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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근이 먹었다던 수구레국밥, 어떤 맛일까

[포토] 사람냄새 나는 창녕재래시장 풍경

등록|2011.10.14 20:20 수정|2011.10.14 20:20
창녕읍에 사는 후배와 점심약속을 했다. 오늘(13일)은 창녕장날이 서는 날이라 약속장소를 일부러 창녕시장 수구레국밥집으로 정했다. 수구레국밥집은 끝자리 3과 8로만 끝나는 창녕장날에만 영업을 하기 때문에 오늘 아니면 수구레국밥을 먹을 수 없다. '1박2일'의 이수근씨가 그 집에서 국밥을 먹은 후 손님들이 많아졌다는 소문도 들은 터라 확인도 할 겸 약속장소를 그렇게 정한 것이다.


수구레국밥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손님들1박2일 방영후 창녕 수구레국밥집이 난리다. 국밥을 먹기 위해 100여 명이 길게 줄을 선다. 장날에 수구레국밥 한번 먹을려면 30분에서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어쨌거나 수구레국밥집, 한마디로 대박났다. ⓒ 조우성

창녕 수구레국밥집 풍경창녕시장통의 수구레국밥집 모습은 어떻게 보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북적거리는 재래시장에서, 얼큰하고 매콤한 시골의 장터국밥집에서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린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느낀다.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잃어 버린 사람냄새를 맡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애써 찾아간다. ⓒ 조우성



창녕시장에 도착하니 농번기인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활기가 넘쳤다. 길고 좁은 폭의 시장통 길을 경쾌한 스텝으로 이러 저리 잘도 헤집고 수구레 국밥집에 도착한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외국은 잘 모름), 이런 시골에서는 더 더욱 보기 힘든 진기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수구레국밥집 앞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기차처럼 길게 줄을 서 있고, 시장상인들은 제 살림은 아니하고 주변에 모여서 이런 모습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는 독특한 시추에이션.
국밥집 옆에서 찹쌀도너츠 장사하는 이주용(45)씨는 "깜짝 놀랐어요, 한국사람이 이렇게 줄 잘 서는 것 처음 봤어요,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이런 모습 처음이에요. 자동으로 줄서기문화가 생겼어요"라며 "창녕시장에는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즐거워했다. 

후배와 국밥 먹으러 왔는데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으니 조금 난감한 상황이다. 국밥을 먹고 나오는 사람에게 다가가 "얼마나 기다려야 먹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30분 이상 기다렸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옆에 서 있던 후배가 "형님, 안되겠네요. 다른 곳에 갑시다"라고 마음 흔드는 소리를 한다. 결국 국밥먹기를 다음으로 미루고 작전상 후퇴를 감행했다.


찹쌀도너츠 가게주인 이주영씨찹쌀도너츠는 현장에서 반죽해서 만들기 때문에 손님들 손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어떤 손님은 1시간 30분을 기다려서 맛을 보기도 했다. 창녕재래시장에서 수구레국밥과 힘 겨룰 수 있는 강력한 다크호스다. ⓒ 조우성


 

부산에서 창녕재래시장을 찾은 구병곤씨1박2일 방송에서 창녕재래시장이 나온 것을 본 후 수구레국밥을 맛보기 위해 부산에서 일부러 창녕까지 달려 왔다. 담백하고 쫀득한 수구레국밥을 먹은 후 옆집의 찹쌀도너츠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는 1시간 30분을 기다린 끝에 도너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인내심 대단한 사나이다. ⓒ 조우성



후배와 밥을 먹은 후 시장통으로 돌아와 보니 여전히 긴 줄서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20m 약간 위쪽에도 5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뭔가 하고 가보니 거기도 수구레국밥을 팔고 있었다. 한쪽 모퉁이 테이블에 앉아서 국밥에 소주 한잔 걸치고 계신 6명의 아줌마팀이 보였다. 국밥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그 중에 김옥수 여사(55)가 "소구레는 씹는 맛이 있고 구수해서 시골맛이 나요. 소주하고 먹으니, 속이 얼큰~하니 날아갈 것 같아요. 끝내줘요"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순간, 점잖은 여사님들이 친구의 대답이 재밌고 웃기는지 손바닥을 마주치며 깔깔거리고 웃는다.

