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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 통통 팔뚝만한 '7석이', 만나기 참 어렵네

참조기 대풍, 군산수협 해망동 공판장을 가다

등록|2011.11.05 16:16 수정|2011.11.05 16:16
황금빛 '참조기'가 30년 만의 풍어를 맞았다. 아니 40년 만이란다. 고깃배(안강망)마다 만선. 부둣가 선술집과 공판장에서 흘러나오던 한숨 소리는 즐거운 비명으로 바뀌었다. 바다 용왕님이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 어민들을 긍휼히 여기신 모양이다.

11월 들어 첫 조금(음력 10월 8일)을 하루 넘긴 11월 4일. 세상 만물이 잠든 새벽 5시에 군산시 수협 해망동 공판장을 찾았다. 택시에서 내리니 갯벌 특유의 갯내음과 비릿한 생선냄새가 얼굴을 감싼다. 싱싱한 참조기 냄새여서 그런지 깨소금처럼 고소하다. 차갑게만 느껴졌던 바닷바람도 훈훈하다.

▲ 군산시 해망동 공판장 새벽 풍경. 구경나온 시민 표정에도 생기가 돋았다. ⓒ 조종안


북적이는 사람들과 공판장 건물을 보니 반가움이 앞선다. 일제강점기(1918년)에 준공돼 시민과 애환을 함께해온 공판장이 2009년 10월에 '비응항'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서운해 하다가 군산시에서 계획을 수정, 해망동을 수산물 가공 거점단지로 조성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

"끼르륵, 끼르륵···."

배 위를 맴도는 갈매기들 울음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참조기가 가득가득 담긴 어상자가 부딪치는 소리도, 작업하는 인부들 고성도 갈매기 울음소리에 가려 멀찌감치 들린다. 배마다 만선이니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 모여들 수밖에….

소문대로 참조기는 대 풍어였다. 김형문(46) 해망동 공판장장은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2개월 동안 안강망 어선 한 척당 7억 원에서 8억 원 정도 어획고를 올렸다"라며 "지난 조금에는 2억 8백만 원, 이번 조금에는 1억 5천만 원 올린 배도 있다"고 귀띔했다. 2010년 9월에는 한 척당 5천만 원에서 6천만 원 가량 올렸다고.
    
어획량도 풍성했다. 군산수협 소속 안강망 어선은 모두 17척(70톤~120톤). 조금이었던 11월 3일은 네 척, 4일은 여섯 척, 5일도 여섯 척, 6일에는 한 척이 입항한단다. 참조기 한 상자 무게가 28kg~30kg 나가는데 한 척에 보통 1300~1500 상자씩 잡아왔다는 것. 참조기 1700 상자(47.6톤 가량)를 잡아온 배가 우승(?)을 차지했단다. 

아무리 친한 사이도 경매 시작되면 '안면몰수'

▲ 사이렌 소리를 듣고 모여드는 사람들. 구경나온 어르신 부부가 눈길을 끌었다. ⓒ 조종안


새벽 5시 30분, 정적을 깨뜨리는 사이렌 소리를 신호로 경매가 시작된다.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매인들과 대매인(중매인에게 수수료를 주고 구매하는 중간상)들이 참조기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인 공판장으로 모여든다. 소매인과 구경나온 시민, 선주로 보이는 노부부도 눈에 띈다. 

경매는 경매사(세리꼬), 경매보조원(보사시), 속기사(하마조) 세 사람이 한 조를 이뤄 진행된다. 그들은 군산수협 직원으로 세 사람의 팀워크가 잘 발휘돼야 경매가 순조롭게 진행된단다. 특히 경매사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날 시세는 경매사 손에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매 보조원이 갈고리로 참조기 상자를 찍어 올리더니 고수가 추임새를 넣어주듯 "알이 토옹~통한 참조기 이~백삼십 열네 줄!"이라고 외친다. 그러자 경매팀장 정현용(54) 경매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어둠에 싸인 해망동 새벽하늘로 울려 퍼진다.

▲ 경매사를 향해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는 중매인들. ⓒ 조종안


▲ 치열한 눈치싸움(?) 끝에 경매 호가를 결정하는 정현용 경매사(빨간 자켓). ⓒ 조종안


"이야~! 참조기~ 참조기. 이~백삼십 열네 줄이야, 알이 통통 팔뚝만 씩 허네! 이야~! 십만이야, 이십, 삼십오만이야~! (잠시 멈추더니) 야 인마! 이렇게까지 나오는디 너는 개 털디끼 털고 있냐? 정신채려 임마! 이야~ 칠만 팔만이야~! 어라, 야 인마 진즉 그렇게 나와야지. 40만 원? 너 다 가지가!"

