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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허벅지를 노리는 그 놈보다 더 나쁜 놈

[필리핀에서 현지인처럼 살기⑩] '벌레천국'에서 벌인 개미 퇴치 대작전, 그 결과는...

등록|2011.10.20 15:51 수정|2011.10.20 15:51
지렁이, 바퀴벌레, 모기, 도마뱀... 필리핀은 벌레천국

따뜻하고 비가 자주 오는 필리핀의 기후 조건은 벌레가 서식하기 참 좋은 환경입니다. 필리핀에서 살면서 잠이 덜 깬 채 화장실에 갔다가 지렁이를 밟기도 했고, 한국보다 두세 배는 큰 바퀴벌레가 푸더덕 날아와 허벅지에 붙어 기절할 뻔도 하고, 부채바람에도 날아가지 않는 파리떼 때문에 입맛을 잃을 때도 있었습니다. 천장과 벽에 붙어 있는 도마뱀들은 이젠 벽지의 무늬쯤으로 느껴집니다.

▲ 화장실을 갈 땐 변기의 도마뱀을 조심하세요. ⓒ 조수영


하지만 아직까지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있으니 바로 모기입니다. 필리핀 모기, 우리나라 모기와 많이 다릅니다. 일단 귀에서 앵앵거리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기가 옆에 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 귓가를 맴도는 모깃소리에 잠을 설칠 때는 '이놈의 무면허 헌혈족, 제발 조용히 마셔라. 잠만 깨우지 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필리핀 모기는 앵앵거리지 않으니 자다가 일어나서 모기를 잡는 복수극을 벌일 일은 없지만 뒤척임이 없으니 모기들이 맘껏 물어서 다음 날 아침이면 온몸이 분홍색 점들로 덮여 있습니다. 한국 모기는 적어도 긴 팔을 입어서 공격을 피할 수 있지만, 이곳의 모기는 옷도 뚫는 강력한 침을 가졌는지 팔, 다리, 어깨, 등까지 온몸이 그냥 마구마구 뜯겨 있습니다.

그리고 엄청 간지럽습니다. 그나마 긁을 수 있는 부분을 물리면 다행인데 등이나 허벅지 안쪽처럼 긁기 힘든 부위를 물리면 온종일 허우적대며 긁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모기에게 물린 부분이 검게 변해서 마치 주삿바늘로 마약을 맞은 사람으로 오해받기 딱 좋습니다.

▲ 한 엄마가 아이가 잠든 사이 머리의 이를 잡아주고 있습니다. ⓒ 조수영


필리핀 생활의 적, 개미

모기보다 더욱더 적응이 안 되는 것이 개미입니다. 사실 개미 한두 마리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여러 마리가 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단체로 우글거리는 개미를 보면 바퀴벌레, 도마뱀은 완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징그럽고 끔찍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운동장이나 화단에서나 개미를 볼 수 있지만 필리핀 개미는 집안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주방에 음식물을 놔두면 흰 쌀밥은 어느새 까맣게 덮이고, 마시다 남은 커피에는 어느새 개미 십여 마리가 익사체로 둥둥 떠 있어서 어두운 곳에서 무심코 음료수를 마시다간 톡톡 터지는 개미 맛을 경험하게 됩니다.

게다가 얼마나 날쌔고 부지런한지 밤낮으로 먹을 것을 찾아다닙니다. 그 많은 개미가 그 많은 먹이를 가져다 어디에 쌓아 놓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쉬는 날도 없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는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서 먹이를 부지런히 쌓아놓는다지만 겨울도 없이 일 년 내내 따뜻한 필리핀에서 뭐가 아쉬워서 밤낮으로 저리 열심히 식량을 모으는지 모르겠습니다.

음식물에 붙어 있는 개미를 쫓아내다 보면 어느새 손등을 타고 올라오고 온몸에 막 기어 다닙니다. 정말 화가 나는 건 이놈의 개미가 사람을 마구 문다는 겁니다. 개미한테 한번 뜯겨 본적이 있는지? 정말 따갑고 아프고, 엄청 부어오릅니다. 특히 빨간 개미는 어찌나 힘이 센지 살점을 뜯어내는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 다니니 건물도 파괴될 뿐 아니라 여기저기 다니며 병원균을 달고 다니기 때문에 사람에게 병원균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도저히 한 집에 살 수가 없습니다. 렌트비도 안내면서 고마움도 모르고 주인을 물어대는 개미들을 쫓아내기로 했습니다.

