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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결혼한 스트립 댄서, 살인사건을 부르다

[리뷰] 고이즈미 기미코 <변호 측 증인>

등록|2011.11.16 13:42 수정|2011.11.16 13:42

<변호 측 증인>겉표지 ⓒ 검은숲

고이즈미 기미코가 쓴 <변호 측 증인>의 주인공 미미 로이에 의하면, 잘 쓴 살인 이야기 또는 범죄 이야기에는 묘하게 사람을 도취시키고 가슴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자신의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터지거나 자신이 범죄에 연관되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범죄 이야기를 읽거나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가상의 세계에서 아무리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현실 속의 자신은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쇠창살 너머로 맹수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맹수가 창살 너머에서 아무리 포악하게 날뛰더라도 절대로 나에게는 덤비지 못하기 때문이다.

범죄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활자나 스크린을 통해 살인과 폭력이 판을 치는 세상의 모습을 즐긴 후에, 자신은 안전한 침대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정말 편리하면서도 신이 나고 가슴 설레는 일 아닌가?

재벌의 아들과 결혼한 스트립 댄서

<변호 측 증인>에서도 이렇게 흥미로운 범죄가 펼쳐진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존속살인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호기심이 생긴다. 주인공 미미 로이는 '클럽 레노'에서 전속 스트립 댄서로 일하는 여성이다. 그러던 도중에 클럽에 찾아오는 한 단골남성 스기히코의 끈질긴 구애에 넘어가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문제는 스기히코의 집안이 엄청난 재벌이라는 점이다. 그의 아버지는 야시마 산업의 총수이고, 스기히코는 그 집안의 외아들이다.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이니 그의 행실은 어렸을 때부터 그다지 점잖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 면은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는 그에게 이름뿐인 직함을 줬고, 그는 거기서 받는 월급으로도 부족해 회사 공금을 몇 차례 빼돌린 적도 있었다. 집안의 골칫덩이였던 스기히코는 미미 로이와의 결혼 때문에 가족들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의 집안에서는 당연히 이 결혼에 반대하고 나섰지만 스기히코는 결혼을 강행하고, 그 후 아버지가 있는 본가에 들어와서 함께 살게 된다. 널찍한 정원이 딸린 커다란 저택에는 가정부만 세 명이다. 그 가정부들조차도 집안의 새 며느리에게 우호적이지 못하다. 가족들이 모인 식사자리 조차도 마냥 불편하기만 하다.

그래도 스기히코는 당당함 또는 뻔뻔함을 잃지 않는다. 마음잡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가족들도 우리의 관계를 인정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스기히코 부부가 저택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 갈등과 긴장은 결국 잔인한 살인사건으로 발전하고 만다.

서술 트릭이 만드는 의외의 반전

'대저택에서 벌어진 가족간의 살인사건'이라는 구도 외에도, 이 작품에는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작가가 작품의 전체에 걸쳐서 깔아놓은 일종의 '서술 트릭'이다.

서술 트릭이란 작가가 독자를 속이기 위해, 또는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서술 기법이다. '서술 트릭이 존재한다'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까지 이 트릭의 진상을 알아내기 힘들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서야 작품 곳곳에 깔려있던 복선의 정체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변호 측 증인>이 발표된 것이 1963년이니, 당시 작가는 무척이나 신선한 시도를 한 셈이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는 '트릭의 단서가 어디에 있나'하고 추측과 추리를 하는 것도 나름 괜찮을 것이다.

반면에 주인공 미미 로이의 말처럼 그냥 작가가 펼쳐놓는 범죄의 풍경에 도취되서 읽어나가는 것도 좋다. 작가가 독자를 속이려고 한다면, 그냥 속아주는 것도 범죄소설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덧붙이는 글 <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10 | 1만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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