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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가 공연시작 5분 만에 쓰러진 이유

[현장]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토크쇼 - 우리 이야기해보지

등록|2011.11.22 11:11 수정|2011.11.22 15:12
"<버자이너 모놀로그>, 이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이 작품의 한글제목이 뭐죠?"

"보지의 독백."

관객들의 거침없는 답변에 '천하의 김여진'이 당황했다. 배우 김여진씨는 "깜짝 놀랐다, 저는 아직도 그 말을 시원하게 못 뱉는다, 이런 용감한 관객들 같으니라고"라며 쑥스러워했다. 김씨는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한글 제목을 못 쓴다는 게 변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저 역시 아직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밖에 나가서 거리낌 없이 그 말을 할 자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극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이브 엔슬러 원작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2001년 한국에서 초연된 이후 10여 년간 '여성의 성'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와 대사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초연 당시 김지숙, 예지원, 이경미 여배우 세 사람이 극을 3분할해서 공연을 이끌어가는 '트라이얼로그' 버전으로 소개되었던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서주희, 장영남의 '모놀로그' 버전을 거쳐 지난해에는 뮤지컬 <맘마미아> 3인방 이경미, 전수경, 최정원의 '트라이얼로그'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그리고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는 2011년판 <버자이너 모놀로그>에는 김여진·이지하·정애연·정영주 네 명의 여배우가 출연한다.

이들은 각각 1인 2~3역을 맡아 '쇼킹한 첫 경험 때문에 사랑을 이어가지 못하는 할머니', '신음소리에 탐닉하는 변호사', '버자이너에 대해 탐구하는 워크숍에 참가하는 여자', '남편의 폭력에 고통 받는 주부' 등을 연기한다.

"아저씨들 공연 포스터 찢고 '이 미친 여자들 뭐야'..."

▲ 올해로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 버자이너 모놀로그

오는 12월 2일 <버자이너 모놀로그> 첫 공연을 앞두고 지난 2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토크쇼 - 우리 이야기해보지'가 진행되었다. 200여 명의 관객이 참여한 가운데 4명의 배우와 연출가·프로듀서가 <버자이너 모놀로그>, 그리고 여성의 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0년간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라이선스를 보유해왔다는 이지나 프로듀서는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순우리말인 '보지'라는 단어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이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2001년 김지숙, 예지원, 이경미. 이렇게 초연을 했다. 자유로 소극장인데 여배우들 세 명이 되게 야했다. 김지숙씨는 클레오파트라 같은 가발을 쓰고, 예지원씨는 레게머리를 하고, 이경미씨는 파마머리에 빨간 하이힐을 신고.

첫 장면이 이거다. '보지'. (관객들이) 이 작품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다. 세 명이 이렇게 앉아서 '보지', '보지', '보지'. 제가 봤더니 관객들 마음이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라졌다.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관객들에게 다가가서 '보지' 이러니까 모든 관객들이 김지숙씨만 오면 (피하는 표정을 지으며) … 이래서 그때 벌어진 사건이 공연시작한 지 5분 만에 기절. 관객들이 너무 냉담하니까 김지숙씨가 쓰러진 거다."

이지나 프로듀서는 "그래서 서주희씨가 할 때는 맨발에 화장 하나도 안 하고 '여러분, 제가 무슨 말 할지 아시죠?' 그래도 관객들이 경계했다"면서 "그런데 지난해 <맘마미아> 3인 방이 공연할 때는 '여러분, 제가 무슨 말 할지 아시죠?' 이러니까 관객들이 '보지요!' 이러더라"고 전했다. 이 프로듀서는 "우리 초연할 때 아저씨들이 포스터 다 찢고 '이 미친 여자들 뭐야' 그랬던 거 생각하면 지금 많이 좋아진 것 같아서 기쁘다"면서도 "아직도 갈 길은 먼 것 같다"고 감회를 나타냈다.

이 프로듀서는 "이 작품의 서문을 보면 '이 단어를 수치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여성들은 자유롭지 못하다'라는 대목이 있다"면서 "내 스스로 내 성기를 비하한 적은 없는데 '입을 찢어버리겠다', '천박하다' 등의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성기는 천박하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부터 우리가 없애버리고 우리 몸의 한 부분으로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임신 중인 김여진 "아이에게도 도움될 것 같아 선택했다"

▲ 배우 김여진씨. ⓒ 버자이너 모놀로그

'성'에 대해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면서 배우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이지하씨는 "저는 나이가 있지만 성에 대해서는 보수적이고 무지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하면서 절감을 하고 있다"면서 "부부 사이에도 성에 대한 솔직한 대화가 많이 부족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부부생활이 변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각자의 버자이너를 그려오라'는 숙제가 있었는데 남편이 '뭘 그렇게 열심히 그려?'라고 묻길래 '어, 내 보지'라고 대답하는데 저도 깜짝 놀랐다"고 덧붙였다.

김여진씨는 "<버지니아 모놀로그> 책을 봤을 때, 첫 장을 열자마자 충격을 받았다, 활자로 봤을 때 '헉' 하는 감정 속에 비하, 금기 모든 게 읽혔다"면서 "그러한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 공연을 택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임신 중인 김씨는 "'버자이너'라는 단어를 아이가 들었을 때 어땠을까 걱정했는데 결론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서 "연습 때 아이가 가장 활발하게 태동한다"고 웃어보였다.

정영주씨는 10살짜리 아들에게 자신의 신체부위를 '있는 그대로' 말하도록 하는 연습을 시키고 있다. 정씨는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아들 교육에 신경을 써야겠다, 남자들이 자신이 비롯되어진 곳인 여성이라는 존재를 아껴주고 보호해주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짬지', '고추'말고 '보지', '자지'라고 말하면서 몸에 있는 부분들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으로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보지'가 더 이상 '홍길동'이 되지 않도록

▲ 배우 정영주씨. ⓒ 버자이너 모놀로그

이어진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한 여대생은 수업시간에 들었던 일화를 꺼냈다.

"양성평등에 대한 교육을 하는 선생님이 '여자들,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라'고 교육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강좌에서 만나서 사귀게 된 친구들이 있었다. 남자 애는 '아, 얘는 나랑 같이 수업을 들었으니까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하겠지'라고 생각한 반면, 여자 애는 손잡고 싶어도 키스를 하고 싶어도 이야기를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둘 다 답답해 하다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저는 그런 이야기를 잘 할 것 같다(웃음). 그런데 오히려 주변에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정영주씨가 말을 받았다.

"내가 마음이 가는 사람한테 입을 맞추고 싶다면 표현을 해라.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으려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한다. 자기를 탐구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으면 좋겠다. 거울로 한 번 그곳을 들여다 봐라. 남자들은 벗기만 하면 알 수 있지만 여자들은 별별 다른 세상이 있다. 자신이 그런 걸 갖고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의 버자이너는 또 다시 홍길동이 된다. 버자이너가 홍길동이 되지 않도록 정정당당하게 스스로를 아꼈으면 좋겠다."

그러자 김여진씨는 "같은 연극을 해도 이렇게 차이가 있다"면서 "언젠가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 되더라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셨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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