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전주비빔밥에 뭔 짓을 한 거야?
[2011 지역투어-광주전라⑤] 비빔크레페·비빔밥롤...전주비빔밥의 진보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다섯 번째, 이번엔 광주·전남·전북입니다. [편집자말]
"전주에 왔으니까 비빔밥 먹어야죠."
▲ 전주비빔밥 ⓒ 전주비빔밥축제위원회
가끔 외지에서 온 친구나 손님과 식사를 할 때가 있는데 이들이 주문하는 음식은 한결같이 전주비빔밥이다. 약속이나 한듯이 똑같다. 그러나 전주시민들은 비빔밥을 잘 안 사 먹는다. 나부터 그렇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왠지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전주에는 전주비빔밥만큼이나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 그렇다면 전주비빔밥은 왜 유명한 걸까? 전주에 20년째 살고있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잘 모른다.
전주에 사는, '한 미식'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전주비빔밥이 무슨 맛이죠?"
그런데 고개를 저었다. 전주비빔밥이 무슨 맛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대답하지 못했다.
전주비빔밥이 유명한 이유는 이렇단다. 예로부터 전주는 농경문화의 중심지여서 쌀과 야채, 나물 등이 풍부했다. 또한 가까운 부안의 곰소젓갈,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의 고추장 덕분에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전주비빔밥의 특징을 들자면, 우선 사골 국물을 우려내 밥을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골국물의 고소하고 진한 맛이 쌀에 배어, 기름진 밥이 완성된다. 또한 전주비빔밥에만 들어가는 황포묵도 전주비빔밥만의 특징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전주비빔밥만의 비밀. 전주비빔밥은 원래 비벼져서 나온다. 전주비빔밥을 48년째 만들고 있는 비빔밥 장인의 말에 의하면 참기름에 고추장과 콩나물을 넣고 우선 볶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추장 양념장을 밥과 나물, 그 외에 고명을 넣은 뒤 함께 비벼서 손님 식탁에 내놓는다. 이렇게 미리 비벼놓아야 밥속에 양념맛이 배어들어가, 맵지도 않고 달큼한 전주비빔밥이 탄생하는 것이다.
놋그릇을 쓰는 것도 전주비빔밥의 특징인데, 돌솥은 밥의 수분을 빨리 빼앗아 가는 반면, 놋그릇은 수분을 유지해주고 온도를 유지해주기 때문에 식사 도중 내내, 촉촉하고 따뜻한 밥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명인의 숨결이 담긴 비빔밥,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고소한 풍미? 도대체 그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맛은 직접 봐야 맛이랬다. 정말 '이거다' 싶은 전주비빔밥의 매력이 뭘까. 머리로는 알겠는데 느낄 수가 없다. 전주에서 산 지 20년이 돼서야 전주비빔밥의 매력을 찾겠다는 것 자체가 생경했다.
하여, 사실 미식에 거의 문외한인 내가 전주비빔밥 원고를 쓴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만류했다. '막입'을 가진 네가 어떻게 맛집 기사를 쓰냐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찾고 싶은 전주비빔밥의 매력은 꼭 '미각'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서울에 가장 많다는 '전주식당'에서도 맛볼 수 있는 비빔밥을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먹을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비빔밥 롤 먹는 대만인, 다시마비빔밥 즐기는 일본인
마침 10월 네 번째 주에 전주에서 가장 큰 음식문화축제가 열렸다. 전주비빔밥축제와 국제발효식품엑스포, 한국관광음식축제가 동시에 열린 것이다.
어쩌면 전주비빔밥의 매력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 한 일본인 관광객을 만날 수 있었다. 치바에서 온 유키코(40)와 와카코(44)씨다. 서울에 놀러왔다가 전주비빔밥축제 소문을 듣고 일부러 내려왔다고 한다.