필리핀 개미, 다 없애 버릴 테다!... 1차 전쟁 : 살충제편

▲ 개미집에 살충제를 뿌리고 있습니다. ⓒ 조수영


모기는 물론 스파이더맨도 죽인다는 살충제, 바이곤을 뿌립니다. 한방에 전멸…. 내친김에 개미집으로 보이는 구멍마다 바이곤을 듬뿍 뿌렸습니다. 냄새도 독하고 눈도 따갑지만 개미 박멸을 위해 참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개미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개미 소탕은커녕 약 냄새 때문에 머리에 편두통만 남았습니다.

2차 전쟁 : 분필로 퇴치하기

▲ 바퀴벌레와 개미에 특효라는 필리핀 분필입니다. ⓒ 조수영


필리핀 개미는 필리핀 약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약국으로 갔습니다. 뿌리는 약, 붙이는 약… 그런 약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분필처럼 생긴 것을 주더니 개미가 지나가는 길목에 그어주라고 합니다. 아쉬운 대로 하나 사왔는데 이딴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어 시큰둥합니다.

▲ 개미 주위에 분필로 원을 그리면 개미가 나오지 못합니다. ⓒ 조수영


"이야~"

개미가 다니는 길목에 그으면 개미가 지나가지 못 합니다. 개미를 발견하고 분필로 동그랗게 테두리를 돌렸더니 개미가 못나옵니다. 그동안의 복수를 제대로 해준 것 같아 통쾌합니다. 개미가 엄청 싫어하는 성분이 있나 봅니다. 하지만 분필을 긋는 표면이 매끈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유유히 집으로 돌아가는 개미들. 자세히 보니 분필가루를 밟고 지나가는 독한 놈도 있습니다.

실패! 우리 집엔 유치원생이 낙서한 것처럼 보이는 허연 분필 자국만 남았습니다.

3차 전쟁 : 불로 퇴치하기

개미는 뜨거운 것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개미가 모여든 그릇을 불 옆에 가져가면 개미들이 순식간에 달아납니다. 여왕개미와 그녀의 집까지 완벽하게 불살라버리기 위해 개미집 입구에 알코올을 붓고 점화!

▲ 개미집에 알코올을 붓고 점화! 하지만 오히려 개미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 조수영


그러나 오히려 3차에 걸친 개미 전쟁의 후유증은 엄청났습니다. 며칠 후 오히려 개미 숫자가 더 늘어났고, 개미집 구멍도 더 많아졌습니다. 일개미를 잘못 잡으면 여왕개미가 본능적으로 숫자가 준 것을 알고 알을 더 많이 낳는다고 하던데 그런가 봅니다. 완전 참패!

4차 전쟁 : 붕산으로 퇴치하기

이번엔 인터넷의 똑똑한 '지식인'들에게 내공까지 걸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결과 개미들은 혼자서 음식을 먹지 않고 반드시 집으로 가져가서 함께 먹기 때문에 붕산과 같은 독극물이 든 음식을 집으로 가져가면 모든 개미들이 먹게 되고 여왕개미까지 제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필리핀에서 붕산을 어떻게 구하느냐는 겁니다. 철물점, 약국, 쇼핑몰에 가서 붕산(Boric Acid)을 찾았지만 그런 거 없답니다(마트에선 염산도 파는 필리핀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서 오면서 붕산 한 통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항 출국 검색대에서 딱 걸렸습니다.

"위험한 거 아니에요. 필리핀 집에 개미가 많아서… 붕산과 설탕을 섞어서… 이 방법이 제일 용하다고 해서…."

주절주절 설명하며 애절하게 부탁해보지만, 결국 반출 금지. 격렬한 거부로 테러리스트로 오해받을 뻔했습니다.

