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크레인 위 김진숙을 살린 건 빵과 본드?

[2011 지역투어-부산경남⑧] 85호 크레인에 얽힌 3가지 비하인드 스토리

등록|2011.11.23 19:30 수정|2011.11.23 19:30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여섯 번째, 이번엔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 11월1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과정에서 난간에 팔을 걸고 환한 미소를 짓고있다. ⓒ 박철순(solaris)


지난 10일 오후 3시 20분,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역사가 일어났다. 올라가면 '죽음'이라고 불렸던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85호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노사합의와 조합원 만장일치 가결로 두발로 씩씩하게 걸어 내려왔기 때문이다.

현장은 시끄러웠다. 그리고 삼삼오오 서로 부둥켜안고 운 사람도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한진중공업 사태가 '트위터'라는 소셜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희망버스라는 하나의 '투쟁의 아이콘'이 생겼다. 이로인해 이 사건의 본질을 몰랐던 사람들도 관심을 갖게 됐고, 자비를 들여 85호 크레인까지 찾아가 김 지도위원과 사수대에게 손을 흔든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나 역시도 트위터를 통해 한진중공업을 알게되었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했다. 그래서일까. 그날 현장에서 김 지도위원과 사수대가 내려오는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철순아, 이 투쟁이 끝나면 지금 못했던 이야기들 책으로 내든지 글이라도 써볼까?"
"그래볼까요? 입이 근질근질해서 죽겠습니다.(웃음)"

그 당시에는 우스갯소리였지만 김 지도위원과 사수대들이 무사히 내려왔으니 이제껏 공개하지 못하였던 여러가지 비하인드 스토리 중 세 가지만 소개할까 한다.

[에피소드①]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

▲ 병원에 입원한 김진숙 지도위원을 찾아간 '날라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 박철순(solaris),날라리외부세력


김진숙 지도위원이 두발로 씩씩하게 걸어 내려오고 정문 앞에 와서 기자회견을 할때 그 누구보다 애정을 가지고 챙기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배우 김여진씨다. 그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온다는 소식에 임신 5개월임에도 불구하고 천리길을 마다않고 부산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처음 한진을 방문했던 1차 희망버스 이후, 5개월 만에 김진숙 위원을 만났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은 트위터를 통해 만들어진 일종의 모임이다. 김여진씨가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팬클럽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이들은 홍대에서 벌어진 두리반 투쟁에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부산에서 가입한 몇몇 회원들로 인해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 알게 됐고, 동참하게 되었다.

이들은 김 지도위원과 트위터로 소통하면서 한진중공업의 투쟁을 세상에 알렸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한몫 했다. 이들의 활동은 트위터 상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은 티셔츠를 제작하고, 판매해 얻은 수익금을 한진중 조합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 85호 크레인 앞에서 조합원들과 같이 노숙을 하며 밤을 지새기도 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동아대학교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맨 처음 찾아갔던 사람들도 바로 김여진씨와 날라리들이었다.

1차 희망버스때였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에 내려간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담벼락을 통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공장으로 진입하였다. 물론 그 자리에는 날라리들이 어김없이 함께 했다. 무대 앞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구호와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한쪽에서는 한진중공업 조합원들과 막걸리를 한 잔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지극히 평범하게 지나갈 것 같았던 1차 희망버스. 점점 피곤에 지쳐 잠이 드는 사람도 생기고 조용해져만 갔다. 하늘에 해가 뜨려는 움직임이 보일 때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친다.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

그렇게 현재 이벤트 MC로 활약하고 있는 배은한씨의 사회로 날라리들이 중심이 되어 신명나게 한판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주제도 없었고, 노래가 나오면 나와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하기를 1시간. 문득 크레인 위를 바라보니 김 지도위원도 크레인 위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김진숙 지도위원의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이라는 어록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 날라리들의 신명난 한판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에피소드②] 김진숙에게 핸드폰 배터리를 전달하라

