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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 진중권이 '축에도 못 끼는' 작가?

'불온도서' 목록에서 또 누락... 국방부에 찍혔나

등록|2011.11.18 16:26 수정|2011.11.19 15:06
회사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친구가 하소연을 한다. 엄청 명망 있다는 출판대상 공모가 내일까지인데 마감 전날 오후 4시에 어떤 기자가 전화해서 마감을 알려줬다며 그 '애매한' 친절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한다. 출판대상에 공모하기 위해 그 친구는 그날 늦게까지 야근을 했을 거다.

출판대상에 선정만 된다면 수당 안 나오는 야근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게 출판 관련 일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된 생각일 거다. 출판대상이 아니라도, 어디 상을 받거나, 선정도서가 된다면, 쉽게 말해 책 표지에 떡하니 금박 표딱지 하나만 붙일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나.

출판사 직원들이 이렇듯 공모전이나 우수도서 선정에 목맨다는 건, 꼭 책을 많이 팔아먹겠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다.  몇날 며칠을 고생고생해서 제목 짓고, 단어 하나를 붙잡고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몇 시간을 고민고민해서 문장 다듬고, 인쇄되어 나오는 날까지 무슨 사고가 나지는 않을지, 중요한 문장에서 오타를 못 본 건 아닌지 마음 졸이며 만든 책이 나오자마자 무관심 속에서 사장되어버리는 걸 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더 크다.

하루에도 수백 권씩 쏟아져나오는 책들을 보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 거다. 토요일마다 일간지 책 소개에 아주 작게라도 우리 책이 소개되면 마치 베스트셀러 자리라도 예약한 듯 기쁘고, 어떤 파워블로거가 우리 책을 언급해주면 남들이 안 알아주던 품 안의 자식이 대기만성 한 듯. 세상에서 인정받은 양 기쁠진대,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서 우리 책 가치를 알아주고 널리 홍보해준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이 있겠나.

2008년에 이어 19종이 추가된 '국방부 불온도서'

▲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2008년 국방부 불온서적 선정 보도 직후 '2008 국방부 지정 불온서적 23권 공개' 코너를 따로 마련했다. ⓒ 인터넷 서점 알라딘


그러던 차에, 해마다 국가예산을 30조 원가량 쓰는 거대 국가기관에서 나름 도서목록을 선정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이름하여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 지난 8월 공군 한 전투비행단에서 '장병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절한 서적반입 차단대책'이라는 제목으로 발송된 공문에 '불온서적 리스트'가 딸려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2008년에 선정된 책 23종에, 올해 추가된 책 19종을 더해 모두 42종의 책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관련기사 : <군 '불온서적 리스트'... 19권 더 늘었다>).

사실 2008년 국방부가 불온도서 목록을 발표했을 때 이 목록이 계속 업데이트 되지 않고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거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 당시 작가들 사이에선 "축에도 못 끼는 놈"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어느 술자리에서 들었다. 풀어 말하자면, 우리 사회 잘못된 면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는데, 국방부에서 불온도서 목록을 발표하면서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작가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예를 들자면, 우리 시대 대표적인 논객인 진중권, 국가주의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 박노자 같은 작가들이 '축에도 못 끼는 작가'가 되어 버린 거다. 당사자들로선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을 거다. 헌데 이 두 분은 이번에도 축에도 못 꼈다. 국방부에 뭔가 심하게 찍혀 있나 보다.

▲ 지난 7월 28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에서 진중권씨가 강의를 하고 있다. ⓒ 최인성


이번에 추가된 목록을 보니 관심을 끄는 책이 좀 있다. <낯선 식민지 한미 FTA>(메이데이)가 포함된 것을 보니 국방부의 발 빠른 현실인식을 칭찬하고 싶다.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 한미 FTA에 대해서 국민들이 혹시나 관심 없을까 봐 다시 한번 환기시켜주는 센스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조선일보사에서 나온 <사랑이 뭐길래 정치가 뭐길래>는 대체 어떤 책이기에 조선일보사에서 나왔음에도 불온도서 목록에 올랐는지 궁금하고, <6·25전쟁과 북한의 만행>은 제목만 봤을 때는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 같은데 왜 불온도서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책을 안 읽어봤으니 알 도리가 없지만, 읽어봤더라도 알 도리는 없을 거 같다. <달려라 냇물아>(녹색평론사)는 4대강마저 흐르지 못하는 세상에서 냇물보고 달리라고 했으니 불온도서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얼마나 더 '불온'해야 국방부 눈에 들 수 있을까

▲ <나는 공산주의자다>(허영철 씀, 보리 펴냄, 2010년) ⓒ 보리

사실 출판계 종사자가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 선정에 대해 기준을 문제 삼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다 국방부가 더 이상 불온도서 목록을 발표하지 않는다면 출판계만 손해 보기 떄문이다. 그래서 나는 국방부의 불온도서 목록 선정 기준이 다소 납득이 안 가더라도 이걸 문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도 조금 서운하고 아쉬운 건 말하고 싶다. 내가 제작에 참여한 책 가운데 불온도서에 충분히 들 수 있는 책이 여러 권 있는데 모두 누락된 거 같아서, 나도 '축에도 못 끼는' 편집자가 될까봐 여기 적으니, 국방부 관계자는 3차 목록을 선정할 때 꼭 참고해주길 바란다. <내가 살던 용산>(보리),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보리) 같은 책들도 불온도서에 오를 자격이 충분히 있지만 아쉽게 탈락한 책이 한두 권이 아닐 테니 그냥 넘어가고 딱 한 권만 이야기 하겠다.

바로 <나는 공산주의자다>(보리)라는 만화책이다. 이 책은 2008년 국방부 불온도서에 오른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수기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보리)를 만화로 다시 그린 책이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같은 내용인데 만화로 표현한 것만 목록에 오르지 못한다면 좀 일관성이 없지 않나 싶다.

우리 회사 책만 홍보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에 선정됐으면 하는 책 몇 권을 더 소개하겠다. 병역거부자들이 쓴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철수와영희)과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그린비)는 반드시 불온도서가 되어야 한다. 군대 안 가겠다는 병역거부자들 이야기인데, 다른 곳도 아닌 국방부가 이 책들을 놓친 건 좀 큰 실수가 아닌가 싶다.

노벨상 수상작이 훌륭한 작품인 건 사실이겠지만, 노벨상을 받지 않은 작품 가운데도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한 작품이 수두룩벅적하다. 국방부 불온도서도 마찬가지일 테니, 눈 밝은 독자들은 국방부 목록에 오른 책들만 관심 가질 게 아니라 목록에 오르지 못했지만 깨알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을 찾아서 보시라. 독서문화 확산보다 내 밥벌이를 더 걱정하는 출판 노동자의 간곡한 부탁이다.
덧붙이는 글 이용석 기자는 보리 출판사 편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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