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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노숙'은 겨울도 견뎌... 다른 점령장소 물색중"

[월가를 점령한 사람들 ①] 최초 시위 기획단 제이슨 아마디 "이윤보다 사람"

등록|2011.10.22 22:10 수정|2011.10.22 22:10
'월스트리트 점령'(OccupyWallStreet) 시위가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1%'의 가진 자에 대한 '99%'의 반격이다. 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저항운동이다. '아랍의 봄'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전례 없는 '미국의 가을'을 만들더니, 다시 국경을 넘어 한 달 만에 전 세계 1500여 개 도시로 확산됐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고용축소, 해고, 실업, 양극화…, 대한민국은 지금 가진 자를 대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박빙의 싸움을 하고 있다. '1%대 99%'의 싸움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물론, '99%'이다. 그들을 만나봤다. <편집자말>

▲ 지난 17일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가 자유광장(주코티파크)에서 점거 한 달을 기념하는 이른바 '점령 케이크'(Occupy Cake) 주변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 OWS


지난 17일 밤 미국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인근의 한 공원에 큼지막한 케이크 위로 촛불이 켜졌다.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초고층 빌딩에서 새어나오는 어느 불빛보다도 선명했다. 케이크 위에는 'OccupyWallStreet 1Month Strong!'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고,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We Shall Not Be Moved.)"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한 달을 기념하는 이른바 '점령 케이크'(Occupy Cake)였다.

금융자본의 탐욕과 경제적 불평등에 저항하기 위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시작된 후 자유광장(주코티파크)은 나름의 질서와 일상, 오락거리가 있는 자유의 해방구로 변신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시위대에 약 43만 불(약 5억 원)어치의 현금과 식료품, 담요 등의 기부가 쏟아졌다. 기부품을 둘 곳이 모자라 미국 교원노조에서 마련한 인근 창고에 쌓아둘 정도다. 그만큼 시위대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호응도는 높은 편이다.

이틀 후인 19일 밤, 시위대가 머물고 있는 자유광장(주코티파크) 정보센터 앞에서 제이슨 아마디(26)를 만났다. 그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실행에 옮기기까지 실무를 준비했던 최초 활동가 중 한 명이다. 이 운동은 공식적인 리더나 조직이 없다. '리더 아닌 리더' 중 한 명인 셈이다. 그는 "(처음 시위를 준비했던) 저로서도 이렇게 급성장할지 기대하지 못했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체제가 창조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8월 초부터 점거 계획 모임 시작... 미국판 88만원 세대가 주류

▲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실행에 옮기기까지 실무를 준비했던 최초 활동가 중 한 명인 제이슨 아마디(26). 그는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원했다. ⓒ 최경준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애초 지난 7월 '문화 방해' 운동으로 알려진 온라인 잡지 <애드버스터>에 의해 제안됐다. 그 제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모임을 조직한 사람들은 '미국판 88만원 세대'였다.

"첫 준비 미팅은 8월 2일이었다. 점거 계획을 세우기 위한 컨센서스 미팅이었다. 50명 정도가 모였다. 그 후에는 매주 토요일 톰슨스퀘어파크에서 만났다. 나를 비롯해 여러 가지 운동에 개입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주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취업을 못한(Overeducated Underemployed) 젊은 20대가 주류였다. 그러나 실제 점거가 시작되고는 엄청나게 다양한 계층이 몰려들었다."

- 컨센서스 미팅이란?
"일종의 의사 결정 구조다. 보통 세 가지 형태의 결정 구조가 있는데, 독재는 혼자 결정, 투표민주주의는 다수 결정, 컨센서스 미팅에서는 모든 것이 논의되어서 결정되는 것이다. 예컨대 피자를 주문할 때, 독재는 자기가 좋아하는 피자 세 판을 시켜서 나눠 먹고, 투표민주주의는 어떤 피자를 먹을지 투표해서 결정한다. 그러나 컨센서스는 치즈피자도 시키고, 야채피자도 시키고, 감자튀김도 시킨다. 어떤 사람은 유제품에 거부반응이 있을 수 있으니까. 시간은 걸리지만, 모두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결정 방식은 실제 점거 시위를 시작한 후에도 하루에 2차례씩 열리는 공개총회에서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자유광장 운영 방안, 구조 변경, 기부금 사용처, 행진 경로 등 모든 사안을 결정하는 일종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다. 이들이 점거 시위를 벌이는 목적도 이 기구를 통해 표출된다.

"(처음 시위를 준비한) 사람들 모두 각자의 이유를 갖고 참여했다. 한 마디로, 위기감이 우리를 단결시킨 것이다. 극소수가 경제를 통제하고 정부와 모든 제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해결책이 있다고 나서지 않았다.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은 대화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곳이 바로 민주주의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공간인 셈이다.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고 싶다. 사람이 이윤보다 우선하는(people over profit) 사회를 원한다."

