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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힐 만큼 작은 섬, 손죽도를 소개합니다

여수에 속한 작은 섬 손죽도, 오밀조밀한 풍경이 일품이다

등록|2011.11.24 11:51 수정|2011.11.24 11:51

▲ 손죽도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삼각산 ⓒ 전용호


쾌속선 타고 1시간 반 달려가야

손죽도라는 섬은 지도에서 찾으면 아주 작다. 행정구역으로는 여수시 삼산면이지만 고흥에 더 가깝다. 손죽도는 원래 고흥 땅이었다. 1896년 고흥, 순천, 광양에 있는 섬들을 관할하는 돌산군이 신설되면서 손죽도도 돌산군 관할이 됐다. 돌산군은 1913년 여수로 흡수됐으며 손죽도는 여수에 속한 섬이 됐다.

손죽도로 가는 길은 여수에서 쾌속선을 타고 1시간 반 정도 들어가야 한다. 배를 오래타고 싶지 않으면 고흥 나로도에서 갈 수도 있다. 손죽도에 유명한 관광지는 없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 낚시꾼들이 즐겨찾기는 하지만, 그냥 무언가 보려고 가려면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얼마 전 예능프로인 1박 2일에서 방문하려고 했는데, 날씨가 안 좋아 들어가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만약 촬영팀이 섬으로 들어갔다면 무엇을 보여줬을지 무척 궁금하다.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 가는 배를 탄다. 배라는 게 그렇다. 설레는 마음으로 탔다가, 처음에는 육지와 멀어지는 풍경에 야릇한 느낌을 갖다가, 갈매기 날아다니는 바다풍경에 가슴이 확 터지다가, 그리고는 배 안에서 지루하고 답답해한다. 언제 도착하나? 배는 나로도를 지나고 작은 섬마저 보이지 않는 바다를 가로질러 한참을 간다.

작은 섬, 오밀조밀한 섬마을 풍경

손죽도는 섬 모양이 하트처럼 생겼다. 움푹 들어간 곳에 선착장과 마을이 있다. 여객선이 속도를 줄이고 선착장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바위산 봉우리와 마주한다. 절해고도에서 쌍둥이처럼 솟은 두 봉우리는 영화 속에서 나옴직한 잃어버린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은 느낌을 준다.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 손죽도 마을. 150여명 정도 살아가는 작은 섬마을이다. 깃대봉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 전용호


해안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은 너무나 조용하다. 기껏해야 150여 명 사는 정도다. 마을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섬 풍경을 만난다. 두리번거리며 마을을 가로질러 간다. 오래된 마을 어디에나 있는 커다란 당산나무 한두 그루. 주변으로 모여 있는 집들. 울긋불긋 지붕들은 섬을 그나마 밝게 한다.

마을 큰길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아름다운 돌담길이 있다. 아주 오래된 돌담. 섬에 처음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작은 돌들을 정성스럽게 쌓아 울타리를 만들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그 돌담 사이로 골목길이 이어진다. 돌담 울타리에는 따로 문을 만들지 않았다. 돌담은 오랜 세월 동안 바닷바람과 싸우며 이끼를 얹었고, 담쟁이넝쿨이 돌담을 보듬고 있다.

▲ 아름다운 돌담길. 그 속에는 섬사람들의 애환이 살아있다. ⓒ 전용호


▲ 돌담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쿨은 까만 열매를 맺었다. ⓒ 전용호


▲ 빈집에서 만난 고양이 ⓒ 전용호


가끔 가다 빈집들도 있다. 살며시 들여다보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고양이가 깜짝 놀란 모양이다. 너는 놀랐겠지만 나는 반갑다. 가까이 다가가려니 경계를 한다. 따뜻한 햇살 받고 쉬는데 방해했나보다. 그냥 돌아 나온다.

작은 시기심 하나 때문에 큰 장군은 잃었으니

마을 한 가운데에는 사당이 있다. 충열사(忠烈祠)로 이대원장군 사당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인 1587년(선조 20년) 고흥 앞바다에 왜군이 침입했다. 수군 녹도만호인 이대원(1511-1587)장군은 왜선 20여 척을 쫓아 손죽도까지 와서 싸웠고 왜장을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공을 가로채려 한 전라좌수사 심암의 부탁을 거절하자 미움을 사게 된다. 10여일 후 왜구가 다시 침임했다. 장군은 전라좌수영에 지원을 요청하고 손죽도 해역으로 출동해 맞서 싸웠으나, 장군을 시기한 전라좌수사 심암이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결국 지원군 없이 3일간을 싸우다 22살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이대원 장군 사당. ⓒ 전용호


손죽도 사람들은 그 넋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사당을 세우고 매년 제를 지내 왔다. 이대원장군을 잃었다고 해서 섬이름을 손대도(損大島)라 부르기도 했다. 장군이 남긴 절명시가 그날의 안타까움을 전한다.

