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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잘나가는 비렁길

전남 여수시 금오도에 있는 비렁길을 찾아

등록|2011.11.17 09:33 수정|2011.11.17 09:33

▲ 여수 금오도 해안 서남쪽이 높은 절벽을 이루는데, 함구미에서 해안선을 따라 직포까지 약 9㎞의 비렁길을 정비하였다. ⓒ 서종규


▲ 비렁길은 후박나무, 동백나무, 산죽 등 활엽수에 뒤덮여 아늑한 녹음의 통로를 형성한다. ⓒ 서종규


맑은 가을 하늘처럼 바다도 옥빛이다.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다는 보통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쪽빛이 아닌 옥빛이 넘쳐 나고 있다. 제주도 협재해수욕장 바다나 우도의 바다처럼 눈에 가득 옥빛이 출렁인 것이다. 쏟아지는 강렬한 햇살은 옥빛 수면에 그대로 튀어 환상의 세계를 연출한다.

비렁길은 후박나무, 동백나무, 산죽 등 활엽수에 뒤덮여 아늑한 녹음의 통로를 형성한다. 해안은 온통 층층 절벽으로 이루어진 길이 계속되고 있는데, 절벽 아래 옥빛 바다에 하얀 물결 테를 내며 어선들이 지나간다. 지나간 자국은 금방 없어지지만 바다는 한 폭의 그림이다. 요즈음 잘나가는 전남 여수시 금오도 비렁길의 풍광이다. 미역바위 아래쪽에 위치한 절벽에서 영화 혈의 누를 찍었고, 김복남 살인사건, 인어공주 등도 이곳에서 촬영하였단다.

11월 12일(토) 오전 6시 풀꽃산행팀 42명이 버스를 타고 광주에서 출발하였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순천 나들목으로 나가서 여수를 항하였다. 8시 30분 여수시내에 도착하여 다시 돌산대교를 지나 9시에 여수 돌산도 신기항에 도착하였다. 신기항에는 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이 뒤엉켜 있었다. 모두 금오도 비렁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항으로 가는 배는 30분 간격으로 계속되었다.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선착장까지는 30여분 걸리고 선비가 5000원이었다. 여수여객터미널에서 함구미선착장으로 곧바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하는데, 탐방객들은 주로 신기항을 찾는다. 여수여객터미널에서 함구미까지 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선비가 더 비싸기 때문이다.

전남 여수시 남면에 위치한 금오도는 섬의 모양이 자라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최고봉은 서쪽에 솟아 있는 대부산(382m)이며 그밖에도 200m 내외의 산이 섬 가운데를 죽 잇고 있고, 해안 서남쪽이 높은 절벽을 이룬다. 금오도 면적은 27㎢이고, 해안선 길이는 64.5km이며, 인구는 2천여명 정도라고 한다.

금오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이며, 조선시대에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임금의 관을 짜거나 판옥선 등의 전선(戰船)을 만들 재료인 소나무(황장목)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黃腸封山)이었고, 1885년(고종 22년)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금오도 끝인 소우실포를 지나면 안도대교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지나면 안도라는 조그마한 섬이 나온다. 이곳엔 어촌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여러 집 있고, 한 시간여 섬을 일주할 수 있는 길도 조성되었다고 하고, 민족의 비극인 여순사건의 죽음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 금오도 칼이봉에 오르자 다도해로 어우러진 남해안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 서종규


▲ 비렁길 벼랑 바위에 파도들이 하얗게 웃으며 다가가고 있다. ⓒ 서종규


돌산도 신기항에서 배를 탄 사람들은 금오도 여천선착장에 내려 비렁길이 시작되는 함구미선착장까지 가는 길이 좀 불편하다. 배가 도착하는 시간에 운행하는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25인승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다 탈수가 없다. 대부분 사람들이 오전 9시 전후하여 몰려 들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산길을 택하여 함구미까지 가기로 하였다. 여천선착장에서 등산로를 따라 곧바로 올라 칼이봉에 도착하였다. 칼이봉에 오르자 다도해로 어우러진 남해안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돌산도에서 옆의 섬을 잇는 다리가 건설 중에 있었으며, 옥빛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섬들이 한가롭다.

칼이봉에서 문바위를 지나 금오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대부산(382m)에 도착하였다. 대부산에는 등산객들을 위한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섬 산행을 할 때마다 늘 느끼듯이 커다란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나가는 느낌이다.