'옛날시장국밥집'을 운영하는 주인은 유순진(62) 아주머니. 2년 전부터 장날에만 포장을 치고 수구레국밥을 팔고 있는데, 사실은 10년 전부터 창녕시장에서 옥천식당을 운영했다고 한다. 장날에는 손님이 많아 며느리 김성자씨가 일손을 거들고 있다. 평소는 국밥에 들어가는 '수구레'가 10관 정도 쓰였는데, 창녕 수구레국밥이 '1박2일'에서 방송을 탄 뒤로는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20관 정도가 국밥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마디로 매상 급증, 살판 났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데, 국밥집 옆(좌측) 찹쌀도너츠 가게에 젊은 남녀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1박2일' 방송을 보고 부산에서 일부러 수구레국밥 먹기 위해 창녕시장을 찾은 구병곤(32)씨. 국밥은 먹었단다. 국밥 맛? "기름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국물이 느끼하지 않고 담백했고, 쫀득쫀득 씹히는 맛"이 있어 좋았단다. 목적을 성취했는데 여기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찹쌀도너츠 사기 위해 1시간 30분을 기다리고 있단다. 뭣이라고, 찹쌀도너츠 먹기 위해 90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것은 뭔 시추에이션!

노상댁이 할머니 도라지 사다뻥튀기가게 맞은편에서 30년 넘게 수수와 콩 등 잡곡물을 파시는 노상댁이(76) 할머니가 도라지 담은 수레를 끌고가던 할머니를 불러 세워 흥정을 한다. 1다발에 만원짜리를 6천원에 구입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제사에 쓰기 위해 삶아서 냉장고에 넣어 보관한단다.. ⓒ 조우성

유순진 아주머니 수구레국밥집창녕시장에는 야외에서 국밥집을 하는 집이 두 군데다. 1박2일에 나온 국밥집은 아래에 있고 위쪽 20미터 지점에 유순진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또 다른 국밥집이 있다. 2년 전부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도 며느리가 장날에 일손을 거들고 있다. ⓒ 조우성





대구시 화원에 살면서 3년 전부터 창녕시장에서 찹쌀도너츠를 팔고 있는 이주용(45)씨는 부인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1.6일에는 화원장날, 2.7일에는 성주장날, 3.8일에는 창녕장날, 5.10일에는 현풍장날을 돌며 장사를 하고 있다. 10월 2일 '1박2일' 방송 나간 뒤 오늘이 3번째 맞는 창녕장날인데, 다른 시장의 손님들 반응도 이전보다 "조금 업" 됐지만 창녕시장을 찾는 손님들 반응은 "완전 관광코스" 수준이란다. 오늘은 평일이고 또 농번기라 이전같으면 시장이 한가한 편인데, 생각지도 않게 손님들이 너무 많아 찾아와 기분 최고란다. 덕분에 매상도 수직상승 중.

손님들에게 1시간 정도나 기다려서 찹쌀도너츠를 사가게 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반죽하고 완제품 내놓는데 대략 20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그가 한마디 덧붙이는 말, "그렇다고 엉성하게 만들 수 없잖아요. 차라리 기다리다 가는 게 낫지".  이수근씨 직접 만나 보니 "유들유들하니 동네 동생"같았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카메라 들이 대니 "긴장했죠. 생전 그런 거 해봤나요"라고 웃음 짓는다.

국밥집 옆(우측)은 뻥튀기 가게다. 기계에서 김이 모락 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소리가 '뻥'하고 터질 것 같아 심장 놀라지 않게 조심 조심 가게앞으로 다가갔는데, 김만 피시식~ 하고 빠질 뿐 사람 놀래키는 '뻥' 소리는 거의 나지 않는다. '에이, 괜히 겁먹었네.'

뻥튀기 가게의 윤정환씨45년 전통의 가게다. 20년 전부터 연로하신 부모님을 위해 장날에만 가게일을 돕고 있다. 그를 만만히 보면 안된다. 대구에서 영상물제작회사의 카메라감독을 맡고 있는 재원이다. 그는 부모님께서 평생을 바쳐 지켜 온 이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대를 이어 계속 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조우성




윤정환(45)씨는 군대 제대 후 지금까지 20여 년간 부모님 일을 돕고 있는데, 아는 할머니라도 지나가면 말벗이 되어주다 뻥튀기 재료 태워먹기도 하는 인간적인 사나이다. 그는 영상제작회사의 카메라 감독일을 하고 있으면서 장날에만 연로하신 부모님 일을 돕고 있는데, "부모님이 45년간 이 일을 했는데, 대를 이어서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어릴 적에는 시장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지금은 찾는 사람들도 적고 5일장다운 볼거리도 없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옛날의 전통스러운 것도 이어가면서 새로운 시장모습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피력했다.