"진중에 해 저무는데 바다 건너와, 병사는 외롭고 힘은 다하여 이내 삶이 서글프다. 임금과 어버이 은혜 모두 갚지 못하니, 한 맺힌 저 구름도 흩어질 줄 모르네."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섬

마을을 가로질러 산으로 오른다. 손죽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 깃대봉이다. 그래봐야 242m. 산으로 오르는 길은 차가 오를 정도로 길을 내었다. 섬 속에서 은둔한 채 살아왔던 숲은 건설장비들이 밀고 올라와 커다란 길을 만들어 놓고 가버렸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간다.

산으로 오르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발길이 멈춰진다. 손죽도 마을이 평온하게 내려다보인다. 조금 더 오르면 바다가 빙 둘러 보인다. 손죽도 주변으로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떠있다. 저곳에도 사람이 사나? 바다 위에 아름답게 보이는 섬이지만 그곳에서도 바닷사람들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작은 섬이라 기껏해야 십여 명 정도가 외롭게 살아간다.

▲ 손죽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깃대봉 오르는 길에서 만난 풍경 ⓒ 전용호


산길은 완만하게 올라간다. 바닷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나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싱그럽다. 산 정상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산 정상에 선다. 올라오면서 보이지 않던 작은 섬들이 나타난다. 섬 위에 올라서면 빙 둘러 수평선이 보인다. 군데군데 이빨처럼 솟은 작은 섬들이 앙증맞다. 바다 가운데 둥둥 떠 있는 섬. 외롭다. 섬은 외로움이다. 섬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바다를 지킨다.

바람, 섬과는 떨어질 수 없는 인연

해안을 따라 난 시멘트포장길을 따라간다. 쉬엄쉬엄 걸어간다. 발전소도 있다. 이곳까지 전기를 끌어오는 것 보다는 직접 발전하는 게 더 경제적인가 보다. 만약 이 조용한 섬에 전기마저 없다면…. 정말 심심하겠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햇살이 따뜻하다. 바람이 몸에 부딪친다. 억새가 물결치는 손죽도의 바람. 바람소리가 합주를 한다.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는 거칠게, 억새가 부딪히는 소리는 스르륵 스르륵 부드럽게 들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에서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눈이 부시다.

▲ 손죽도 풍경. 아름다운 섬인데,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은 없다. 경치가 아름답다는 것. ⓒ 전용호



▲ 손죽도 돌담. 삶의 억척스럼이 느껴진다. ⓒ 전용호


길은 바다를 바라보더니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손죽도의 상징처럼 보이는 삼각산으로는 오를 수 없다. 섬은 작다. 한바퀴 돌고나니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선착장 방파제에서 배를 기다린다. 해녀들이 물질을 한다. 섬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섬? 언어적으로는 수 천 년을 진화해오면서 한 글자로 남았다. 말에서 외로움이 느껴진다. 섬이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억척스런 삶의 현장이다.배가 들어온다.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은? 이 섬을 나갈 수 있다.

손죽도 가는 길과 볼거리

▲ 손죽도 지도. ⓒ 전용호



손죽도는 여객선이 하루에 두 번 들어간다. 나오는 편은 여객선이 들르지 않고 바로 가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사전에 손죽도를 들렀다 나가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션호프해운 662-0773, 청해진해운 663-2824, 손죽도 여객선비는 2만 6600원이다. 나로도에서는 만 2650원이다.

손죽도는 반나절 정도면 걸을 수 있는 섬이다. 시멘트 포장길 너머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만난다. 마을을 가로질러 산으로 오를 수 있다. 산에서는 아름다운 섬들이 내려다 보인다.

문화유적으로는 아름다운 돌담길과 이대원장군 사당이 있다. 해안 시멘트포장길 끝에는 이대원장군 동상과 묘가 있다. 편의시설로는 민박집이 하나 있고, 식사를 할 수 있다. 막걸리 집도 있다는데 물어보시길.
덧붙이는 글 손죽도는 7월 26일과 11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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