▲ 일본 치바현에서 온 유키코(40)씨와 와카꼬(44)씨는 전주비빔밥축제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유키코씨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에 관심이 많다. 탤런트 김선아와 윤시윤, 가수 소녀시대를 좋아한다. 와카꼬씨는 한국음식을 좋아한다. 찜닭, 순대,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유키코씨 주변의 또래 친구들도 한국문화에 관심이 높다. 말나온김에 K-POP 열풍의 이유를 물어보니 '일단 비쥬얼이 좋고 멋지기때문'이라고 두 사람은 대답했다. ⓒ 안소민
전주비빔밥을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내보인다. 평소 한국문화와 음식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서울에서 비빔밥을 먹어 본 적은 있지만, 전주에서 전주비빔밥은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전주비빔밥의 어떤 맛이 인상깊냐고 물었더니 유키코상은 자기가 먹었던 비빔밥 코너로 데려가서 그 재료를 보여줬다. 그것은 황포묵도 아니고, 육회도 아니고 바로 '다시마'를 이용한 비빔밥이었다. 마른 다시마를 잘게 잘라서 비빔밥 위에 고명으로 얹어놓은 비빔밥이었다. 전주비빔밥 위에 다시마가 들어 있었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 유키코씨와 와까코씨가 좋아하던 전주비빔밥 위에는 이 재료가 특별히 추가되었다. 알고보니 말린'다시마'였다. 전주비빔밥은 자신의 식성에 따라, 좋아하는 재료를 추가할수 있다는 점에서 개방적이고 포용력있는 음식이다. ⓒ 안소민
일본 관광객 유키코상은 그게 가장 맛있었단다. 살짝 충격이었다. 유키코상이 먹은 비빔밥은 전통 전주비빔밥이 아니다. 그러나 문득 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전주비빔밥에 일본관광객이 좋아하는 재료를 올린 것이다. 기본적인 나물과 양념 위에 시대와 장소에 맞게 적절한 요소를 새로 첨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주비빔밥의 매력이 아닐까.
전주비빔밥 옛맛이 아니라고?...옛맛이 뭔데!
대만에서 온 관광객 일행도 만났다. 친구 가족과 함께 왔다는 슈이(29)씨는 길거리에서 비빔밥 롤과 콜라를 먹고 있었다. 식빵에 비빔밥을 넣고 돌돌 만 비빔밥 롤이었다. 나 역시 처음 본 요리였다. 슈이씨는 맵긴 하지만 무척 맛있다고 했다. 그다음으로 먹은 음식은 삶은 양배추 안에 비빔밥을 넣고 돌돌 만 뒤, 부추잎으로 싸맨 양배추 롤 비빔밥. 비빔밥에 밀가루 반죽을 해서 부친 비빔밥전...축제에 오니 별의별 비빔밥이 다 있다.
▲ 2011 전주비빔밥축제에서 비빔밥롤 샌드위치, 양배추쌈 비빔밥, 비빔밥 크레페 등 다양한 음식이 선보였다 ⓒ 안소민
비빔밥이라면 밥상 앞에 앉아, 놋그릇에 담겨진 음식을 젓가락으로 싹싹 비벼가며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시대와 장소에 맞게, 먹는 사람의 취향과 식성에 맞게 무궁무진하게 바꿀 수 있는 게 전주비빔밥의 매력이었다. 물론 전통방식을 고수하면서 고집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지키되, 변화는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 그것이 전주비빔밥이 세계와 소통하는 비법 아닐까.
전주비빔밥은 '현재형'이다
모든 사람들이 전주비빔밥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관광객들이 올린 블로그를 보면 전주비빔밥 소문을 듣고 기대했다가 실망만 했다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뭐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내 주위에서도 그 옛날 전주비빔밥 맛을 내는 곳이 없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옛날 전주비빔밥 맛이 어떤 맛이었는지, 알 수 없으니 비교할 수도 없다.
▲ 꼭 밥상을 마주하고 놋그릇에 있는 비빔밥만이 제맛은 아니다. 전주 비빔밥축제에서 다양한 비빔밥을 먹는 관광객과 시민들. ⓒ 안소민
중요한 건 현재다. 비빔밥롤이 전통전주비빔밥보다 맛이 없다고 할 수는 있어도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을 전주비빔밥이랄 수 있을까? 전주비빔밥의 정체는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황포묵일까, 놋그릇일까, 사골국물로 지은 밥일까?
전부이기도 하고,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지금도 전주에는 그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훌륭한 음식집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 전주비빔밥은 또 하나의 '이복형제'를 허용해야 할 듯 싶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다시마 비빔밥, 대만의 가족관광객들이 좋아하는 비빔밥 롤과 콜라. 이처럼 재료를 더하기도 하고, 뺄 수도 있고, 모양을 달리할 수도 있는 것이 전주비빔밥의 매력 아닐까. 전주비빔밥은 과거에 있지 않고 현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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