고개를 돌려 수구레국밥집을 쳐다보니 이전보다 조금 줄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가게가 워낙 바빠 주인과 대화할 짬 만들기가 어렵다. 틈을 노리다 드디어 찬스를 포착했다. 그릇을 씻고 헹구는 가게주인 이상선(67) 아주머니(60대는 아직 청춘이라 아주머니로 호칭함)와 포장을 사이에 둔 채 '설거지 토크'를 성사시켰다.

이씨는 대구 출신으로 현재 경북 현풍에서 현대식당 운영중. 창녕시장에서는 3.8일  장날에만 16년째 영업중. 바쁘지만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며느리 지인 1명이 가게일을 거들고 있다고. 며느리는 경상도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베트남출신의 호앙티앙씨. 아주머니는 이수근씨 촬영 왔을 때도 바빠서 이야기, 악수도 못했다고 한다. 매상? 수직날개 중, 근데 아주머니 왈 "손님이 많아 좋기는 좋은데 사람이 골병들어 죽겠다"고 한다.   

창녕시장에서 국밥집 시작 한 후 5~6년 지나서 완전 자리 잡았다고. 손님 중 꼴보기 싫은 사람(넘)은 "술 먹고 주정(꼬장)부리는 인간"이라는데, 최근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서 오랫동안 기다리는 모습에 대해서는 "이전에는 이런 모습 없었다. 고맙고 좋지만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께 미안한 마음이다. 국밥도 자리에 내가 갖다 줘야 하는데 손님들이 직접 갖다 먹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창녕 수구레국밥집 주인 이상선 아주머니창녕재래시장에서 16년 동안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밀려드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워낙 바빠서, 설겆이 하는 시간에 장막을 사이에 두고 아주머니와 치열한 토크를 펼쳤다. 멀리서 찾아 온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에 "고맙고 좋지만 미안한 마음"이라고. ⓒ 조우성

수구레국밥집 며느리 오앙티앙씨경상도 사투리도 아주 유창하게 구사하는 오앙티앙씨는 베트남출신이다. 시어머니 이상선씨와 너무 다정해 며느리면서도 친구처럼 지낼 정도로 화목한 가정이다.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 국밥집을 거들고 있다. ⓒ 조우성



수구레국밥 맛에 대해서는 "양념을 맛있게 한다. 야채, 마늘 같은 재료를 다른 곳보다 많이 넣는다. 맵고 짜고, 얼큰하게 만든다. 너무 싱거워도 맛이 없다"고 비결 한마디 전수했다. 마지막으로 아주머니에게 멋진 손님이란? "뒷 손님을 위해 빨리 먹고 일어서주는 손님이 고맙고 좋제." 아따, 그렇구만!
평일에, 농번기인데도 창녕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름다운 화왕산 정상의 억새밭을 구경 온 산행인들을 포함해 절반정도가 외지인들로 추정되는데, 어쨌건 상인들 말대로 '1박2일' 방송 나간 후 시장 분위기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언제까지 많은 외지인들이 창녕시장을 찾을지는 알 수 없지만 뻥튀기 가게의 윤정환씨 말대로 볼거리가 있고, 향수를 자극하는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창녕시장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취재를 마치고 창녕시장을 떠난다. 사람냄새 나는 시장거리를 천천히 밟으면서 찹쌀도너츠 가게의 이주용씨가 한 말을 떠올려 본다.

"화왕산 불 나고 창녕시장이 시들시들 했는데 1박2일 재래시장 방송 나간 뒤 평일인데도 사람들 많이 찾아오고, 시장 분위기 많이 좋아졌어요. 방송이 이런 거 많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재래시장이 살지요. 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국밥만 먹을 게 아니라 시장도 둘러보고 물건도 좀 사주면 좋지요.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재래시장도 차츰 없어지게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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