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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발목 잡은, 의원 시절 '그 때 그 법'

사학법, 정치자금법, 친일재산환수법... 3개 법안 선거 내내 악재돼

등록|2011.10.28 15:47 수정|2011.10.28 15:47

▲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 나가고 있는 가운데, 26일 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개표 상황실에 나경원 후보가 고개를 숙인채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야권단일 후보 박원순이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7.2%p라는 큰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박원순 당선의 공신들을 대라면 수도 없이 많지만 평일 재보선 사상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서울시민이 최고 공신이다. 이와 함께 SNS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부끄럽지 않게 살려 노력한 박원순 후보 자신도 빼놓을 수 없다. '50%가 5%에게 양보'하는 초유의 일, 그리고 2장짜리 편지로 선거의 최대 화제였던 안철수 교수도 최고 공신 중 한 명이다.

이들과 더불어 또 한 명, 빠질 수 없는 이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내곡동 사저 의혹으로 나경원 후보를 당혹케 했으며, 최측근 김두우 전 홍보수석과 신재민 전 차관은 검찰을 들락거렸다. 선거 원인 제공자인 오세훈 전 시장은 투표도 하지 않았는지 인증샷 보도가 없다.

굳이 이번 선거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박원순의 승리'보다는 '나경원과 한나라당의 패배'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박원순 당선자가 훌륭하지 않다거나 범야권의 노력이 폄하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나라당은 네거티브 전략에, 당 대표가 직접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얼굴도 모르는 작은 할아버지의 호적을 흔들고, 철부지 13살 때 어른들이 한 일을 '병역 면탈 호적 쪼개기'라는 신조어로 공격했다. 천안함 입장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으며, 비공식 모임에서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문제 삼았다. 평양시장 운운 발언도 나왔다.

그러나 네거티브와 색깔론 전략은 제 발등을 찍었다. 학교 감사 무마 청탁, 회계장부 소각 등 사학비리 의혹, 교사들의 정치자금 수수, 저축은행 유착 의혹, 1억 피부클리닉 논란, 남편의 기소청탁 의혹 등 쏟아지는 문제 제기에 나 후보와 한나라당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자신이 이사인 학교의 비리 의혹에는 "아버지 학교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피해가려 해 비난을 자초했다. 천안함과 임을 위한 행진곡, 평양시장 어쩌고 하는 색깔론도 젊은 세대들에게 영향력이 없었고 구태 정당 이미지만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후보 스스로 발목잡게 한 '3개의 법안'

나경원 후보는 의정활동이 제1의 평가 기준이 되는 국회의원이다.(정확하게는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을 사퇴해 지금은 아니다.) 나 후보 입장에서는 1억 피부클리닉 논란이나 알몸 장애인 목욕 사건 등에 대해서는 억울할 수도, 해프닝일 수도 있다. 이것이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는 이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나경원 후보는 국회의원 시절 법률과 관련된 의정 활동 때문에 당시에는 짐작도 하지 않았을 낭패를 이번 선거과정에서 보았다. 나경원 의원과 관련된 3개의 법안이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1.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와 사학재단 이사

▲ 지난 2006년 1월 11일 수원시에서 열린 사학법 개정 반대 한나라당 장외 촛불집회에 참석한 박근혜 의원, 이재오 의원, 나경원 의원. ⓒ 권우성


이번 선거에서 알려진 것처럼 나경원 후보의 아버지가 사학 설립자이고, 그는 이 학교 이사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학비리 척결과 학교민주화를 기치로 한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로 정국이 극한의 대립을 하고 있었다. 이 당시 나경원 후보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 초창기였으며, 초선임에도 한나라당의 공보부대표를 맡았다.

2005년 12월 9일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몸싸움 끝에 본회의를 통과하자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은 전교조에게 모든 것 주자는 법"이라며 국회를 박차고 장외투쟁에 나섰다. 보수단체와 언론들은 '인민위원회법, 공산주의 하자는 법'이라며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사학법인들은 학교 폐쇄와 신입생 모집 거부라는 막말도 서슴치 않았다.

당시 나경원 후보는 언론 인터뷰와 토론회, 거리 연설 등을 통해 "개방이사는 전교조의 학교 장악 음모"라며 사학법 개정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박근혜, 이명박 현 대통령 등과 함께 촛불을 들고 야간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사학법 강경 투쟁을 주도한 것은 박근혜 대표였다.

박근혜 대표 역시 영남대 이사장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 학교의 종신 교주(校主)이며, 당시 영남대에 다시 그의 가족들이 복귀하느냐 마느냐 논쟁 중이었다. 사학의 직접 당사자인 박근혜 대표가 투쟁을 이끌었고, 나 의원도 적극 결합한 상황이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나경원 의원의 사학법 반대에 대한 비판에 "한나라당 당론이기 때문에 따랐던 것이다", "오해를 살 수 있어 의원 총회나 교과위에 가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아버지가 설립자 교장인 학교에서 2000년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회계 자료를 폐기해 버린 사실이 문제가 되자 "아버지 학교 일에 대해서 해명하지 않겠다"고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아버지가 설립자일 뿐 아니라 그가 이사인 학교였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당시 교과위 위원이었던 정봉주 전 의원에게 감사 무마를 청탁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나 후보는 "아버지 학교에 대한 전교조 교사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을 한 것뿐"이라고 주장하며 정봉주 전 의원을 고발했다. 결국 진실이 무엇이냐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되었다.