6월 27일은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조합원들에게는 치욕의 날, 분노의 날로 기록되었다. 바로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용역들을 동원하여 85호 크레인에 올라가있던 조합원들을 한 명씩 끌어내렸다. 상황이 종료되고 파악해보니 김 지도위원을 포함해 크레인에 남은 인원은 대략 30여명이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85호 크레인에 식사는 올릴 수 있도록 했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이 트위터를 통해 소통하는 걸 두려워했던 탓인지 전기를 끊어버리는 초강수를 뒀다. 물론 핸드폰 충전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핸드폰을 충전할 수 없었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며칠동안이나 트위터에 접속할 수 없었다. 어떻게보면 전기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도 한진중공업 사태를 응원하는 트위터리안들은 이 상황을 알고있었던지라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갑자기 서울에 있던 나에게 한진중공업의 한 조합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서울에서 핸드폰 보조배터리 하나 용량 큰 걸로 사갖고 온나."
"네? 이 밤중에... 아무튼 날 밝으면 섭외해서 가지고 내려가겠습니다."

대용량 배터리를 구매해가지고 부산으로 내려가보니 크레인에 올려보낼 일이 막막했다. 내가 며칠동안 집에서 쉬면서 할일을 하던 동안, 크레인 앞에는 금속탐지기가 설치되었고, 크레인에 올리는 모든 물건에 대해서도 샅샅이 검색을 하고 있었다.

막막했다. 자칫 비싼돈을 들여 구매해온 게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래서 그 어느때보다도 잔머리를 굴렸다. 크레인 앞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노숙하며 밤을 지새우는데 부산에 사는 시민이라고 밝힌 한 트위터리안이 태양열로 충전이 가능한 보조배터리까지 주고 간 상태였다.

머리가 복잡해질 찰나,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 간식을 올린다는 명목 하에 음식물을 여러개 올리고 그 속에 배터리를 넣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근처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구매해 그 속을 칼로 도려낸 뒤 배터리를 넣고 본드를 이용하여 붙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에 멘션(글)이 올라왔다.

"여러분 저 살아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올리는 과정에서 핸드폰 배터리가 남아있던 사수대 한명에게 본드를 붙인 빵은 절대 드시지 말라고 전화로 신신당부 했다. 그럼에도 사수대 중 한 명이 그 빵을 먹었고, 그 분은 배탈이 나서 구토와 설사까지 엄청 했다고 한다.

김 지도위원에게 전달된 태양열 충전 배터리는 해가 떠야 충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가 뜨지 않는 날씨에는 핸드폰을 충전하기 힘들었다.

[에피소드③] 연예인들의 잇따른 관심과 방문

▲ 85호크레인을 방문한 소설가 공지영씨가 김진숙 지도위원과 통화를하면서 크레인을 바라보고 있다. ⓒ 박철순(solaris)

한진중공업 사태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연예인들의 관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거의 상시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들의 움직임 덕분에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지난 10월 '부산 국제영화제' 기간에는 영화제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영화인 희망버스'를 조직하기도 했다. 물론 희망버스를 이끌고 85호 크레인으로 가다가 영도로 진입하는 부산대교 앞에서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지만.

앞서 밝혔던 김여진씨도 있지만, 배우 김꽃비씨, 영화감독 여균동씨, 소설가 공지영씨, 프로레슬러 김남훈씨, 영화감독 임순례씨 등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거나 개별적으로 85호 크레인을 방문했다. 이들의 방문은 35m 높이에서 외롭게 고공농성을 하고있는 김 지도위원을 미소짓게 했다. 또 이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미디어를 통하여 이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렸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최근 노사가 합의를 하면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왔지만, 아직 모든 게 다 끝난 것은 아니다. '1년 뒤 복직'이라는 항목이 있기 때문에, 한진중공업에 어떤 결말이 다가올지는 1년 뒤에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1년 뒤에 복직이 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서 다시 투쟁을 할지도 모른다.

한진중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누군가에게 나눠주기 위하여 다른 투쟁현장과 연대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한진으로 가는 희망버스는 여기서 끝나지만 제2의 희망버스는 쌍용차로, 유성기업, 강정마을 등 투쟁의 현장으로 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한진중공업 투쟁에 미처 공개하지 못하였던 비하인드스토리를 공개합니다. 기자는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해쉬태그 - #NalYJ)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