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한 마을에 부과된 벌금만 2억 원...어느 동네야?

[르포] 제주에서 용트림 중인 '평화 활화산'에 대한 보고 ②

등록|2011.11.23 18:13 수정|2011.11.24 10:58
강정마을회를 중심으로 단식과 삭발과 각종 집회와 소송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2010년 12월 27일부터 제주 해군기지 공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주민들이 절대보전지역 해제 취소 소송 1심에서 패소한 지 열이틀 만이었다.

그날 하루만도 레미콘 트럭 60대가 공사장 안으로 투입되었다. 같은 날, 주민과 성직자들이 모여 공사장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경찰은 이 기자회견을 불법 집회로 규정하고 34명을 연행, 구금한 후 이튿날 석방하였다. 공사 시작 본격화는 곧 주민에 대한 공권력 탄압 구체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10개월 동안 주민 겁주기와 기죽이기 도구는 무차별 발부되는 소환장이었다. 공사에 저항하는 마을 주민 대상 소환장이 100건 이상 발부되었다. 특히 1차 평화비행기가 뜨기 직전인 2011년 8월 말에는 공사 중단 협의 기간에 장비를 움직이는 해군 측에게 항의한 강동균 마을회장 외 2명이 체포되었다.

체포조 경찰이 미리 대기하였던 정황이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났고, 평화비행기 축제를 앞두고 놓은 경찰의 덫이라는 소문 또한 공공연하였다. 이 무렵 검찰은 공안 정국을 운위하였고, 마을에서는 무차별 채증에 의해 60건의 소환장이 발부되었으며 급속히 연행, 체포가 강화되었다.

8월 27일에는 마을회가 제소한 농로폐지 무효 소송 및 가처분 소송이 기각되었고, 29일에는 해군 측이 제소한 공사반대 금지 가처분 소송과 업무방해 손해배상 소송이 받아들여졌다. 승소한 해군은 9월 2일 공사 현장 전역에 철제 펜스를 쳤다.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개척자들'에 속한 활동가 및 일부 평화운동가들에게 공사 현장 1회 진입 때마다 벌금 200만 원이 부과되는 금이 그어졌다. 이날도 결국 40명이 체포되고 그 중 4명은 구속되었다.

해군기지 관련 현재까지 구속 수감된 사람이 양윤모 교수를 필두로 11명, 마을 주민에게 부과된 총 벌금 액수는 2억 원이 넘는다. 수감자 중 8명이 두어 달 수형생활 후 보석으로 출감하였는데 보석금은 각 2000만 원이었고 대부분 보증보험을 통하여 납부했다. 주민들에게 부과된 벌금과 보석금은 전국에서 답지하는 성금과 책, 티셔츠, 해산물 판매 수익금 및 후원주점 수익금 등으로 해결할 계획이다. 

골목골목 서 있는 경찰, 온 마을에 '범법자'

▲ 9월 2일 오전 제주 해군기지 예정지인 강정마을에 경찰 진입과 함께 해군 관계자가 나타나 국유지라며 공사방해시 처벌된다고 고지하고 있다. ⓒ 이주빈



묻지 않을 수 없다. 최대한 평화적인 태도로 4년을 인내해온 사람들에게 형사처벌이 이렇게 남발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그 내막이 무엇인지. 제주참여연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강정마을 주민과 인권 활동가들을 내려치는 형사처벌은 법률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입니다. 정권을 쟁취한 집권정파가 반대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형사처벌로 과감하게 선제공격을 하는 방식이며, 형사소송법상 구속이 악용되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완력의 지배에 자주 밀리는 상황에서도 강정마을 주민들은 대부분은 언제까지 마을 골목골목 서 있는 경찰 앞에 마음을 졸이며 지내야 하는지 초조하게 묻지 않는다. 기한이야 어찌되건 해군기지 백지화를 쟁취해내지 못하면 결국 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주시에서 시집와 28년간 감귤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안명택(53)씨는 그래도 고생한 게 있어서 오늘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강정에 힘을 보태준다고 말한다. 

"1월에 공사 시작할 무렵에는 새벽 세시 반에도 비상이 걸려 기지사업단 도로에 나가곤 했어요. 저들이 군사작전 하듯이 밤에도 공사를 진행하니까요. 5월, 6월에는 제주 나가서 이틀 동안 우리 마을 살려줍서하고 삼보일배도 했고요.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어요. 흙은 거짓말 안 하잖아요, 저도 소환장 두 번 받았어요. 분해서 욕만 늘었지요 뭐."

