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시끌벅적 전통시장, 그 숨은 비법은?

[시장투어 30선 ①] 문화와 바람난 가경터미널시장

등록|2011.10.27 15:49 수정|2011.10.27 15:49
예로부터 '시장에서 인심 난다'고 했을 정도로 우리네 공동체 의식의 발로는 바로 전통시장(재래시장)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대형마트가 시장잠식을 시작하면서 전통시장은 그 명맥까지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03년부터 재래시장육성특별법을 제정, 전국상인연합회 등과 함께 시장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정책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시장경영진흥원이 고심 끝에 진행하고 있는 '시장투어 30선' 일정에 직접 참가, 현장을 둘러보며 느낀 감정을 3회에 걸쳐 실어볼 예정이다.(10월 26일 하루 일정으로 조치원시장·가경터미널시장·육거리시장을 탐방했으며, 인천 부평구청 경제지원과와 부평구상인회장단의 견학단에 동행했다) <기자 말>

▲ 10월 26일 오후2시께 방문한 청주 가경터미널시장 입구 풍경 ⓒ 이정민


"많은 돈을 지원받아 획일적인 시설물 현대화로 모든 것을 끝내려는 속도 전쟁에서 벗어나 우리 시장상인들이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며 함께 참여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스토리텔링, 소통, 융합의 마인드와 문화예술 그리고 우리 시장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우라(향기)'가 필요했습니다."

충북 청주 가경터미널시장 오병조 상인회장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회의 대미는 이 한마디였다. "시장은 '흥'이 절로 나는 장소"여야 한다고.

우리 시장만의 고유한 '아우라'를 가져라

▲ 시장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주민참여광장인 '시끌벅적' 무대와 다정다방이 자리하고 있다. ⓒ 이정민


깔끔하게 정돈된 진열대 풍경, 각종 색으로 곱게 단장한 아기자기한 간판 소품들, 버스를 개조해서 만든 소통의 광장, 그리고 누구나 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다정 다방' 등 시장 안에는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풍성한 볼거리로 가득했다.

"쉬는 것보다 여기 나와서 일하는 게 더 좋고 행복합니다."

시장 중간 위치에서 조그마하게 떡볶이 장사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는 기자가 던진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에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화답으로 일갈한다. 다른 점포들의 상인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얼굴에서는 예전 거칠고 피곤에 찌든 시장 풍경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일터로 나왔는지 아님 마실을 나왔는지도 모를 만큼의 여유와 편안함이 묻어나 있었다.

▲ 공공예술가들이 각 점포마다 특색있는 간판을 만들어줘 상인들의 가게가 훨씬 산뜻해졌다. ⓒ 이정민


평일 오후라 시장 안 분위기는 조금 썰렁했지만 장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나온 인근 주민들 또한 상인들만큼의 웃음 가득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아이와 함께 나온 아주머니는 시장 라디오 방송국에서 울려 퍼지는 어느 유명가수의 추억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언제나 그랬다는 듯 상인들과 눈인사를 마주친다. 절로 미소가 번지는 풍경이다.

오병조 상인회장은 이런 아늑한 분위기가 오기까지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년부터 시작된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에 힘입어 모든 상인들이 예술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됐어요. 다양한 동아리활동에 직접 참여하면서 그만큼의 여가활동이 늘어난 셈이죠. 여기에 주민들과 함께 직접 체험하고 소통하면서 맺은 끈끈한 관계가 일터의 분위기를 바꿔낸 겁니다. 요즘은 상인과 고객의 입장이 아니라 같은 공동체 주민으로서의 의식이 더욱 공고해졌다고나 할까요. 아마도 이것이 바로 우리시장만이 발할 수 있는 고유의 아우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화 복덕방, 예술을 선물하다

▲ 문전성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장 내 마련한 창작예술공간 '덤' 모습 ⓒ 이정민


1994년 90여 개 점포로 시작한 가경터미널시장은 자영업을 해보겠다는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앳된 시장이었다. 그러다보니 연륜과 경험으로 다져진 아줌마 상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차츰 자리를 잡아갈 때 지난 1999년 시외버스터미널이 지금의 가경동으로 옮겨지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 했듯 상인들의 위기의식이 이내 경쟁의식으로 바뀌면서 상인회를 조직해 고객선 지키기 운동, 상인대학, 마케팅과 서비스교육, 공동쿠폰제도 운영 등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활동했다. 젊은 열정이 한 밑천으로 작용했는 듯, 이후 조금씩 시장경쟁력이 확보되고 상인회 활동에 탄력을 받으면서 2010년 '문전성시' 시범사업에 선정돼 문화예술 시장으로의 제3의 물결을 일으켰다.

