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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만지면서 사는디 절 허믄 뭐헌데유"

군산용왕굿, 모두 단합해 영구적으로 행해져야

등록|2011.11.23 13:48 수정|2011.11.23 13:48

▲ 진흥농악단이 행사 시작에 앞서 풍물패 한마당을 벌이고 있다. ⓒ 조종안


'군산용왕굿' 재연이 지난 21일 오전 10시 30분 군산수협 해망동 공판장에서 열렸다. 전국 명산의 산신과 4해 용왕을 모셔다 어민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한 이날 행사는 진흥농악단의 '풍물 한마당'을 시작으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풍물패가 우질굿으로 시작하는 첫째 마당, 오방진으로 시작하는 둘째 마당, 굿거리로 시작하는 셋째 마당 가락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행사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몇몇 어르신은 흥겨운 가락에 손뼉 장단으로 답하며 앞으로 나아가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군산문화원(원장 이복웅)이 주최하고 군산시가 후원한 '군산용왕굿'은 '강릉단오제' '진도씻김굿' 등과 함께 군산지방 전통 민속 굿으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무속인들의 갈등으로 몇 년 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열리게 돼 의미를 더했다.

'군산용왕굿', 영구적으로 행해져야

▲ 군산지방 용왕굿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는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 ⓒ 조종안


이복웅 원장은 "군산지방 용왕굿은 대규모로 거행됐으나 현대화 과정에서 용왕굿을 주도하던 당집이 소멸했고, 그 맥이 끊겨 일부 불교문화와 접목되면서 변형된 용왕굿을 행해 왔다"고 변천 과정을 소개했다.

이어 "군산은 내륙과 섬지방 특성이 혼합된 지리적 조건과도 상관이 있다"며 "군산의 용왕굿은 산신과 바다의 신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재난을 피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굿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재연하는 것이니 격려와 박수를 보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원장은 "무속인들의 주장과 의견이 엇갈려 열리지 못하다가 몇 년 만에 재연하게 돼 기쁘다"며 "이번 용왕굿을 계기로 모두가 단합하고, 화합하고, 결속해 군산의 무속굿이 영구적으로 열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용왕굿 보존협회 구재근(64) 회장은 "군산 용왕굿을 전국행사로 승화시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중 군산시와 군산문화원의 노력으로 행사가 치러지게 됐다"며 "이번 행사를 디딤돌로 여겨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해 군산 용왕굿 발전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어민들의 무사고와 풍어 기원한 '군산용왕굿'

▲ ‘부정굿’을 재연하는 ‘모은사’ 채길례 보살 ⓒ 조종안


식전행사를 마치고 본 행사가 시작됐다. 군산용왕굿은 굿판을 정화시킨다는 '부정굿', 액을 제거한다는 '살풀이', 8도 명산의 산신님을 봉청하는 '산신봉청 굿', 사해 수부용왕님을 봉청하는 '용왕봉청 굿', 가야금 병창, 판소리 순으로 진행됐다.

첫 순서로 굿판을 정화하고 부정을 예방하며 신이 내려올 제장을 정갈하게 해둔다는 부정굿이 행해졌다. 재연에 나선 모은사 채길례 보살은 생수가 담긴 바가지를 들고 다니며 소나무 가지로 찍어 뿌리는 것으로 부정을 가시게 했다. 

채 보살은 구재근 회장이 제상 앞에 앉아 장구와 꽹과리를 치며 부르는 무가 장단에 맞춰 굿판이 벌어지는 장소와 시간을 전국 명산의 산신과 군산의 상징 월명산 산신에게 고하며 어민들의 건강과 풍어를 기원했다.

▲ 이귀임 국악인이 살풀이 한마당을 펼치고 있다. ⓒ 조종안


이어 이귀임 국악인의 살풀이 한마당이 펼쳐졌다. 액을 제거하고 재앙을 막는다는 살풀이는 흰 수건을 들고 춘다고 해서 '수건춤'으로도 불린다. 빠르기와 느림의 미학, 동작 하나하나가 신비롭고 환상적이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차가움이 느껴진다.  

