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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줄이겠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세요

기독교자유민주당에 보내는 글

등록|2011.11.05 10:50 수정|2011.11.05 10:51
 이 글을 씀에 있어서 전광훈씨에게 '목사'라는 명칭을 병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의사'가 인명을 소중히 여기는 일보다 돈벌이에 관심을 가지면 '의사'라는 칭호가 부끄러워지듯이 '목사'가 연약한 양떼를 사랑하는 일을 방기하면 그 칭호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고, 이왕 정치판에 나선 이상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아~ 그 전광훈이~' 정도로 불리는 일에 익숙해 지셔야 할 테니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목사'일 수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모태신앙을 가진 평신도이고 베드로의 고백처럼 '죄인입니다.' 그리고 온 몸으로 오늘의 한국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아파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전광훈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저는 종북좌파이거나 아니면 종북좌파에게 속은 국민에 해당하겠습니다. 물론 저는 인류역사에 100년도 채 안된 이념의 세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랑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최근 크리스찬투데이에 실린 인터뷰 기사, 전광훈 목사 "이번 선거는 대통령과 목회자들 책임" 의 말미에 "선지자란 내일 죽어도 시대적인 사안을 하나님 입장에서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셨더군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두 번 당황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선지자로 규정하는 것에 놀랐고, 둘째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이라는 표현에 놀랐습니다. 우리 시대의 목사들이 참 교만하고 또 형편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선지자(先知者)라 함은 무엇인가 남보다 앞서서 아는 사람, 앞서서 나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공존과 평화의 시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고 있는 사람이 선지자인 것이지 아직도 냉전시대의 유물인 이념을 붙들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사람이 선지자 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성서 어느 곳에서도 전광훈씨와 같이 과거를 돌아보는 선지자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이것은 참으로 교만한 언사입니다. 현실세계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입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광훈씨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존재할 뿐이지요. 지금 전광훈씨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한다는 듯이 말하는 것은 심각한 실언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로 이런 교만이 오늘의 한국기독교가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가장 큰 죄 아니겠습니까? 30여년에 가깝도록 목회를 하셨다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전광훈씨가 시무하는 사랑제일교회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사도행전을 이어가는 교회' 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참 좋은 문구였습니다. 물론 그저 '열심히 전도합시다.' 정도의 의미를 담은 것이었겠지만 저는 성서적으로 사도행전이 갖는 참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자유민주당의 창당선언문을 보니 '자본주의 원칙에 충실한 가운데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전광훈씨가 그토록 애정을 가지고 있는 청교도의 나라, 기독교 국가, 자본주의가 가장 완벽하게 발달한 나라인 미국사회의 양극화문제를 모르십니까? 지구상에서 가장 극악한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 나라의 직업정치인들도 해내지 못한 '자본주의 원칙에 충실한 가운데 빈부격차를 줄이는 일'을 전광훈씨와 기독교자유민주당이 해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저 3류 정치집단에게서 배운 대안없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 창당선언이라니 보는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만일 전광훈씨나 기독교자유민주당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참으로 빈부의 격차를 줄이려 한다면 성서로 돌아가면 됩니다. 전광훈씨의 교회가 외치는 표어처럼 사도행전으로 돌아가 보면 됩니다. 그곳에 청교도 정신으로 똘똘 뭉친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유수한 정치인도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고 /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장 44~47절)

사도행전 2장 44~47절은 가장 완벽한 교회의 원형이 무엇인지,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너무도 명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칭송을 받은 까닭은 그 공동체가 사랑과 나눔의 공동체였기 때문이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그것을 억지로 하지 않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놀라운 일은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진 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베풀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와 제도를 만드는 일,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취약한 계층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 나 혼자 잘 살겠다고 무한경쟁과 탈법이 난무하는 문화를 버리고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 이런 것들이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복지'이고, 곧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했던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바로 선지자가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빈부의 격차를 해소할 어떠한 행동, 의지, 용기는 없고 감성적인 구호만 들고 있는 것이 선지자가 할 일입니까?  이사야도 아모스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광훈씨와 기독교자유민주당이 고작 100년도 안된 이념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했던 일을 해보자는 사람들을 향해서 '종북좌파' 따위의 빨간 칠이나 하는 것이 선지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오늘의 교회가 어떠한지 묻고 싶습니다.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전광훈씨를 비롯한 기독교자유민주당과 함께 하는 목사들과 그들의 교회들이 과연 사도행전이 전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런 의지가 없다면, '목사'라는 칭호는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기독교자유민주당이라는 간판도 내려놓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일은 더더욱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땅을 스쳐간 3류 정치꾼으로 가는 길에 내 사랑하는 예수를 끌고 가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분은 이천년 전 이미 한 번 당신들과 같은 교만한 자들에 의해 죽임당하셨던 분입니다. 당신들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죽임당하신 그 분, 내 사랑하는 그 분을 거듭 죽이는 일에 분노합니다.

당신들이 새겨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며 끝 인사에 갈음합니다.
"네 이웃을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십계명 제9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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