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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너무 적나라하고 파격적인...

[책소개]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십니까... <결혼전 물어야 할 한 가지>

등록|2011.11.08 13:42 수정|2011.11.08 13:42

▲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에 참여한 필자들의 뒤풀이가 있었습니다. ⓒ 이안수


갈등 10분에 항복

서울에서 며칠 만에 온 아내가 그간 있었던 얘기며 새로운 계획들을 말했습니다.

요즘 아내는 다시 산행에 열중이라 짬이 나면 산행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지난주에는 헬멧과 하네스, 장갑과 암벽화 등 암벽장비 일습을 갖춰 제 앞에 자랑스럽게 풀어놨고, 일요일에 북한산 인수봉 남벽의 여정 코스 암벽등반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다시 내년 초의 계획을 얘기했습니다. '4월에 홀로 지리산을 종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아내가 등반에 너무 집착하는 듯싶기도 하고 명년 계획은 당면한 사안도 아니라 저는 아내의 발언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심, '우리 가족의 현실이 그렇게 한가롭지 않다'는 제 불만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쾌활하던 표정이 돌변해 금방 눈에 눈물이 그득하게 고였습니다.

저는 3분 만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내년 지리산 종주계획을 다시 얘기해보시오. 내년 3월 이후면 내가 끝내야 할 원고들도 끝날 무렵이니 나도 함께 가겠소."

항복뿐만 아니라 함께 종주에 동행하겠다는 약속까지 보태고 말았습니다. 이날의 부부 갈등은 발발 10분 만에 이렇게 종결됐습니다.

너무 적나라하고 파격적인...

그 날은 17명 필자들의 글을 묶은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의 필자 분들을 한 자리에 모시고 막걸리 한 잔 대접하고자 한다는 출판사 '샨티'의 출판 뒤풀이 초대를 승낙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홍대 앞 어디쯤의 막걸리 집에서 만난다는 약속이 "일찍 끝날 것"이라는 '샨티' 박정은 대표의 얘기를 신뢰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그 약속 직후에 저를 데리러 오길 부탁해뒀습니다. 되돌아 올 막차를 놓치면 집으로 돌아올 일이 난망한 때문입니다.  마침 휴무일이 됐다고 약속 장소에 가는 일도 운전을 해주기로 했으므로 그 약속이 어긋날까 지리산 종주에 관한 갈등이 더 일찍 봉합된 것도 사실입니다.

약속 장소인 '홍대 막걸리'는 오래전에 제가 근무했던 잡지사의 편집실이 있던 곳에서 멀지않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주변은 상전벽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출판사의 모든 식구들과 안건모, 오진희, 박금선, 김서령, 김종휘, 편해문 선생님 등 술자리에서도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수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안동에서 오신 분도 있고, 일 때문에 좀 늦었지만 "파전이 그리워서 안 올 수 없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오후 6시 30분에 시작된 자리는 오후 11시, 자리에서 일어설 때까지 뜨거웠습니다. 파전·굴전·감자전 등, 식을 틈도 없이 이어서 나오는 각종 전들은 먹기에도 뜨거웠고, 작가들의 입에서 나오는 결혼에 관한 얘기들이 너무 적나라하고 파격적이여서 숨이 뜨겁기도 했습니다.

이혼숙려제도가 아니라 결혼숙려제도가 더 절실하다

"외국인과 동거해서 아이를 가진 지인이 있다. '글로벌 잡년'을 꿈꾸었는데, 나는 '말만 잡년'이었지. 그녀는 그것을 실천했다. 외국에 살고 있는 그녀는 다시 애기 아빠의 친구와 사귀고 있다더라."

"남편과 사별했다. 그 후 나는 열 남자와 연애를 해 볼 결심이었다. 그런데 먼저 다섯 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해버렸다. 아홉 번의 연애 기회를 잃어버린 게 억울하다."

"중국의 소수민족 모소족은 남편이나 아버지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모계사회다. 이곳의 여자들은 사귀는 남자가 싫어지면, 그 남자가 출입하던 창문을 닫아걸면 그만이다. 쿨하지 않나?"