살풀이 굿은 일제강점기 때 굿이 금지되자, 무당 중 일부가 집단을 만들어 춤을 다듬으면서 점차 예술적 형태를 갖추게 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운 쪽 머리에 비녀, 백색 치마저고리, 흰 수건으로 멋과 감정을 표현하는 살풀이는 가장 한국적인 춤이기도 하다.

▲ 산신봉청 굿을 재연하고 있는 송영순 보살. ⓒ 조종안


살풀이 굿이 끝나고 송영순 보살이 산신봉청 굿을 재연했다. 산신봉청 굿은 전국 명산(함경도 백두산, 평안도 묘향산, 황해도 구월산, 경기도 삼각산, 강원도 금강산, 경상도 태백산, 충청도 계룡산, 전라도 지리산, 제주도 한라산) 산신을 봉청하는 굿이다.

이어 사해 수부 용왕을 봉청하는 용왕봉청 굿이 재연됐다. 산신과 용왕은 음과 양(부부) 같아서 항상 같이 봉청한다. 사해란 동·서·남·북 바다를 가리킨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지만, 북해도 있는 것으로 여긴다. 용왕은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모양이다. 

▲ 제상 앞에서 4배를 올리는 어민 가족 ⓒ 조종안


▲ 공판장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이 용왕굿을 지켜보고 있다. ⓒ 조종안


보살들은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산신과 용왕을 인도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구경만 하던 사람들은 제사상 앞으로 나가 돼지 입에 만 원짜리 몇 장을 물리고, 집안의 안녕과 풍어를 빌며 절을 올렸다. 제사상 앞에 그려진 그림 속 두 어르신은 용왕(우측)과 산신(좌측)이다.

뒤에서 구경하던 한 할머니는 바다에 나갔다가 죽은 옛날 이웃이 생각났는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래도 자리에서 뜨지 않고 끝까지 지켜봤다. 할머니에게 '왜 앉아만 계시느냐'고 물으니 "생선이나 만지면서 사는 사람이 절 혀서 뭐헌데유"라며 "그냥 구경만 해도 재밌네유"라고 답했다. 이어 할머니는 "옛날 용왕굿은 바닷가에서 했고, 선주들도 엄청 많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 넋건짐 굿을 재현하는 보살들. 선주로 보이는 아저씨가 노잣돈을 놓아주고 있다. ⓒ 조종안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민요 공연을 마치고 '넉건짐 굿(씻김굿)'이 재연됐다.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수중고혼이 된 넋들을 육지로 끌어올려 극락왕생토록 하는 굿이다. 구재근 회장은 망인을 위로하고 달래는 무가로 신에게 기도했다. 50여 년 만에 보는 굿이고 규모도 커서 흥미를 끌었다.

"넋이로다, 넋이로다. 이 넋이 뉘 넋이냐. 황금 실러 바다 나간 수중망자 넋이로다. 나오시오, 나오시오. 질베잡고 손길잡고 시왕세계 어서가자 나오시오. 물들었네, 물들었네. 칠산바다 물들었네. 나오시오, 나오시오. 조기떼 건지러 어서가자 나오시오···." (<군산시史> 677쪽) 

▲ 한 보살이 바다에서 ‘넋배’를 건져 올리고 있다 ⓒ 조종안


보살들은 '넋배(긴 헝겊에 식기를 묶은 것)'를 잡아당기며 물가로 걸어나갔다. 한참 후 물에서 넋배를 끌어올리자 보살들의 기운은 절정에 달했다. 넋배를 잡은 보살은 백지로 만든 넋대와 넋발로 이승사람과 저승사람으로 구분하고, 용선에 실어 저승으로 인도했다.  

용왕굿 재연 행사는 군산시 어민들의 모든 액운과 근심을 모선에 싣고 물가로 인도해 '우리 재액을 모두 소멸해 달라'는 기원과 함께 풍어와 무사고를 비는 '뒤풀이 내전굿'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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