣는다. 춤과 음악은 언어장벽 없이 국가 간의 벽을 넘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런 백남준이 염원한 이런 인류공동체의 이상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같은 위성예술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지구촌 식구들이 서로 하나로 만나는 가능성'을 연 셈이다. 미국인과 유럽인도 그들의 눈에 생소한 한국의 굿판을 접하게 된다. 이런 정신은 디지털 시대에 와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낳았고 비디오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유튜브(Youtube)로 진화됐다.

TV 부처, 동서 문화를 창조적으로 융합

▲ 백남준 I 'TV 부처(TV Buddha)' Video and sculpture installation 1976 ⓒ 김형순


백남준의 텔레비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역시 'TV 부처'다. 백남준은 "만약 당신 서구인들이 하이테크만 만든다면 전쟁이 날 것이다. 자연을 따르는 겸허한 삶을 위해서 강력한 인간적 요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연(natural) 반, 기술(technological) 반이 좋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TV 부처를 보고 있으면 그가 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백남준은 이를 통해 서양의 하이테크인 텔레비전과 동양의 선(禪)사상이나 평화사상을 융합하고 동서 간의 교감과 공존의 창을 열려고 한 것이다. 더 나아가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통해 생각하고, 반성하고, 명상하고, 성찰하는 인간을 탄생시켰다'라고도 할 수 있다.

TV 인간, 하이테크의 인간화

▲ 백남준 I '글로벌 인코더(Global Encoder)' 6 KEC 9-inch TVs, 1 Samsung 13-inch TV, steel frame, chassis, neon, satellite dish, 2 laser disk players, and 2 original Paik laser disks 1994 ⓒ 김형순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단지 돈을 벌어주는 먹통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매체로 보았다. 1969년 실제로 뉴욕에서 '창조적 매체로서 텔레비전(TV as a creative medium)전(展)'을 열기도 했다. 백남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텔레비전을 살아있는 생명체 혹은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까지 격상시켰다.

'로봇 K-456'도 그렇고 사이버 인간 '글로벌 인코더'도 그렇지만 백남준은 정약용, 슈베르트, 세종대왕 등과 같이 그가 좋아하는 인물 등을 모델로 TV 위인을 만들었다. 그는 정말 이런 텔레비전 조각으로 인간 영웅을 잉태시키려 했던 것일까.

텔레비전을 마사지하라

▲ 'TV코뮨전'에는 TV관련 국내외 도서도 소개된다. 그 중 하나인 '예술과 TV(Kunst und Fernsehen 1963-1987)' ⓒ 김형순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관련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지구촌'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캐나다의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M. McLuhan 1911∼1980)이다. 그는 <미디어의 이해>(1965)라는 책에서 미디어를 '인간의 연장'으로 봤다. 이는 백남준이 텔레비전을 인격체나 인간으로 본 것과 흡사하다.

맥루언은 또한 '미디어'를 '메시지'만이 아니라 '마사지'라고도 했다. 이런 뉘앙스는 기계를 의인화해 인격과 인간성을 불어 넣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요즘 흔히 쓰는 '터치 폰'도 이런 개념에서 나왔으리라. 기계마저 예술이 된다면 그 세상은 분명 아름답다. 하긴 백남준은 이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으로 새와 물고기 그리고 정원도 만들었다.

텔레비전은 문명 풍자하는 비평가

▲ 마틴 아놀드(Martin Arnold) I '그냥 해(Passage a l'acte/Acting out)' 6min 1993 ⓒ 김형순


위에서 보듯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기존의 개념을 해체하고 상이한 문화와 소통하는 인터페이스로 보다 다이나믹한 이미지이자 조각, 오브제이자 플랫폼으로 봤다. 이런 정신을 이어가는 이번 전에 출품된 20여 편의 작품 중 국내외 작가 각각 1명씩 소개할까 한다.

먼저 오스트리아 작가, 마틴 아놀드(1959~)의 작품(위 이미지)을 보자. 그는 심리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실험영화감독으로 평범한 사건에서 숨겨진 뭔가를 발굴해 작가적 관점에서 영화를 재해석한다. 위 작품은 전형적인 미국 할리우드영화다. 단란하게 식사하는 미국 중산층 가족인데 이를 우스꽝스럽게 변형시켜 그 이면에 숨겨진 허상과 위선과 공격성을 들춰내려 했다.

텔레비전은 인류학자, 주부들의 재탄생

▲ 임흥순 I '사적인 박물관 II' 드라마영상. 아카이브1-5 중 하나. 촬영장소: 상갈그린공원 2011 ⓒ 백남준아트센터


다음은 임흥순 작가의 '사적인 박물관 II'(위 이미지)를 감상해보자. 여기에 나오는 여성들은 용인시와 수원시에 거주하는 발랄하고 유쾌한 주부들이다. 작가는 주부들과 함께 다섯 번의 워크숍을 거쳐 위 작품을 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자신의 삶과 연관시켜 텔레비전을 시청 만하는 입장이 아니라 드라마에 참여하는 위치로 주부들을 탈바꿈시켰다.

임흥순 작가는 현지 조사, 직접 인터뷰 등을 통해 작품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해 옴니버스 형식의 비디오로 완성했다. 그렇게 사적인 인간(주부) 박물관을 영상에 담은 셈이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 매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보다 자유롭고 독립된 존재로 거듭 태어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위치 : 백남준 아트센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백남준로 10번지
입장료 : 성인 4000원 학생 2000원
전화번호 : 031) 201-8554
홈페이지 : www.njpart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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