▲ 필리핀 철물점에 가서 '용접할 때 쓰는 것'이라고 하면 붕사를 구할 수 있습니다. ⓒ 조수영


용하다는 붕산을 구하지 못하고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붕사대신 붕사(Borax)를 쓰면 된다는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붕사는 철물점에 가서 용접할 때 쓰는 것이라고 하면 됩니다. 붕사와 설탕을 같은 비율로 물에 녹여 개미가 다니는 길목에 놓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한 마리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맛이 없나 봅니다. 또 실패!

5차 전쟁 : 이젠 마지막이다!

이젠 우리 집 개미들, 아니 렌트비도 안내고 빌붙어 사는 무단 침입자들도 '본능적'으로 내가 그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 같습니다. 식구 중에 나만 뭅니다. 발가락과 손등은 온통 개미 자국입니다. 무는 개미는 병원균을 옮기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전신반응이 올 수도 있습니다. 식구들도 그만 휴전을 권합니다.

이번에는 개미가 빵이나 밥 같은 탄수화물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반영, 밥과 붕사를 섞고 4차전에서보다 설탕의 비율을 높여 맛있는(?) 미끼를 만듭니다. 개미가 다니는 길목에 두었더니 1분도 되지 않아 개미떼가 몰려듭니다.

▲ 개미가 탄수화물을 좋아하는 점을 감안하여 밥+설탕+붕산의 미끼를 놓았더니 개미들이 몰려듭니다. ⓒ 조수영


붉은 개미떼가 미끼를 빼곡하게 둘러싸고 제 집으로 나르는데, 정말 우리 집에 이렇게 많은 개미가 있었나 하는 놀라움에 약을 뿌려 한방에 보내고 싶은 욕망이 치솟지만 참아야 합니다. 일개미들이 바친 미끼를 먹은 여왕개미의 온몸에 붕사가 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몇 번 다른 곳에서 생겨나는 개미를 찾아 미끼를 놓은 결과 점점 개미의 행렬이 사라지더니 며칠 후 개미가 싹 사라졌습니다. 개미가 사라진 개미집들을 보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완벽 퇴치...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일주일 후 출몰 지역의 정 반대편에서 새로운 개미소굴이 나타났고 어느새 또다시 주방으로 이어지는 개미행렬이 생겨났습니다. 그때서야 개미굴을 파대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집 도우미 아이가 위로랍시고 하는 말,

"개미의 굴속에서는 작은 사람이 살고 있어서, 개미를 다치게 하면 개미굴에 사는 작은 사람의 복수를 받는데요. 더구나 검정 개미는 돈을 벌게 해주는 걸요."

오늘 또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필리핀에 오면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며 살듯, 오랜 시간 이곳 환경의 일부가 된 필리핀 벌레들의 생존방식도 이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도꼬야~ 오늘 밤도 울어줘~

▲ 깐틴(구멍가게) 아주머니가 도꼬라고 해서 찍었는데 이구아나 였습니다. 이구아나는 동네 아이들의 좋은 장난감입니다. ⓒ 조수영


보통 집안 천장이나 벽을 타며 잽싸게 돌아다니는 도마뱀. 가정집에 출몰하는, 아니 함께 살고 있는 이 녀석들이 모기랑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하니 고맙습니다. 불빛을 보고 몰려들기 때문에 밤에는 시도 때도 방에 출몰해서 놀라게 합니다. 문을 잘 닫아야 합니다. 이 녀석들 머리만 숨으면 다 숨는 줄 아는 귀여운 놈입니다.

도꼬, 필리핀에서 가장 큰 도마뱀 중에 하나입니다. 따갈로그어로 '띠끼'라고 부르는데 크기가 어린아이 팔뚝만하고 상어만큼 강한 이빨에 엄청 큰 눈알을 부라린다고 합니다. (전설적 명성만 들었지 한 번도 본적은 없습니다) 집 주의를 돌며 큰 소리로 "도꼬~ 도꼬~"라는 소리를 냅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집에서 도꼬가 울면 돈을 가져다 준다'고 믿습니다.

오늘 밤도 울어줘 도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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