"낡은 결혼은 버려버릴 수 없나? 서양에는 쉽게 버리는 곳도 있더라."

"서양에서는 낡은 것을 부패한 것으로, 우리는 발효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내버려야 할 것이 우리에게는 더 영양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서 결혼했다. 결혼하니 마침내 부모와 집안으로 부터 자유가 주어지더라. 한 남자에 의한 또 다른 구속이긴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는데 내가 결혼한 이유는 부모의 집을 나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유지하기는 점점 힘들어지는데, 이혼이 더욱 어렵게 제도가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온당한가?"

"우리의 현실은 '이혼숙려제도'가 아니라 성급한 결혼을 막기 위해 결혼신청을 얼마간 유예하는 '결혼숙려제도'가 더 절실하다."

"결혼숙려제도는 국력의 쇠퇴를 초래한다. 곤두박질치고 있는 출산율을 잡기 위한 국가의 노력을 무력화시켜서는 안 된다."

"복건복지부는 가라. 가족 친화적이지 못한 기업, 워킹맘의 비애를 알기는 하나?"

"우리 부부는 각방을 쓰고 있다. 물론 섹스도 없다."

"나는 현재 간섭 없이 부인이 아닌, 다른 성적 파트너를 구할 수 있다. 물론 내 부인에게도 그럴 권리가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

"내가 첫 번째 결혼을 지속했던 것은 금전적 이유가 컸다. 부부가 함께하는 하는 공동 작업이 꽤 인기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파기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손실이었다."

"내가 재혼한 큰 이유는 안전한 성적 파트너의 확보 때문이다. 혼자가 된 후 섹스파트너를 구하기는 쉽지 않더라. 일회용 파트너를 구하다보면 에이즈가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나?"

"자위행위에 관한 솔직한 내용이 편집자의 건의로 삭제됐다. 솔직한 게 좋지 않나? 솔직하지 않으면 나는 어떤 책도 읽지 않는다. 깔때기는 안 된다."

"몇 년 전 늦은 결혼을 한 부부의 결혼식 직후, '이 결혼은 1년만 유효하다. 매년 갱신해야 유효하다'고 덕담했다. 의도는 '늘 신혼처럼 살아라'는 뜻이었다."

"세 달 전에 결혼의 당사자를 만났다. 이미 2년 전에 그 결혼은 쫑났더라(끝났더라)."

"결혼 10년차가 되면 무조건 이혼해야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한다. 그 파트너와 결혼이 지속되기를 원하면 일단 이혼 후 연장 신청을 해야 한다."

"10년이 너무 길다고? 그러나 5년은 서로를 완전히 알기에는 다소 짧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출산하고 당당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결혼, 새로운 루트는 없을까?

결혼에 관한 얘기는 중단 없이 계속됐습니다. 결혼이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주제인 것은 각자에게 그만큼 절실한 현실임을 방증하는 것이겠지요.

두 분이 얘기 중에 받은 전화문자메시지를 공개했습니다.

"홍대 앞에서 젊은 사람들과 즐거우신가요. 꼭 들어오길 바라요. 내일 쓰레기도 비워야 하고…."

부부간 각방을 쓴다는 분이 부인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3 대입 입시생을 둔 어머니였습니다.

"나, 떨어졌어."
"한 번 정도 떨어지는 것은 괜찮아."
"한 번이 아니라 벌써 세번째라구."
"인생에서 시험은 별것 아니란다."
"내게는 별것이야."

아마 수시에 응모했던 결과에 대한 얘기 같았습니다.

"엄마가 저를 귀하게 키웠어요. 저에 대한 기대도 컸고. 제게는 그것이 오히려 큰 부담이었어요. 그래서 딸에게 관심을 덜 두는 방식으로 임했더니 딸은 좀 서운한 모양입니다."

전 남편에 대한 얘기를 대화에 올렸던 분이 전화 한 통을 받고 말했습니다.

"저를 데리러 온 남편이에요. 전 남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마세요."