'참조기 이백삼십'은 한 상자에 230마리씩 담겼다는 뜻. '알이 통통 팔뚝만 씩 허네!'는 씨알이 크다는 의미로 분위기를 돋우려는 경매사의 애드리브. 십만 원부터 시작한 경매에서 35만 원까지 오르는데, 한 중매인이 가격을 내리자 "시세도 모르느냐, 정신 차리라"고 주의를 줬다. 주의도 일종의 애드리브. 시세가 38만 원을 넘어갈 때 지적당한 중매인이 40만 원을 표시하니, 확인한 뒤 내 것 공짜로 주듯 다 가져가라며 경매를 마쳤다.

▲ 경매가 끝날 때마다 구매 일지에 메모하는 속기사. 일명 ‘하마조’(왼쪽 모자 쓴 이) ⓒ 조종안


경매사와 함께 움직이는 속기사는 경매가 끝날 때마다 '구매 일지'에 경매 결과를 메모한다. 낙찰된 물건에는 주인(중매인)의 번호표가 붙는다. 간발의 차이로 기회를 놓친 중매인들의 탄식 소리가 공판장 천정을 때린다. 그래도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다음 경매장소로 이동한다.

뒤에서 경매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획량이 지난 조금과 비슷하면서도 크기가 작아 어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걱정하던 김 공판장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낙찰가격이 높으면 어획고도 그만큼 올라갈 것이니 기뻐할 수밖에.

정현용 경매사는 경매가 끝날 때마다 생수를 들이켰다. 목이 타는 모양이다. 땅바닥에 깔리는 듯 한 육중한 목소리로 장시간 분위기를 잡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선주와도 가깝고, 중매인들과도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그지만, 경매가 시작되면 '안면몰수' 한단다. 경매에 들어가면 모자의 번호만 보인다는 것. 노련한 몸놀림에 매끄러운 가격 결정까지 26년 경력의 베테랑 경매사다웠다. 그래도 그는 "경매를 잘못 배운 것 같다"며 겸손해했다.

참조기는 대 풍어인데 '7석이'는 만나기 어려워

▲ 비닐 덮개를 벗겨낸 참조기. 한 상자에 330 마리 이상 들어가는 가장 작은 크기로 공판장에서는 ‘깡치’로 통한다. ⓒ 조종안


이날 참조기 시세는 가장 작은 크기 한 상자(330마리 이상)에 5만7000원, 290~300마리(9석이)는 15만 원, 230마리(8석이)는 40만 원, 200마리(7석이)는 60만 원을 호가했다. 참조기가 대 풍어임에도 '7석이'는 만나기 어려웠다. 갈수록 어자원이 고갈되기 때문이라는 것.

예전엔 한 상자에 아홉 마리씩 깔리면 '9석이', 여덟 마리 깔리면 '8석이', 일곱 마리 깔리면 '7석이'로 통했다. 1970년대만 해도 네 마리나 세 마리씩 깔린 상자가 흔했다고 한다. '석이'를 '단'이라고도 했다. 지금도 나이 든 어른들 사이에는 '9석이'는 '9단'으로 '7석이'는 '7단'으로 통한다.

정 경매사에게 '30년 만의 참조기 풍어라고 하는데, 실감하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이 웃는다. 그는 "제가 수협에 입사한 지 26년이 됐는데 상자로 1700개 이상 잡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상자 수로 치면 아마 40년 만의 풍어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공판장 바닥에는 갈치, 우럭, 상어, 아나고(붕장어), 넙치, 오징어, 백조기, 부세(부서), 싱대 등 맛좋고 싱싱한 생선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비싸고 맛좋은 생선이라 해도 오늘의 주인공은 참조기인 만큼 경매할 때는 싸잡아 '잡어'라 불렀다. 자기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자존심이 상했을 갈치와 우럭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경매가 끝나도 공판장은 분주해

▲ 아침도 거르면서 조기 상자를 차에 옮겨 싣는 상인들. ⓒ 조종안


해망동 공판장 경매는 오전 7시쯤 모두 끝났다. 공판장의 참조기들은 대매인 손을 거쳐 수산물센터와 각 시장 산매상으로 실려 나간다. 전남 법성포(영광), 충남 대천, 서울 등지에서도 참조기를 사러오며 외지인들은 중매인과 직접 거래한다고. 군산시 중매인은 모두 150여 명, 그 중 해망동 공판장 소속 중매인은 60명이란다.  

공판장 부근 백반 집에서 구수한 된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빈속에 어머니 손맛을 떠오르게 하는 된장국은 꿀맛이었다. 밥을 맛있게 먹고 그냥 돌아오려니 서운하다. 그래서 공판장에 다시 들렀더니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조기 상사를 트럭에 옮겨 싣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으나 마냥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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