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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한글 오마주, <뿌리깊은나무>가 고맙다

[TV리뷰] 고교 선택 과목인 한국사 빈자리, 위대한 드라마가 메꿨다

등록|2011.11.19 10:24 수정|2011.11.19 10:24

▲ SBS <뿌리깊은나무>의 한 장면 ⓒ SBS




17일, 방영된 수목드라마 <뿌리깊은나무>(SBS)에서 칼을 겨눈 강채윤(장혁분)과 이에 맞선 세종 이도(한석규분)의 대화 장면은 정말, 압권이라 할 만했다.

배울 이유가 또 뭐가 있습니까요?
글자가 양반을 만들어 줍니까?
(중략) 백성은 글자를 안다는 이유로도 죽을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입니다.                                 (강채윤의 대사)

글자를 알아야 백성도 힘이 생긴다. (중략)
싸우자, 싸워보자 강채윤. 내 글자가 반포되는 날 내 친히 너에게 어사주를 내줄 것이다. 더 싸워보자...                                                           (세종 이도의 대사)

'한글 창제'의 의의와 공허함 사이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왕과 백성(강채윤)의 모습에선 치열함마저 느껴졌다.

신분을 초월한 두 사람의 열띤 논쟁은 승부가 나지 않았다. 백성(강채윤)는 한글이 사람을 죽인다 하고, 왕(세종)은 한글이 사람을 살린다고 했다. 강채윤은, 가장 높은 신분인 세종의 진의를 믿지 못했다. 한글을 만든 세종은 한글을 읽어야 하는 백성(강채윤)를 설득하지 못했다.

서로의 차이만큼,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치열했던 대화는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울림을 줬다. 우리에게 한글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는 하루가 됐기 때문이다

<뿌리깊은나무>는 이순간, 단지 드라마가 아니었다. 잔뜩 공을 들인, 대사는 시청자의 가슴속에서 '교훈'을 얻게 했다. 어떤 다큐멘터리 보다도, 어떤 역사 교육보다도 더 많이 생각을 하게 만든, 가치가 있었다.

찬란한 '한글 오마주', <뿌리깊은나무> 고맙다

▲ SBS <뿌리깊은 나무> ⓒ SBS



<뿌리깊은나무>를 보는 시청자들이라면 극 중 암어로 나온 '밀본'이란 한글 단어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밀본 집단이 입수한 '글'이라는 활자 하나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이상한 증상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는 <뿌리깊은나무>가 우리 역사의 가장 무모하면서도, 위대한 도전이었던 '한글창제'의 역사를 헤집기 때문이다.

'한글에 대한 자부심'은 극을 관통한다.  물론 더러는 허구와, 더러는 추리가 섞인 퓨전 사극이라는 한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의 전반을 흐르는 의미는 명확하다. 우리글에 대한 '찬란한 오마주' 인 것이다.

"저는 새 글자가 나오며 꼭 배우고 싶어요.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이름을 쓸려고요." 
        (17일 방송분, 한 소녀의 대사)

소위 쪽대본과 막장, 신파가 넘치는 요즘 TV 아닌가. 그런데, 그 속에서 '역사의 교훈'을 얻는 드라마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운 일이다. 공교육(고등)에서 조차 국사를 천대했던 현실이기에 더욱 값져 보인다.

한국사는 그간 우리 교육의 근간이었지만, 2010년 한국사는 고교 필수 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전락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의 영향이었다. 자율성이라는 미명아래, '제 나라의 국사 교육'를 선택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2010, 2011년. 그 한국사의 공백을 우리 청소년들이 건너고 있다. 2년 간의 '고교 한국사 필수 과목 부재'가 가져다 줄 파장이 어떨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심도있는 역사관이 형성되어야 시기에, '배우지 못한 역사 교육'를 메꿀 무언가가 공교육엔 전무해 보인다.

이런 암흑같은 시기, '우리역사' 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드라마의 존재는 '가뭄 속 단비'와 같았다. 얼마전, 종영된 <공주의남자>, 그리고 최근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뿌리깊은나무>가 이런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뿌리깊은나무>, 우리 역사의 자긍심 심어줘

▲ 뿌리깊은 나무의 똘복이(강채윤) ⓒ SBS



청소년들은 <공주의 남자>(10월6일 조영,KBS2)를 통해 '계유정난'을 배웠고, 방영중인 <뿌리깊은나무>를 통해 '한글창제'의 치열함을 배우고 있다.

국사 교육의 공백을 드라마가 채우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드라마라고 무턱대고 폄훼할 일은 아니다.

이들 드라마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 그대로는 아니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들으 등장은 큰 배움이 된다. <뿌리깊은나무>의 세종, 성삼문, 박팽년, 최만리, 정도전 등등. 또 <공주의남자>의 김종서, 수양대군, 안평대군, 정종 등등, 역사 적 인물들의 대략적이 삶이 어떠했다고 아는 것만으도 좋은 역사 공부기 때문이다.

비록, 드라마일지언정, 공교육이 놓았던 한국사에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은 대견하기 그지없다. 물론, 더러 어린 시청자들 중에는 세종대왕이 한석규인 줄 알고, 강채윤이 실존 인물인 줄 아는 후유증(?) 도 있긴 하지만,

현재 방영중인 <뿌리깊은나무>는 세종의 시대, 종영된 <공주의남자>는 세종의 아들 세조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주의남자>가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의 비극을 줄거리로 했다면, <뿌리깊은나무>는 '한글창제'라는 우리 역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중 하나를 다루고 있다.

이들 드라마는 우리가  외면했던 '우리 역사의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뻔한 상식으로, 암기로 외우고 있는 역사 지식이 아닌, 극을 통해 '역사적 사건'의 치열함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뿌리깊은나무>가 반가운 이유는, '한글'이라는 우리 고유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간, 우수한 우리 언어임에도 영어등의 외래어로 몸살을 앓았던 한글, 하지만 극 속, 한글은 어느 문자보다 위대해 보인다. 만드는 이들의 치열함과, 글자 속 숨은 과학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세종의 땀방울에서, 소이의 신념에서, 그리고 점차 한글의 당위성을 판단할 판관이 될 강채윤의 모습에서 한글에 담긴, 우리 조상들의 땀과 노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대사 하나하나, 내용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뿌리깊은 나무>, 그 사실 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맙다.

다행한 소식 하나, 내년(2012년)부터, 한국사가 고교 필수과목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2년간의 '뻘짓'을 막아준, 위대한 드라마에게 박수를 보낸다. 제작진의 치열한 의식이, 시청자들을 '역사'에서 멀어지지 않게 한 것만큼은 분명하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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