- 정치 세력화할 가능성은?
"이 운동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언제나 정치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정치운동이라면, 지금은 첫 걸음을 뗀 셈이다. 모든 사람들을 분노에 의한 연대로 끌어들이는 게 1단계였다면 2, 3단계는 단일한 해결책과 요구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이다."

▲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두 달 째로 접어든 가운데, 평소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맨해튼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앞은 바리케이드를 친 경찰의 삼엄한 경계로 관광객들의 접근이 어려워 훵하게 비어있다. ⓒ 최경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늘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다. 당초 시위 준비 측은 9월 17일 첫 시위에서 2만여 명의 사람들을 모아 월스트리트 일대를 미국판 '타흐리르 광장(이집트 민주화 시위 중심지)'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뉴욕증권거래소와 페더럴홀 인근 거리를 모두 봉쇄한 데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참가하면서 실패했다.

지난 1일 점거 시위를 뉴욕시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려다가 700명의 연행자만 남긴 채 빈손으로 돌아온 것도 뼈아픈 일이다. 지난 14일에는 시위대를 쫓아낼 기회를 엿보던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광장 청소를 하겠다고 나서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개되어 있고, 그 탓에 유연하다. 그 유연성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 '문제가 있어? 그럼, 해결하자'는 식이다. 장애물이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극복할 수 있다면, 장애물도 멋있고 중요할 수 있다. 극복하지 못하면 주저앉겠지만, 극복하면 강해지는 것이다."

- 곧 겨울이다. 이미 노숙하기에는 날씨가 춥다. 언제까지 이 운동이 지속될 수 있을까?
"오늘도 바람이 몹시 불고, 춥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적 노숙은 겨울도 견뎌냈다. 이곳 점거자들도 겨울을 이겨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끌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산적 해방(collective liberation)을 이뤄, 우리 정부와 세계 기구들이 더 이상 소수의 부자들과 기업들에게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끊임없는 전쟁과 착취의 악순환이 끊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수세대를 걸쳐 누적된 것이고, 해결책도 수세대를 거쳐야 할 것이다."

아마디의 말대로 시위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더 강해지고 확대됐다. 최초 수백 명에 불과하던 시위대는 경찰이 여성 시위대에게 페퍼스프레이를 뿌리는 영상이 퍼지면서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이어 수백 명의 연행자가 발생하자, 수만 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각종 노조와 시민단체가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섰고, 결국 20일 만에 최초 목표했던 2만여 명의 시위대가 월스트리트를 행진하게 됐다.

'1%'가 '99%'에게 제공해준 저항의 공간... 뉴욕에만 520개 

▲ 뉴욕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파크)에서 진행되고 있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참여한 어머니와 아기. ⓒ 최경준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시위의 첫 번째 요소인 노숙 장소를 제공한 것이 결과적으로 시위대가 비판하고 있는 '1%'라는 점이다. 2천여 제곱미터(약 6백여 평) 크기의 자유광장(주코티파크)은 지난 1960년대 초반 기업들의 개발 붐이 이루어질 때 만들어졌다. 당시 개발업자들은 관련법에 따라 개발허가를 얻는 대신 일정 정도의 공공부지를 내놓아야 했고, 시 당국은 이 공간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활용했다.

"이 장소가 흥미로운 것은 사적이자 공적인 공간이라는 점이다. 저 큰 건물에서 착취가 자행되지만, 동시에 저항의 공간을 만들어 준 셈이다. 사적·공적 공간이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는 공원과도 다르다. 전국, 전 세계에서 점거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유니크한 공간을 찾기를 권유한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지켜낼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러나 이미 자유광장은 수천 명의 시위대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일 만큼 포화상태다. 아마디는 "언론에 얘기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새로운 전략에 따라 새로운 점거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시에는 자유광장처럼 만들어진 공원이나 아케이드 등이 520개나 된다. 이들 공원 소유업체들은 최근 공원에서 침낭을 사용해 캠핑을 하거나 벤치에 눕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이용규정을 만들어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이 조항이 강제로 적용되지는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집트에서 산화하신 열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휴지 집는 꼬챙이로 타흐리르 광장을 방어하다 경찰에 살해된 사람들 말이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위해서는 그러한 용기, 자발성, 의지, 끈기, 지혜 등이 필요할 것 같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말한 대로, 어떤 곳의 불의는 모든 곳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이날 농성장에는 들고 있던 우산이 뒤집어질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아마디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비를 맞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아마디는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기자에게 대뜸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얘기를 꺼냈다.

"(제주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에 반대해 사람들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군수와 천주교 신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체포됐다고 하더라. 사실상 기지 건설이 중단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노숙농성을 하게 된 계기는 다르지만,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이익보다 앞선 인간', 그리고 '정치·경제적 정의'라는 점에서 같은 셈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 서로 무관치 않다.

▲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뉴욕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파크) 앞에서 공연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 시위대가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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