여기에 족벌사학인 광주인화학교의 성폭행 사건이 '도가니 열풍'을 통해 다시 재조명되면서 사학의 족벌경영 방지와 공공성 강화를 위한 개방이사를 반대한 나경원 후보에게는 이래저래 악재가 겹쳤던 것이다.

나경원 의원이 2005년 당시 사학법 개정 반대가 6년 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정부지 대학등록금과 사학비리로 국민들은 지금도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던 한나라당을 비판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 선거에 나설 확률이 100%에 가까운 현실에서 이 사학법 문제는 박근혜의 대선 행보에서 나경원 의원처럼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2. 정치자금법 개정 반대와 교사 정치자금 수수

학교와 관련하여 나경원 후보의 발목을 잡은 것은 또 있는데, 바로 교사들로부터 받은 정치후원금이다.

2010년 학부모단체들이 검찰에 수사의뢰까지 했는데 검찰은 단순한 풍문이라면서 수사개시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언론의 집중 추궁에 마지못해 나 후보는 "교사들이 했다는 것을 얼핏 들었다", "정확히 누가 얼마나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때는 불법이 아니었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았다. 교육부가 2004년 교사의 정치후원금이 불법이라고 회신한 바 있으며, 후원금 수입내역에 '교원'으로 기록된 이들이 있고, 전화 국번이 이 홍신학원 소속 학교와 일치하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현재 전교조 교사들이 민주노동당에 월 5000~1만 원씩 후원한 혐의로 1700명이나 재판을 받고 있다. 사실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등 야권은 교사의 정치후원금 등 정치기본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 정치자금법 및 국가공무원법 등의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작 원내대표 황우여, 사무총장 김정권과 이주호 교과부 장관, 이군현 전 수석부대표 등이 교사들에게서 훨씬 많은 수백에서 수천 만 원의 정치자금을 받았음에도 교사의 정치후원금을 허용하자는 정치자금법과 국가공무원법 개정에 반대한다. 나경원 후보 역시 이 법 개정에 대해 모를 리 없지만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미필적 고의로 보인다.

만약 나경원 후보가 먼저 교사의 정치자금 수수를 인정하고,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이번 선거에서 교사 정치자금 수수 문제가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법 개정에 대해서 침묵했고, 한나라당이 당 차원에서 법 개정을 거부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나경원 후보를 힘들게 했던 교사 정치후원금 문제는 다음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에게는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교사의 정치자금을 받은 황우여, 김정권, 이주호, 이군현 등이 출마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상대 후보는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질 것이다.

한나라당이 교사의 정치후원금 등 정치기본권을 보장하자는 법 개정에 대해서 이번 국회에서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3. 친일재산환수법 찬성 거부와 자위대 창립 기념 행사 참여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5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와 지원유세에 나선 홍준표 대표가 시민들에게 10.26 서울시장 선거의 지지를 호소하며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나경원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곤혹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2004년 자위대 창립 기념 행사 참석 건이었다. '자위대 행사인 줄 모르고 갔다'고 한 해명이 거짓이라는 논란이 제기되었고, 모르고 갔다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에 별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계속 문제가 되는 이유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환수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재산환수법') 때문이다. 2005년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여야 국회의원 169명이 찬성 서명하여 제출된 친일재산환수법에 나경원 후보의 이름은 없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전원이 찬성 서명했고, 한나라당 의원도 박계동 의원 등 6명이 서명했다. 그러나 박근혜와 나경원의 이름은 없었다.

그해 12월 8일 이 법 처리를 위한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본회의 출석을 거부했다. 나경원 의원도 불참했으며,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만 참석하여 참석의원 전원 찬성으로 이 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반해 박원순 당선자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군대 위안부 강제 동원 만행과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을 따지기 위하여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성 국제전범 법정'에 일본 왕을 기소한 검사로 활약한 이력이 있어 나 후보와 대조되기도 했다.

이제 10·26 재보궐 선거는 끝났다. 그 결과에 대해서 평가하고 무엇이 국민의 뜻인지 새길 일만 남았다. 낙선한 나경원 후보도 지난 의정 시절 그가 가졌던 입장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그의 발목을 잡았던 사학법, 정치자금법, 친일재산환수법 등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 바탕에서 아직 진행 중인 사학법 논쟁과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에 대해서 하루 빨리 한나라당이 입장을 정하는 데 전 서울시장 후보로서, 그리고 현 최고위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일 것이다. 한나라당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략적인 의정 활동이 결국 언젠가는 그들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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