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실 창 넘어로 보이는 은행나무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조금씩 변해가던 어느 날 예쁘장한 여고생 한 명이 치과를 찾아왔습니다. 치과에 대한 공포가 남들 보다 더 심했는지 저에게는 가볍게 목례만 했고, 아픈 증상에 대해서는 함께 온 아버지가 전부 설명해주더군요.
과보호로 자란 아가씨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곧이어 청각장애가 심해서 말하지도 듣지도 못한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픈 치아를 이리저리 살피고 방사선 촬영을 해보니 해당 치아가 많이 썩어서 신경치료를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진료 자체는 매일같이 하는 치료라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청각 장애가 있는 환자는 처음 진료를 하는 것이라 난감했습니다.
치과 진료는 진료 도중에 환자의 눈이 닫히기 때문에 듣거나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환자라면 의사가 환자에게 지시를 하기도, 환자가 의사에게 아픔을 호소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신경치료는 치과 치료 중에서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치료하는 도중에 순간적인 아픔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와 의사의 소통이 아주 중요한 술식입니다.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몸이 불편한 환자가 종합병원까지 찾아가 진료받는 것은 너무 힘들 거라는 생각에 제가 진료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먼저 환자를 원장실로 모시고 와서 컴퓨터 모니터에 문자를 이용해서 현재 환자의 상태와 앞으로 받을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고 환자와 저만의 몇가지 약속을 정했습니다. 진료 도중에 환자의 턱을 가볍게 한 번 만지면 입을 벌리고 두 번 만지면 입을 다물고 쉬기로 하고, 혹시 아프거나 불편한 점이 있을 때는 왼손을 들면 진료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 이런 방식의 수신호를 하는 것은 사실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무척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환자는 그 예쁜 두 눈에 웃음을 띄고는 흔쾌히 동의를 해줬습니다.
그렇게 원장실에서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눈 다음의 진료는 참 순조로웠습니다. 환자에게 "아, 하세요. 입을 다무세요"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손으로 지시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이 되었고 환자 역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잘 따라줬습니다.
소리로 의사 표현을 하기 힘든 환자라는 생각에 환자의 안색을 더 유심히 살피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른 환자에게는 느끼지 못했던 환자의 심리 상태나 기분을 더 잘 잡아내는 스스로에게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날의 진료가 끝나고 나면 원장실에서 둘만의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3회에 걸친 신경치료와 2회의 보철치료를 모두 마친 환자는 꾸벅하고 소리 없는 인사를 마치고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한번 밝게 웃고는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의사 소통의 수단이 맞지 않아 대화 방식의 어려움을 걱정했지만, 어쩌면 제 의사 생활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장 심도 있는 소통을 나눈 환자는 바로 오늘 진료를 마친 청각 장애를 가진 여고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간의 소통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나 그 수단이 아닌 소통을 하려는 당사자간의 노력과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함을 배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과보호로 자란 아가씨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곧이어 청각장애가 심해서 말하지도 듣지도 못한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픈 치아를 이리저리 살피고 방사선 촬영을 해보니 해당 치아가 많이 썩어서 신경치료를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진료 자체는 매일같이 하는 치료라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청각 장애가 있는 환자는 처음 진료를 하는 것이라 난감했습니다.
치과 진료는 진료 도중에 환자의 눈이 닫히기 때문에 듣거나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환자라면 의사가 환자에게 지시를 하기도, 환자가 의사에게 아픔을 호소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신경치료는 치과 치료 중에서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치료하는 도중에 순간적인 아픔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와 의사의 소통이 아주 중요한 술식입니다.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몸이 불편한 환자가 종합병원까지 찾아가 진료받는 것은 너무 힘들 거라는 생각에 제가 진료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먼저 환자를 원장실로 모시고 와서 컴퓨터 모니터에 문자를 이용해서 현재 환자의 상태와 앞으로 받을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고 환자와 저만의 몇가지 약속을 정했습니다. 진료 도중에 환자의 턱을 가볍게 한 번 만지면 입을 벌리고 두 번 만지면 입을 다물고 쉬기로 하고, 혹시 아프거나 불편한 점이 있을 때는 왼손을 들면 진료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 이런 방식의 수신호를 하는 것은 사실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무척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환자는 그 예쁜 두 눈에 웃음을 띄고는 흔쾌히 동의를 해줬습니다.
그렇게 원장실에서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눈 다음의 진료는 참 순조로웠습니다. 환자에게 "아, 하세요. 입을 다무세요"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손으로 지시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이 되었고 환자 역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잘 따라줬습니다.
소리로 의사 표현을 하기 힘든 환자라는 생각에 환자의 안색을 더 유심히 살피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른 환자에게는 느끼지 못했던 환자의 심리 상태나 기분을 더 잘 잡아내는 스스로에게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날의 진료가 끝나고 나면 원장실에서 둘만의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3회에 걸친 신경치료와 2회의 보철치료를 모두 마친 환자는 꾸벅하고 소리 없는 인사를 마치고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한번 밝게 웃고는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의사 소통의 수단이 맞지 않아 대화 방식의 어려움을 걱정했지만, 어쩌면 제 의사 생활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장 심도 있는 소통을 나눈 환자는 바로 오늘 진료를 마친 청각 장애를 가진 여고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간의 소통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나 그 수단이 아닌 소통을 하려는 당사자간의 노력과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함을 배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는 자유칼럼그룹 중복게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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