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생환' 칠레 광부, 약물·알코올 중독
69일 만에 살아 돌아온 지 1년... 곤경에 처한 광부들
▲ 매몰된 지 69일 만에 살아 돌아온 칠레 광부들이 1년이 지난 지금 곤경에 처했다고 보도한 <산티아고타임즈>. ⓒ <산티아고타임즈>
2010년 10월 13일, 세계의 눈은 칠레로 쏠렸다. 칠레 북부 도시 코피아포의 산 호세 광산에 매몰된 33명의 광부들 때문이었다. 이날 광부들은 모두 살아 돌아왔다. 8월 5일 매몰돼 지하 700미터에 갇힌 지 69일 만이었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다며 전 세계가 이들의 생환을 축하했다. 에디손 페냐(34·이하 페냐)도 그렇게 살아온 광부 중 하나였다.
그로부터 1년. 페냐는 지금 재활 시설에서 약물·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칠레 영자신문 <산티아고타임즈>는 11일(현지 시각) 1년간 페냐에게 일어난 일을 현지 잡지 <사바도>를 인용해 보도했다.
구출된 후 페냐는 유명세를 탔다. 다른 광부들도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았지만 페냐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더 눈에 띄었다. 페냐는 2010뉴욕마라톤에 참가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데이비드 레터맨이 진행하는 미국 CBS 방송의 유명한 심야 토크쇼인 <레이트 쇼(Late Show)>에도 출연했다. <레이트 쇼>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인 '서스피셔스 마인드(Suspicious Minds)'를 몇 소절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페냐의 생활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다. 그렇지만 페냐의 내면은 나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매몰 사고 후유증과 유명세로 인한 부담감 등이 겹친 결과였다. 결국 페냐는 술과 약물에 빠져들었다.
"난 인터뷰 전후에 마음을 가라앉히려 (술을) 마셨다. (……) 현실을 숨기고 광대 노릇을 했지만 내면은 끔찍한 상태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사바도>와 인터뷰하기 전인 8월에 페냐는 <로이터통신> 취재진에게도 "난 지금 중태다, 내게 뭘 기대하는 건가?"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사고 후유증과 유명세로 인한 부담감... 평온함 되찾지 못하는 광부들
페냐는 8월 30일 재활 시설에 들어갔다. 페냐는 그곳에서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것부터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까지 모두 접어야 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후 페냐는 재활 시설에서 기복이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정상 궤도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페냐는 앞으로 음악 활동에 집중하고, 돈이 필요하면 광산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페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그렇지만 다시 몸과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광부들 중 곤경에 처한 것은 페냐만이 아니다. 많은 광부들이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불면증, 약물 남용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처지라고 호소하고 있다. 칠레 언론 <엘 메르쿠리오>는 생환한 광부 33명 중 4명만이 다시 광부로 일하고 있으며, 15명은 무직이라고 8월에 보도했다. 살아 돌아온 후 다시 광산에서 일하려 했지만 사고 후유증 때문에 제대로 일할 수 없어 그만둔 사례도 있다.
광부 33명 중 31명은 7월에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가 광산 안전 문제를 제대로 감독·규제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으니 배상하라는 소송이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광부들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유명세를 즐기고 돈을 쫓더니 이젠 소송까지 내느냐'고 보는 이들이 칠레 사회 일각에 있기 때문이다. 광부들은 할리우드에 영화 판권을 팔긴 했지만 아직 돈을 받지 못했고 고정수입이 없는 이가 많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냉랭한 시선은 여전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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