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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평가서로 계속 골프장 추진하실 건가요?

[주장] 강릉시 구정리 어르신들이 노숙 농성을 시작한 이유

등록|2011.10.22 14:42 수정|2011.10.22 14:42

▲ 골프장 예정지 강릉 구정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지만. 나무나이를 조작하여 골프장 개발을 강행하였다. ⓒ 녹색연합


한해를 마무리 짓는 농사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야 할 농민들이 논밭이 아닌 강릉시청 앞에 모였다. 강릉시가 인허가 절차를 추진하고 있는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강릉CC 골프장 피해 주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70, 80 어르신들은 고삐 풀린 강원도 강릉시의 골프장 인허가 절차에 항의하기 위해, 노숙도 불사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차디찬 강릉시청 앞 대리석 바닥에서 지난 18일부터 노숙을 시작한 지도 벌써 3일째다.

산림청은 나무의 나이를 기준으로 10년마다 한번 씩 임상도를 만든다. 나무의 나이를 10년 기준으로 산정해 등급을 매기는데, 이때 나무의 나이가 41~ 50년생 이상, 5영급 이상이 될 경우 골프장과 같은 개발 행위는 불가능하다. 개발보다는 보존이 필요한 오래된 숲을 지키기 위한 과정인데, 골프장의 개발을 위한 인허가 과정 중 토지적성평가 과정에서 이를 검토하게 되어 있다.

토지적성평가 과정에서는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임상도를 사용한다. 임상도는 10년마다 작성되므로 임상도 작성 이후 반영되지 못한 현재까지의 나무 나이를 합산해 토지적성평가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강릉CC 사업자는 1997년에 작성된 산림청 4차 임상도를 두고, 1986년에 작성된 3차 임상도를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사업자는 1986년 이후 늘어난 소나무의 나이도 반영하지 않은 채 골프장 개발 대상지의 나무 나이를 산정해 강릉시에 제출했고, 강릉시는 이를 승인한 상태다.

강릉시가 내놓은 토지적성평가서, 이상하네

▲ 강릉시청 앞에서 최명희 시장과 면담을 하기 위해 노숙 3일째 하시는 할머니들.. ⓒ 녹색연합


1986년에 30년생 소나무였다면 25년이 지난 지금, 소나무는 50년생 이상 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토지적성평가 기준에 따라 50년생이 넘은 소나무로 가득 찬 구정리는 골프장 사업대상지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또 이를 검토하는 강릉시는 강릉CC의 토지적성평가서를 통과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더욱이 주민들은 강릉시가 1986년 작성된 토지적성평가의 임상도를 2010년 작성된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임상도 등 기초자료의 작성시기는 토지적성평가 결과에 큰영향을 미치는데, 강릉시는 토지적성평가의 기초자료 체크리스트에서 DB기준 시점을 2010년으로 일괄 정리하였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에 강릉시는 DB기준 시점이 임상도가 제작된 년도가 아니라, 사업자가 토지적성평가서를 제출한 시기라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장정 한 사람이 두 팔을 뻗어 안아도 한아름에 품지 못하는 소나무는 구정리뿐 아니라 강릉의 자랑인데, 골프장 사업자와 강릉시는 구정리의 금강소나무 나이를 속이고 있다.

지난 4년여간 주민들은 ▲골프장 사업자의 토지적성평가서 임상도 반영의 적정성 ▲강릉시의 서류 조작 의혹 등을 끊임없이 제기해왔지만, 최명희 강릉 시장을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9일 학수고대 했던 최명희 강릉시장과의 공개 면담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강릉시와 강릉CC 건설 중단을 위한 시민공대위(이하 '강릉CC 공대위')는 강릉CC의 토지적성평가서 임상도 반영 과정의 문제 등에 대해 국토해양부와 LH공사에 질의하기로 했다. 이후 그 결과를 토대로 양측이 함께 하는 실무회의에서 적정성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14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강릉시와 강릉CC 공대위의 실무회의를 진행한 결과, 강릉시는 LH 공사와 국토해양부에 대한 질의를 추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강릉시는 국토해양부의 질의 답변서라며, 강릉CC 사업자가 국토해양부에 질의한 결과를 주민들 앞에 내놓기도 했다.

이에 주민들이 항의하자 배석한 강릉시 공무원은 지역주민들에게 "토지적성평가의 임상도의 작성 기준 시점을 확인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며 억지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는 지난 2009년 국정감사 때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으로부터 관련 질의를 받은 뒤 보낸 회신에서 "강릉CC의 임상도 적용은 적법하지 않으며 그 책임은 강릉시장에게 있다"고 밝혔다.

주민과의 약속보다, 골프장이 더 중요한가

▲ 추운 밤에도 주민들은 강릉시장을 만나기 위해.. 고향을 지키기 위해 노숙을 하고 있다. ⓒ 녹색연합


▲ 낮에는 강릉시청 정문에서 협의사항을 위반한 강릉시장에게 항의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조승진 위원장 ⓒ 녹색연합


강릉시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 속에서 지난 18일 강릉시는 '강릉CC 골프장의 인허가 절차에는 문제가 없으므로 골프장을 추진하겠다'는 일방적 입장을 밝혔다. 이후 주민들은 행정의 공정성과 주민과의 약속마저 져버린 최명희 강릉시장을 찾아가 항의하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강릉시장은 인허가권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기만 하다 50여명 공무원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를 피했다.

규정위반과 공문서 조작, 이에 항의하는 지역주민과의 약속 일방적 파기, 거기에다 의혹투성이 불법 인허가 골프장 강행까지. 억울한 지역주민들은 강릉 시청 앞에서 노숙항의를 시작했다. 여전히 강릉시장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인허가 담당 공무원들은 지역주민들에게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공정성, 규정준수 따위는 막가파식 개발논리에 밀린 지 오래다. 주민과의 약속보다는 불·탈법 인허가를 추진한 골프장이 중요할 뿐이다. 지역주민의 억울함만 남고 생태계 훼손만을 불러오는 강릉CC, 이렇게 진행돼도 되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배보람 기자는 녹색연합 대화협력실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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