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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도 없다니... '나꼼수' 김어준 '대박'

[서평]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재미와 콘텐츠 눈에 띄네

등록|2011.10.28 09:15 수정|2011.10.28 09:15
"정치를 이해하려면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과 그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섭해야 한다(<닥치고 정치>, 김어준)."

▲ 김어준의 책 <닥치고 정치> ⓒ 푸른숲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김어준 저, 푸른숲 펴냄, 이하 닥정)를 읽었다. 최근 많은 이들이 '나는 꼼수다'와 '닥정'으로 난리다. 두 개 모두 해당 분야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요즘, 그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도 슬슬 많아지는 추세. '닥정'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책이었으나 여러 가지 이야기 해봐야 다른 서평들과 중복될 것 같아 나는 두 가지만 언급하려고 한다.

'레이어(layer)'라는 개념이 있다. 건축이나 CAD 분야, 지도 등등 여러 분야에 쓰이는 이 개념은 간단하게는 하나의 대상이 여러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예를 들면 하나의 지도나 도면에는 건물을 표시한 레이어, 배선배관, 등고선, 도로 등 하나의 물리적 공간에 대한 특정한 정보를 각각의 레이어로 표시하고 그 레이어들을 중첩하여 보관하는 일이 많다.

정치적 사안에도 다양한 레이어가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이 이성적 논의가 됐든, 사건에 있어서의 팩트가 됐든, 이권 다툼이 됐든 간에 하나의 정치적 사안에는 다양한 측면의 레이어가 중첩되어 있으며 그 레이어들은 하나의 사안을 통찰할 수 있는 큰 그림을 제시하지만, 그 큰 그림을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쉽지 않고 설령 그 전체의 레이어를 봤다 하더라도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레이어 가운데에는 '노이즈'라고 할 만한 사이비 레이어가 섞여 있기도 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그 문제의 핵심 레이어를 찾기까지 대중이 이해해야 하는 선지식이 너무 방대하고 복잡하다는 점. 그 사안에 대한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레이어를 걷어 내고 핵심 레이어를 찾아서 이해하는 과정을, 진보진영은 대중의 기호에 맞게 성실하게 나서서 해결해주지 못했다. 기존의 정보 전달 프레임을 유지하되 더더욱 어려운 방식으로 정보의 해독을 대중에게 요구한 것이다.

하루에 책 읽는 시간 30분을 내기도 빠듯한 나 같은 직장인에게 이런 문제는 본질이 된다. 물론 정치 기사나 책 읽을 시간은 없어도 커피 마시며 수다도 떨고 지름신이 강림하면 인터넷에서 두 시간 동안 물건을 고를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독에 중독된 탓에 영화도 보고 미드도 보고 축구, 야구 경기에 몰두하고 애들과 놀이동산 갈 시간도 있지만 정치에, 그 개별 사안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 엄청난 기사 수집과 분석, 독서에 할애할 시간은 별로 없다. '그래, 나 그런 거에 몰두하기 피곤한 인생이고 정치에 무관심한 한심한 인생이다. 그냥 쉴 때는 좀 내버려 둬'하게 되는 것이다.

고고한 스타일 버린 '총수 김어준'... 재미와 콘텐츠 눈에 띄네

그런데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를 시도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닥정'이란 불순한 책을 출간했다. 이 새로운 플랫폼의 창시자 김어준은 정보 전달 측면에서 기존의 고고한 스타일을 버렸고 이를 통해 그 핵심 레이어의 진입 장벽을 허물었다.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던 정치 현안들, 그 부정부패의 내용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물론 '닥정'도 그렇고 '나꼼수'도 그렇고 모두 다 추정이다, 추정. 소설 같은 이야기다).

물리적으로 한 개인이 정치적 사안의 핵심 레이어를 찾아서 그것을 해독하는 데 투자해야 하는 시간은 건당 24시간 이상이리라는 게 내 판단이다. 미드 회당 1시간짜리를 24편을 보는 데 내가 투자해야 하는 시간은 족히 한 달이 걸린다. 그것도 미드가 매우 재밌어야 그렇게 시간을 내줄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직장인들이 정치 사안 하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한 달을 써야 한다면 누가 하겠나.

여기서 파생되는 유익이 바로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이 되겠다. 바로 '재미'다. 이 책의 부제는 '명랑 시민 정치 교본'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비장함을 갖는 대신 '가능한 변화들'을 실행하기 위해 재미있는 플랫폼을 선택했다. 그것도 가장 유행하는 팟캐스트를 이용하는 세련됨을 보이면서 말이다(정작 자신은 스마트폰도 안 하고 SNS도 귀찮아하면서. 실로 대단한 통찰이다).

나꼼수 최장 녹음 시간은 3시간이 넘는다. 그런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이 책도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막힘이 없고, 인터뷰 형식의 글임에도 내용이 충실하다. 재미있고 풍성한 콘텐츠. 그것으로 승부하겠다는 김어준의 전략이 먹힌 거다.

이 책은 그간 진보 진영의 그 누구도 제대로 못해 온, 재미있고 풍성한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이미 상당한 점수를 따고 있다. 또한 서평의 처음에서 인용하였듯 정치적 사안의 다층적인 구조(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과 그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를 통섭하려는 태도 또한 유의미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추가로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정치적인 견해에서 그의 입장과 다소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김어준 자신이 밝혔듯 본인이 '노빠'라는 점과 문재인을 대선 후보로 민다는 점, 한나라당과 여러 후보군에 대한 평가에 동의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비판을 그보다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는 한 대중들이 그런 입장을 제대로 따져 보게 될지 의문스럽다. 물론 모두가 나꼼수나 닥정처럼 글을 쓰고 말을 해야만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진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김어준을 까려면 기존의 난해하고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도덕적으로 훈계하는 듯한 어떤 정형화된 진보 진영의 스타일로는 쉽지 않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해보자, 쫄지 말자,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기쁘게 한 표를 던지는 바이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입장에 있어 김어준과 다른 맥락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닥치'련다. 대신 그의 새로운 플랫폼 안에서 재밌게 즐기고 놀련다. 그 풍성한 향연에 한동안 그냥 취해 있으련다. 연말쯤 취기에서 깨어나도 충분하다. 씨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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