안씨 옆에 서 있던 남성이 거들었다.

"서귀포 경찰서가 강정마을 집집마다 숟가락 숫자도 알고 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뭐 조금 움직이기만 하면 경찰들이 터치폰으로 채증을 해요. 굉장히 기분이 나쁘지요."

마을 민속보존회 회원이기도 한 안씨는 작년에도 올해도 강정마을이 탐라문화제에 출연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오래 이어오던 주민들의 전통과 일상이 구석구석 이렇게 부서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난리통이라 날마다 문제 수습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지나고 나면 주민들이 이 정서적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지 큰 걱정입니다. 모두들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 자신 마을 주민이기도 한 양아무개씨는 해군기지 문제가 속히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도지사나 정치가들이 유도하는 민군복합항이면 괜찮다고 하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거 할라면 뭐하러 우리가 이 고생을 합니까. 우리는 그저 원래 살던 대로 원상회복되기만 원합니다."           

"이 바위 깨지면 앞으로 100명이 죽을 거라"

▲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대책위원장이 'V'자를 그리며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이주빈


2011년 10월 7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제주시내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마을 노인 두 분은 이처럼 부당한 상황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강정마을에서 노년에 이른 분들이다.

"사실 우리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우리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온다는 예상도 못 했고, 뭐가 좋고 나쁜지 몰랐으니까. 해군이 처음부터 주민들 모두 모아놓고 회유했으면 뭣도 모르고 찬성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일부 사람들을 데리고 불법적으로 일을 진행하니까 그것에 반대하게 되고 이것이 왜 그렇게 비밀리에 추진됐는가 살피다보니 내막을 안 거에요. 큰일 날 뻔했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나 몰라요."

5년이 가깝도록 싸워오는 동안 젊은이들이 지치는 듯싶을 때면 호령을 하면서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긴급 상황을 비롯한 모든 투쟁 현장에 빠지지 않고, 피의자가 된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관련 재판을 반드시 방청하는 두 노인은 소환장, 연행, 구속, 벌금 등으로 마을이 아수라장이 된 것에 대해 분개했지만 앞으로 진행될 상황에 대해서는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도무지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올 초만 해도 이제는 안 되겠구나 생각도 했는데 이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주니까 희망이지. 꼭 이길 거야."

전국에서 인구 대비 범법자가 가장 많은 마을이 강정이라는 말(업무방해 혐의 32회, 손해배상 청구 22회 포함 소환장 100건 이상. 구속자 11명. 보석 석방자 8명. 현 구속 수감자 3명)을 하면서 크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연대해주기 때문이다.

좀 이른 시각에 제주지방법원에 도착하여 입정을 기다리는 동안, 최아무개씨가 불쑥 누구에겐지 모를 한마디를 내던지더니 담뱃갑을 꺼내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중앙정부가 늘 제주를 수탈했잖습니까. 지금 이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우다."

302호 법정에서 열린 이날 재판에는 구속 수감 중인 강동균 회장, 김종환씨, 김동원군이 나왔고, 검사와 변호사 양측 증인 심문을 위해 경찰 5명이 출두해 있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강기탁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는데, 매우 꼼꼼하고 치밀하게 반대 심문을 하는 덕에 재판 시간은 무려 두 시간 반이나 걸렸지만 긴 방청을 마친 주민들은 강 변호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틀 후인 9일에는 역시 업무방해로 체포된 김민수군 영장실질심사를 보러 다시 법원으로 갔다. 다행히 기각이 결정되었고 주민들은 그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서귀포 장례식장을 향하였다. 주민인 강아무개씨 모친이 전날 오전에 물질하러 갔다가 발을 헛디뎌 별세했기 때문이었다.

연초에도 해녀 한 명이 사고로 사망해 구럼비 할망 굿당에서 마을 굿을 했다.

"아직 멀었어. 이 바위 깨지면 앞으로 100명이 죽을 거라."

그날 심방이 했다는 예언(?)이 강아무개씨 모친 사고를 기화로 마을 여기저기서 다시 수근거려지게 되었다. 두루 난감한 시절이랄 밖에.
덧붙이는 글 * 조정 : 시인. 전남 영암 출생. 리얼리스트100/한국작가회의 회원. 제8회 거창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다. 펴낸 시집으로 <이발소 그림처럼>(실천문학)이 있다.
* 이 글은 <삶이보이는창> <레디앙>에도 실렸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