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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한 널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

14년 된 아이의 구명조끼를 보면서

등록|2011.11.14 18:46 수정|2011.11.14 18:46

▲ 14년된 아이의 구명조끼 ⓒ 박미경

"이제 그만 버릴까? 버리기는 좀 그런데... 그래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아냐, 그냥 가지고 있자. 다음에 버리지 뭐!"

딸아이가 16살이니 14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낡을대로 낡아서 여기저기 찢어지고 물도 스물스물 스며드는 것이 제구실을 못합니다. 하지만 차마 버리지는 못하겠더군요.

해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그리고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버릇처럼 손에 들고 "이제는 그만 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6월생인 딸아이가 이제 갓 두 돌이 지났을 무렵 여름,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연로하신 어머님과 함께 고흥 발포해수욕장으로 물놀이를 갔습니다. 그때 그 구명조끼가 없었다면 아마 저는 지금 딸아이를 보듬고 있지 못했을 겁니다.

당시 4만 원 정도 주고 구명조끼를 구입한 듯합니다. 아이를 위한 튜브를 사러갔다가 구명조끼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하나 구입했지요. 비싸기는 했지만 한 해 쓰고 버릴 물건은 아니니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다는 잔잔해 보였습니다. 사람도 몇 없었구요. 아이와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는 최고의 조건이다 싶었습니다. 아이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튜브에 앉힌 후 찰싹찰싹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파도타기를 즐겼습니다.

어머님이 연신 주변에서 파도가 무서우니 어여 나오라고 손짓을 하셨지만 그까짓 파도가 무어 그리 위험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더군요. 그 파도를 맞는 순간 바다 속으로 몸이 푹 잠기고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더군요. 하지만 튜브를 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몸을 일으키고 나니 튜브는 손에 있는데 튜브 위의 아이가 보이질 않는 겁니다. 아이가 파도에 쓸려간 것이죠.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시죠? 서해바다의 물이 그리 맑지만은 않다는 것.

아무리 주변을 둘러 봐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노란 물체가 얼핏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의 구명조끼였죠. 얼른 달려가 있는 힘껏 손을 뻗어 구명조끼를 잡았습니다.

아이는 놀라기는 했지만 무사했습니다. 아마 구명조끼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이를 바다에 내 주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문인지 10여 년이 지나 구명조끼가 제구실을 못하지만 차마 버리지를 못하겠더군요. 우리 아이의 귀한 생명을 구해 준 구명조끼를 내칠 수가 없더라구요.

이제는 낡을대로 낡고 작아져서 식구 중 누구도 사용할 수 없게 됐지만 노란 구명조끼는 집 한켠에서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 버리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디지탈화순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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