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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짓고 이 형사랑 협상하면 돈법니다

[서평] 쓰쓰이 야스타카의 <부호형사>

등록|2011.11.03 13:46 수정|2011.11.03 20:59

<부호형사>겉표지 ⓒ 검은숲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형사 또는 탐정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먹고 살기 힘들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일반 월급쟁이들보다 여유 있는 생활을 할 것 같지도 않다.

대부분의 범죄소설에서 형사들은 박봉에 시달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과중한 업무를 해나간다.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친척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유유자적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파일로 반스'같은 탐정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탐정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 의뢰인에게 받는 일당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수사 도중에 다치기라도 하면 자신의 돈으로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소설 속 사립탐정이나 형사 중에는 독신의 노총각들이 많다. 이들은 긴긴 밤을 술로 보낼 때도 있으니 평소에 들어가는 술값도 적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 술을 마시며 밤을 보내는 노총각. 여기에 딱 맞는 캐릭터가 어쩌면 형사와 탐정일 것이다.

대부호의 외동아들이 형사라고?

<부호형사>의 글쓴이 쓰쓰이 야스타카는 이런 풍경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 <부호형사>에서 제목처럼 엄청난 부자인 형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의 이름은 '간베 다이스케'. 대부호의 외동아들이고 그가 물려받을 재산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 그는 캐딜락을 몰고 경찰서에 출·퇴근하며 한 개비에 8500엔짜리 수입산 시가를 피우며 회의에 참석한다.

사실 소설 <부호형사>가 발표된 것은 1978년이다. 그 당시에 캐딜락을 몰고 수입시가를 피우는 형사의 모습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 다이스케가 무엇이 아쉬워서 형사가 됐을까. 그 이유는 다이스케의 아버지인 '간베 기쿠에몬'의 말을 통해서 대충 짐작해볼 수 있다. 기쿠에몬은 젊은 시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들였다. 스스로를 가리켜서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몹쓸 인간'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기쿠에몬은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과거를 뉘우친다. 그러면서 다이스케에게 "네가 내 죄를 씻어주렴"이라고 말한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더러운 돈을 얼마든지 가져다 써도 좋다는 의미다.

이렇게 해서 돈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부호형사'가 탄생한다. 작품 속에서는 다양한 사건들이 터진다. 살인사건, 유괴사건, 현금강탈사건, 조폭과의 대립 등…. 이런 사건이 생겨나면 부호형사 다이스케는 범인을 검거할 기발한 아이디어를 꺼낸다. 다만 그 아이디어에는 일반인들이 엄두도 못낼 커다란 돈이 필요할 뿐이다.

돈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흥미롭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그 문제가 범죄사건이라면 어떨까. 살인이건 강도건 간에 사건이 발생하면 빠른 시간 내에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시간은 곧 돈이다. 다이스케는 적은 돈으로 긴 시간을 들여서 범인을 추적하느니, '차라리 많은 돈을 가지고 빠른 시간에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소설 속 경찰서 간부들도 처음에는 난색을 표한다. 형사의 개인 재산으로 사건을 해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은 여론이 생겨날 리도 없거니와, 그런 식의 수사는 경찰청의 원칙과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다이스케의 작전이 매번 맞아떨어지자 간부들은 별 불만 없이 그의 제안을 따라간다.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다이스케의 월급은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유괴사건을 맡아 수사를 진행하던 중 유괴범이 500만 엔을 요구해오자 다이스케는 '겨우 그 돈 때문에 아이를 유괴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 돈이 자신의 몇 년 치 연봉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렇듯이 다이스케의 금전감각은 항상 그의 막대한 재산과 낮은 수입의 광활한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언제쯤 다이스케의 방황이 끝날지 사뭇 궁금해진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돈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덧붙이는 글 <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씀 최고은 역|검은숲|2011.10|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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