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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시효가 끝났다, 살인자는 어떻게 될까?

[서평] 히가시노 게이고 <새벽 거리에서>

등록|2011.10.26 10:39 수정|2011.10.26 11:27

<새벽 거리에서>겉표지 ⓒ 재인

우리나라에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25년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25년이 지나면, 진범이 밝혀지더라도 검찰에서 기소할 수가 없다.

누군가를 죽이고 25년 가까이 성공적인 도피생활을 한 살인자가 있고, 반대로 그 기간동안 열심히 살인자를 추적한 피해자의 가족이 있다. 공소시효 만료일이 가까워지면 이 두사람의 심정도 복잡해질 것이다.

살인자는 얼마 후면 자유의 몸이 될거라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낄 것이고, 반면에 피해자의 가족은 진범을 잡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안타까움과 원망의 감정을 갖게 된다.

살인자의 심정이 극적으로 바뀌어서 만료일을 며칠 앞두고 '죄값을 치르겠다'며 자수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가족은 공소시효가 지나더라도 살인자가 죄책감을 갖고 남은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법의 손길이 더 이상 미치지 못한다면, 살인자가 죄값을 치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자책하는 것밖에 없을 테니까.

15년 전에 살해된 한 젊은 여성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7년 작품 <새벽 거리에서>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그런 상황을 가리켜서 '마음에는 시효가 없다'라고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 일본의 살인사건 공소시효는 15년이다. 15년이 지나면 형법은 살인사건을 잊는다. 대신에 피해자의 가족은 그 사건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세월이 지나도 가족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고 이제는 그 살인자를 잡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될지 모른다. <새벽 거리에서>에서 그 사건은 15년 전 한적한 주택가에서 벌어졌다. 태양이 높이 솟은 한낮이었다.

고급주택의 거실에서 한 젊은 여성이 가슴을 칼에 찔린 채 숨져 있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 집의 장녀인 16세 소녀 나카니시 아키하. 숨진 여성은 아키하의 아버지인 나카니시 다쓰히코의 개인 비서였다. 거실의 한쪽 문이 열려있었고 숨진 여성은 가방을 도난당했다.

그러니 단순한 강도살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몇 가지 있다. 출동한 경찰은 탐문수사를 벌이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15년이 흘러온 것이다. 이제 공소시효 만료까지는 몇 개월 남기지 못한 상태다. 당시 16세였던 아키하는 성장해서 한 회사에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아직 미혼인 아키하는 그 회사에서 40세의 유부남인 와타나베를 만난다. 이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사적인 만남을 거듭하면서 아키하는 와타나베에게 묘한 이야기를 한다. 내년 3월 31일이 되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날은 바로 15년 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이다. 이 사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공소시효와 함께 잊혀지는 살인사건

'공소시효'가 소재의 한 축을 담당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약간 다른 방향에서 풀어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와타나베와 아키하가 벌이는 애정행각이다.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다른 직원의 눈을 피해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고 이메일을 통해서 약속을 정한다.

그 안에서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사건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와타나베는 고민한다. 만일 아키하가 살인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아키하의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을까.

공소시효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그 기간동안 가해자도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에 따라서 그 고통의 강도도 변할테고, 아무리 많은 마음고생을 하더라도 피해자 가족과 비교할 수는 없다. 공소시효 만료일은 가해자에게 반가운 날이겠지만, 피해자 가족에게는 또다른 고통이 시작되는 날이다.
덧붙이는 글 <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양억관 옮김. 재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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