오전 11시 30분, 대부산에서 내려가 함구미 선착장 입구에 도착하였다. 2010년 10월 여수시가 6억 원(국비 3억 원, 시비 3억 원)의 예산을 들여 금오도 함구미에서 해안선을 따라 직포까지 약 9㎞의 비렁길을 정비하였다. 남해안 섬에서 찾아보기 힘든 해안단구의 벼랑을 따라 조성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벼랑길' 즉 여수 지역의 사투리인 '비렁길'로 부른다고 한다.

▲ 두포선착장 길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할머니 ⓒ 서종규


▲ 비렁길에 가끔 한 채의 집이 우거진 상록수 숲에 깊이 잠들고 있는 모습들도 보인다. ⓒ 서종규


그런데 비렁길은 조성하기 전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었다. 전국적으로 새로 생긴 둘레길이니 옛길이니 올레길이니 하는 많은 길들을 가보면 새로 만든 길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비렁길은 섬사람들이 원래 다니던 길을 정비한 것이었다. 덕분에 비렁길은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함구미부터 바다를 보며 가다가 용머리에 도착했다. 깍아 지른 절벽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참 잔잔했다. 낮 12시 30분, 용머리를 떠나 바다에서 수직으로 솟은 벼랑 끝인 신선대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신선대 바위에서 바다를 보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햇살이 따가웠지만 벼랑 끝에서 바다를 보며 우리들도 점심을 먹었다. 밥맛보다 벼랑 끝에서 바다에 취한 맛이 혀끝에 더 상큼하였다.

선선대를 떠나 오후 2시 두포선착장에 도착했다. 길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할머니와 주민들이 정겹다. 비렁길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두포선착장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비렁길을 찾은 사람들이 함구미에서 두포선착장까지 4km 정도만 걷고 차를 타고 배타는 선착장까지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 굴등전망대 정면에서 튀어오는 햇살의 눈부심이 망망대해의 적막함을 가져다주었다. ⓒ 서종규


두포선착장에서 다시 벼랑을 타고 굴등전망대를 향하였다. 가는 길에 가끔 한 채의 집이 우거진 상록수 숲에 깊이 잠들고 있는 모습들도 보이고, 조그맣게 조성된 밭에 푸른 약초가 싱싱하게 자란 모습도 보인다. 굴등전망대는 나무 계단을 놓아 길에서 약 30m 정도 내려가 있었다.

굴등전망대에서 바라본 절벽들엔 하얀 파도가 찾아가 놀고 있었고, 정면으로 튀어오는 햇살의 눈부심이 망망대해의 적막함을 가져다주었다. 전망대 옆에 몇 채의 집들이 보였는데, 역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고, 자연 그대로 고요함 속에 졸고 있는 것 같았다.

굴등전망대를 돌아 조금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촛대 모양의 바위가 눈앞에 우뚝 서 있다. 바다 쪽이 아니라 산 쪽으로 불을 밝히는 촛대 모양 그대로 미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촛대바위 앞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서는 비렁길 종착지인 직포선착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촛대바위 전망대부터 내리막길이다. 직포선착장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선착장 앞 만에 형성된 모래 해수욕장엔 아이들이 파도를 따라 장난치고 있다. 그 옆엔 검은 몽돌들로 해안이 죽 이어져 있다. 몽동들 사이에 찾아든 파도들이 하얗게 웃으며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 촛대바위, 불을 밝히는 촛대 모양 그대로 미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 서종규


▲ 마지막 코스인 직포선착장 가는 길 ⓒ 서종규


직포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는 여천선착장으로 가기 위하여 우왕좌왕하고 있다. 섬에는 25인승 버스 1대가 운행 중인데, 많은 사람들이 오후 3시 경에 몰려드니 도무지 대책이 없다. 모두 버스를 타려고 아우성이다.

발만 동동 구르다가 어떻게 어떻게 하여 우리 풀산팀 42명은 겨우 여천 선착장으로 갔다. 오후 5시 30분 배가 마지막 배라고 하였다. 우리들은 5시 배를 타고 신기항까지 나갔다. 신기항에 도착하니 휴 하는 안도의 한 숨이 나왔다. 다도해 너머로 넘어가는 태양이 너무 아름다웠다.

비렁길은 함구미에서 직포선착장까지 약 9km 정도로 여유 있는 걸음으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관광으뜸명소'로 선정되기도 한 이 길은 여수시가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직포에서 장지까지 10㎞의 비렁길을 추가 조성할 계획이란다.

▲ 신기항에 도착하니 다도해 너머로 넘어가는 태양이 너무 아름다웠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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