돌이켜보니 4시간 반 동안의 결혼에 관한 대화 중, 지난 결혼의 회상, 현재 결혼의 단면, 페미니스트적 입장이 반영된 내용,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이상적인 대안 등이 주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화 중에도 그 도발적인 대화내용을 무력화시키는 현상, 즉 결혼의 현실을 보여주는 현상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은 어떤 경우에도 희화될 수 없는, 장엄한 현실임이 분명합니다. 결국 막걸리 잔을 앞에 둔 우리는 그 밤, 결혼이라는 수직의 빙벽을 좀 더 쉽고 즐겁게 오를 새로운 루트는 없을까에 대한 탐색을 했던 것입니다.

▲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 결혼을 배운 적이 없는 모든 당신들을 위하여 ⓒ 이안수


이홍용·박정은 공동대표께서 이 책의 탄생에 관한 순탄치 않은 노정에 대한 얘기를 후일담으로 들려줬습니다.

이 책을 처음 기획할 때는 결혼의 여러 측면을 안배해 필자들에게 원고를 청탁할 예정이었답니다. 즉 건강, 성격, 화목, 성관계 등 고려돼야 할 항목들을 미리 정한 다음, 그 주제를 기술해 줄 필자를 섭외할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계획은 이내 '내용을 전적으로 필자들에게 맡기기'로 수정됐습니다.

17명의 필자가 수록된 이 책을 위해 접촉했던 필자는 무려 50여 명. 그 만큼 많은 필자들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얘기입니다. '정답이 없는' 결혼에 관한 담론,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내용도 정답일 수 있는' 그 결혼에 대한 원고가 글쟁이들에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원고 청탁서'에 대한 거절 답 메일에는 편집팀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답변들이 담겨있었답니다.

"실은 별거중이에요. 이런 형편의 제가 어떻게 기대에 차서 결혼을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무엇을 얘기할 수 있겠어요?"
"아내가 막았습니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쓸 자격이 없다'고."
"결혼을 주제로 삼으려니 속이 시끄럽다."
"실패한 결혼이 아직 극복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연유로 지난봄의 결혼 시즌 전에 발행예정이었던 책은 가을을 넘긴 때에 손에 쥘 수 있게 됐습니다.

제작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답니다.

"23년간 책을 만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디자인에도 공을 들여 특별한 종이, 특별한 색감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인쇄에서 활자의 가독성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시 바탕에 흰색을 인쇄하는 것으로 디자인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잉크 간에 밀어냄 현상이 생겼어요. 그래서 한 색을 먼저 찍어 말린 다음다음 색을 찍어야하는 번거로움을 초래했지요. 제본에서도 인쇄된 한 대수가 다른 제본소를 실려 가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대표님의 고백을 듣자니 곡절 많은 부부의 결혼생활에 관한 얘기만큼이나 애절합니다.

"나는 이혼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임혜지)
"살다가 싸워서 이혼해도 아이는 국가가 책임지고 여자 혼자 당당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게 좋다."(안건모)
"결혼을 꿈꾸는 그대여, 자신이 참 수행의 길에 오를 각오가 되었는지 물어보라."(오진희)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일상의 반복. 감사하고 귀 기울이고 보듬고 가꾸는 날마다의 행위! 이걸 부러 해보겠다고 결혼하는 것이다."(김종휘)
"사랑은 완전해도 사람은 완전하지 않다. 그런 사람이 꾸려가는 생활 또한 그렇다."(곽병찬)

적지 않은 필자가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협박한다. '이래도 결혼할래?'라고. 하지만 어떤 이에게 그 협박은 성배聖杯를 찾아 길을 나서는 자의 당연한 시험일 수 있습니다. 아래의 말에 희망을 걸 수 있지 않겠는가.

"하기에 따라 결혼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고양시켜 줄 가장 강력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절감한다."(김종락)

저는 이 책을 통해 타인이 원하는 것을 갖는 우승보다 부부만의 행복한 동행을 권했습니다.
"결혼은 2인 3각의 경기다. 어느 한쪽의 희생이 남는 승리보다 행복한 완주를 택하라."(이안수)

덧붙이는 글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강수돌 외 | 샨티 | 2011.10 |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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