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줄 때문에 쫄지 말고 닥치고 읽으라니까
[서평]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읽고
▲ 김어준의 책 <닥치고 정치> ⓒ 푸른숲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정치라고 한다.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양식을 족하게 하고, 병력을 족하게 하고, 백성이 신뢰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정치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정치는 공자가 말한 그러한 모습인가?
지난 11월 10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땅으로 내려왔다. 309일만이다. 고공의 바닷가 크레인 위에서 겨울,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는 긴 시간이다. 여자 혼자서 1년 가까운 시간을 35미터 상공에 매달려 지낼 수밖에 없도록 내몬 이 나라 정치행태는 우울하기 짝이 없다.
꽃다운 젊은 청춘들이 등록금 때문에 자살을 한다. 밥도 제때 못 먹고 잠도 못자며 밤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도 등록금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럼에도 권력의 최고 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꾸 자기가 해 봐서 아는데 노력이 부족하고 무능해서라고 한다. 이게 정말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무능 때문일까? 세상이 정말 이래도 되나?
'상위 20%가 전체 소득의 80%를 차지한다'는 '20대 80법칙'은 이제 '10대 90'으로 부의 편중이 더욱 공고히 고착화되고 있다. 그래서 생각한다.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다, 다함께 잘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어쭙잖은 좌빨'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도대체 좌파는 뭐고 우파는 뭘까? 그저 함께 잘 살자는 건데 왜 무슨 말만 하면 좌, 우를 들이댈까? 궁금하다면 읽어야 한다. 닥치고 읽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을 빨리 바꾸어야 한다.
변화의 씨앗
작년에 타계한 미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하고, 비폭력적이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젊은 학생들에게 그러한 생각을 쏟아내면 그게 씨를 맺어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확인했다고 하였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나 <나는 꼼수다>는 우리나라 정치변화의 씨앗이다. 우리는 하워드 진의 경험적 변화를 이미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하였다. 김어준은 정곡을 찌르는 통찰력과 번뜩이는 혜안으로 사람들 속에 억눌려있던 변화에 대한 열망과 가능성을 끄집어냈다.
<닥치고 정치>는 잘 몰랐거나 실체가 잡히지 않는 어렵고도 애매모호한 정치·경제적 사안들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함으로써 이 나라 권력층의 본질과 그들의 부조리를 사람들이 깨달아 분노하게 한다. 93세의 노인인 스테판 에셀이 젊은이들을 향해 외치는 '분노하라'는 일갈과 대면하는 지점이다.
분노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책임이고,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라고 스테판 에셀은 말한다. 도곡동 땅과 다스, BBK, 옵셔널벤처스가 어떻게 서로 얽혀있으며 그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재용과 에버랜드가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사기를 쳤는지, 정부와 언론이 그에 대해 어떻게 맞장구를 쳤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부도덕에 분노하고 적극적인 참여로 그 분노를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국민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혁명의 시작
뉴스의 진짜 힘은 뭔가를 다루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다뤄야 마땅한 뉴스를 다루지 않는 데 있는 거거든. 다루지 않으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그런 게 진짜 권력이지. (<닥치고 정치> 본문 301쪽)
조중동을 비롯한 기존 메이저급 언론들이 자신들의 이해와 정치논리에 매몰되어 언론으로서의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러한 기존의 구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구조에 맞부딪쳐 그것을 깨거나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버려야 한다. 김어준은 후자의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거대 담론에 매몰되지 말 것을, 물리적인 구조만 구조가 아님을 설파한다.
인터넷과 SNS와 스마트폰 결합의 본질을 간파한 <나는 꼼수다>가 어떻게 혁명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로운 메시지 유통 구조를 확보하여 진보의 프레임을 확장하고 싶다는 김어준은 <닥치고 정치>에서 "탱크로 밀어야만 혁명이 아니야. 기득의 구조가 뒤집힐 수 있으면 다 혁명이야"라고 말한다.
11월 16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계 최초로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온라인 1인 취임식을 가졌다. 그리고 박 시장은 "1%가 99%를 지배하는 승자가 독식해 다수가 불행해지는 현상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사회가 아니다"라며 "시민 여러분께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가실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취임사에서 약속했다.
바로 이런 것이 혁명이 아닐까? 기존의 틀을 깨고 변화와 소통을 모색하는 박 시장의 모습에서 문득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시민 필독서로 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희망사항이지만. 그래서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깨워 변화의 큰 흐름에 동참시키고 싶다.
"밥줄 때문에 입을 다물면 스스로 자괴감 들어. 우울해져. 자존이 낮아져. 위축돼. 외면하고 싶어.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건, 위로야. 쫄지 마! 떠들어도 돼, 씨바." (<닥치고 정치> 본문 306쪽)
자신은 우파도 좌파도 아닌 그저 본능주의자라고 밝힌 김어준의 얘기를 들으며, 밥줄 때문에 쫄지 말고 당당하게 할 말 하는 시대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찬 기대를 한다. 김어준의 말대로 시국이 아주 엄중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닥치고 이 책을 한 번쯤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 닥치고 읽으라니까...
덧붙이는 글
<닥치고 정치>,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푸른 숲 펴냄, 2011. 10.10,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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