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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닭 훔쳐먹던 소년, '참교육' 선생님 되다

[서평] 파울루 프레이리의 <크리스티나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2011.11.03 11:58 수정|2011.11.03 11:58

▲ <크리스티나에게 보내는 편지> 표지 ⓒ 양철북

자서전은 자기가 쓴 자기의 전기이기에 그 사람의 냄새가 난다. 교육학의 고전 <페다고지>를 쓴 교육자 파울루 프레이리의 자서전에서는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쓸 때 날리는 백묵가루 특유의 퀴퀴하지만 정겨운 냄새가 난다. 그의 자서전은 다른 사람들의 자서전보다 훨씬 친절하고 자상하게 느껴진다. 다른 자선전과 달리, 프레이리의 삶을 궁금해하는 조카 딸 크리스티나에게 쓴 편지들을 정리해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브라질의 근현대사는 그의 삶에 영향을 많이 끼쳤고, 편지에도 자국의 역사에 대한 의식이 담겨 있어 그 글을 가장 먼저 읽었을 크리스티나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역사적 상황을 간접체험 할 수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또한 다른 이라면 숨기고 싶어할 만한 과거도 남김 없이 쓰여 있다. 어릴 적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다른 사람의 과일을 훔쳐 먹은 일, 이웃집 닭을 몰래 요리해 가족들과 오찬을 즐긴 일, 프레이리는 이런 일들을 통해 자신의 인성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 것 같다.

이웃집 닭을 먹으면서 우리는 아마 향료의 맛과 더불어 양심의 가책도 맛보았을 거다. 요리는 배고픔을 달래주었으나 그 닭은 우리에게 죄의식을 상기시켰어. 우리는 남의 사유재산을 빼앗는 범죄를 저지른 거야.(42쪽)

같은 상황과 마주쳐도, 그것에서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교훈을 깨우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자신을 삐뚤어지게 만든 원인이라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프레이리의 유년기 시절, 비록 가정은 민주적이고 따뜻했지만 가난 때문에 늘 부족하고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긍정적 사고로 가난을 잘 이겨냈을 뿐더러, 그것을 스스로를 훌륭하게 만든 밑거름으로까지 삼았다. 거기다 그는 꽤 명석했는지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교를 진학하고 인생의 경험을 충분히 쌓게 된다.

'인간 해방'의 교육...지금도 유효한 그의 열정

그렇게 어른이 된 프레이리는 자신의 옷차림보다 책을 더 소중히 하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다. 그 후에는 사회산업국(SESI)에서 10년간 일하게 되는데, 민주적인 학교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정당치 못한 체벌이 있고, 매년 초등학생 낙제생 수가 오백만 명 가까이 되는 브라질의 교육을 바꾸는 일은 교육혁명을 넘어선 사회혁명이었다.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되면서도 그의 교육열은 식지 않는다. 문맹이었던 학생이 아내의 이름을 처음으로 쓰고 큰 웃음을 터뜨릴 때, 문맹 소녀였으나 교사가 된 젊은 여성이 "이 나라의 교사들을 존중하고 충분한 급료를 주고 브라질의 모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라고 당부하고 싶어요"(211쪽)라고 말할 때 프레이리의 열정은 빛을 발한다.

프레이리의 개인적 경험 위주의 첫 번째 편지 묶음이 끝나고 브라질 안팎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룬 두 번째 편지 묶음에서는 그의 진보적 사상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학교', '인간 해방' 등 지금도 유효한 20세기 말의 문제들을 논한다. 그는 "역사를 가능성으로 보아야만 주관성은 세계 변혁의 대상을 넘어 주체의 역할을 하게 된단다. 그러면 미래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미정인 상태가 되는 거야"(275쪽)라며 단호하게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것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보수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현상을 유지시키자'라고 생각한다면, 진보는 '세상은 좋게 변화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미래에 대한 태도로 본다면, 나는 진보의 생각에 동조하고 싶다. 분명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지금 교육이 훨씬 좋아졌을 거다. 하지만 교사에게 대들고 폭행까지 휘두르는 학생, 반대로 학생을 감정적으로 때리는 교사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 아직 프레이리가 바라는 '참교육'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꼭 교육자가 아니더라도 먼저 태어나 배울 점이 있는 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가 십 년을 넘게 다닌 학교에서 만나게 된 선생님들 중, 진정 '선생님'이라고 부를 만한 분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가르침이나 배움을 똑같은 앎의 한 과정으로 간주하는 학교"(133쪽)를 꿈꾼다. 파울루 프레이리 인생의 단 하나의 목표, 참교육에 대해 생각해볼 때이다.
덧붙이는 글 <크리스티나에게 보내는 편지> 파울루 프레이리 씀, 남경태 옮김, 양철북 펴냄, 2011년 10월, 363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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