"시장 내의 빈 점포나 여유 공간을 활용해 예술가들의 이주를 추진, 창작활동을 유치했다. 그리고 이주예술가들을 활용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상인·주민 간의 상호 관계 맺기 활동을 활성화했고, 그 재원으로 문화쿠폰을 활용함으로써 문화예술시장의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 지금의 시장을 창조하게 됐다."

이광진 가경터미널시장 문전성시사업단장은 <2010 문전성시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지난 1년간의 프로젝트 과정의 소회를 밝혔다. 그러며 이 단장은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인들의 존재 가치 회복, 변화에 대한 열정, 전통시장의 문화적 가지 재인식이었다고 강조했다.

▲ 상설 공연장 전경 ⓒ 이정민


'문화와 바람난 시장길'이라는 타이틀로 구성된 사업단은 지역의 공공예술가들이 참여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이들은 특히 공동문화쿠폰 활성화와 동아리 활동을 매개하는 문화 복덕방, 토요이벤트, 겉절이 방송국, 아트마켓, 가을운동회 등을 주최하며 시민참여를 적극 유도했다.

여기서 공동문화쿠폰 운영은 소비자가 시장에서 물건을 5천 원 이상 구매할 때마다 100원짜리 쿠폰을 준다. 그럼 소비자는 이 쿠폰을 모아 예술체험이나 문화예술교육 수강 등 각종 문화체험프로그램에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마디로 문화예술활동은 시장에서 누리는 일종의 '덤'인 셈이다.

또한 이들은 시장문화소통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지역 예술인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창작공간을 마련해주었고, 상인과 주민들의 다재다능한 끼를 발견해주고 다독여주는 예체능 선생님 역할을 자처했다. 그렇게 해서 현재 풍물과 난타, 우리 춤, 판소리, 그룹사운드 등의 4개의 상인 주축 동아리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밖에도 지역민과 상인들의 소통 공간인 다정다방, 상인들의 생생한 삶의 소식을 전해주는 시장통 라디오, 상인 친화적 문화공간인 꿈꾸는 작은 도서관 등 참여프로그램을 확대해가면서 삭막하기만 했던 전통시장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3대 캠페인 그리고 '아! 미인대칭' 서비스

▲ 부평구 상인연합회 회장단들이 시장 사랑방에 모여 오병조 상인회장의 브리핑을 듣고 있는 모습 ⓒ 이정민


상인대학 참석율 80% 이상, 그리고 SNS 마케팅 공유 등 가경터미널시장 상인들은 직접 홍보 모델이 되어 자기 가게에서 제일 자신 있는 음식을 소개하고, 그 특유의 조리법까지 그대로 보여주면서 소비자와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또한 이들은 자치규약과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고객서비스 접점에서 효과적인 응대가 가능하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3대 캠페인과 '아! 미인대칭' 서비스다.

▲ 오 회장은 작년 10월께, 시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쿠폰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담은 '회장님 우리도 쿠폰 합시다'(정환출판사)를 공동 발간했다. 책은 공동쿠폰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과 활용 전략, 실제 시장에서의 운영사례를 생생한 경험과 함께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 이정민


구체적으로, 3대 캠페인은 '황색선(고객통행선)을 지킵시다', '친절합시다',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을 취급합시다'이다. 그리고 '아! 미인대칭' 서비스는 아이매칭(서로 눈맞춤하기), 미소 짓기(웃는 얼굴로 고객맞기), 인사하기(어서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대화하기(고객과 소통하기), 칭찬하기(고객님으로 호칭하고, 서로 칭찬해주기)의 행동강령이다.

언뜻 보면 '뭐, 이런 걸 강령이라고 해놓았나'라고 비아냥 거릴 수도 있지만 오병조 상인회장이 강조한 것은 바로 "기본으로 돌아가기"였던 것이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때의 초심을 잃지않고 가장 기본적인 고객응대만 잃지 않고만 해도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열린 전국우수시장 박람회에서 '고객선 지키기'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가경터미널시장은 타 시장과는 다른 분명 확연한 차별성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인프라에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근하며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는 상인들의 '진심'이 아마도 가경터미널시장이 갖고 있는 최고의 차별화가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참조] 참가단체. 부평구청 경제지원과 생활경제팀 심희순, 심순영 / 진흥종합시장상인회 / 십정종합시장상인회 / 부평종합시장상인회 / 갈산종합시장상인회 / 부일종합시장상인회 / 부평중앙지하상가상인회 / 부평역지하상가상인회 / 로터리지하상가상인회 / 부평의제21 경제와사회분과위원회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