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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대신 '차림사', 과연 공감 얻을까?

[주장] 여성식당노동자 새로운 호칭 '불편'

등록|2011.11.24 18:16 수정|2011.11.24 18:18
"네? 뭐라고 하셨죠? 저 부르신 건가요?"

며칠 전,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에게 큰 맘 먹고 "차림사님~"이라고 불러 드렸다. 하지만, 반응이 영 시원찮은 모양새다. 낯선 호칭(차림사) 때문인지 아주머니는 다소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차림사? 왜 그렇게 불러요? 그렇게 부른다고 뭐가 달라져요? 더 어색해요, 그냥 아줌마라고 불러요~."

'아줌마' 호칭, 이제는 '차림사'로 통일?

얼마 전 한국여성민우회는 식당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호칭으로 '차림사'를 최종 선정했다. 지난 9월부터 두 달간 어떤 호칭이 적합한지 시민들에게 공모한 결과 응모한 250개 호칭 중에 '차림사님'이 1등으로 뽑힌 것이다.

▲ 여성민우회는 식당여성노동자 호칭 공모전을 실시한 결과 '차림사'를 새로운 호칭으로 제시했다. ⓒ 김학용


식당 노동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모두에게 알기 쉽게 쓰일 수 있고, 식당일을 포괄한 이름이라는 점을 들어 결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항상 부르는 사람도 뭔가 어색하고 듣는 사람도 불편했던, 답 안 나오는 난제중의 난제인 식당여성노동자의 호칭이 딱(!) 정해진 것인가? '차림사=밥을 차려주는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다.

또, 선정 기준으로 여성성이나 모성을 강조하는 호칭보다 양성에 적용될 수 있고, 일반적으로 이미 쓰이는 말보다는 새로우며, 직업명과 함께 부를 수 있어 결정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가작에는 두레손, 조양사, 지미사, 맛지기, 맛운사가 선정됐다. 두레손은 '두레먹다'는 우리말과 관련해 함께 나누어 먹을 음식을 짓는 사람, 조양사는 영양을 북돋워 주는 사람, 지미사는 맛을 알고 전해주는 사람, 맛지기는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는 사람, 맛운사는 맛을 날라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각각 지녔다.

▲ 여성식당노동자 호칭공모 심사에는 개그맨 김미화씨와 신지영 고려대 국문과 교수, 김인순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등이 참여했다. ⓒ 한국여성민우회


시민들의 손으로 지은 새로운 호칭으로 새로운 의미, 새로운 존중을 담아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시도에는 원칙적으로는 찬성하며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의도는 좋으나 '차림사+님'의 발음이 너무 어려운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차림사+님', 발음 어렵고 단어 자체가 경직된 관계 표현

상을 차려주는 사람이라서 '차림사'라고 했다지만, 입에 잘 붙지도 않고 발음이 그렇게 쉽지도 않다. 일단 어감이 좋지 않으니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한편으로는 사찰이름이 떠오른다.

어감이 딱딱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치더라도, 호칭 자체에 특별한 정감이 느껴지지 않는 느낌에 이르니 수긍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 전반이 손님과 종업원 관계의 인간관계를 너무 경직된 시선으로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호칭은 일단 부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도 편해야 한다. 혹시라도 새로운 호칭에 대한 강박이, 억지 호칭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든다. 단지 그들을 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림사'라는 호칭으로 불쑥 다가가기엔 너무 성급한 결정은 아닌지 모르겠다.

식당노동자 호칭 공모는 단순히 호칭만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고 지금까지 대접받지 못한 식당노동을 가시화하고 노동자로 자리매김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적절한 호칭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적절한 호칭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차림사(~을 위해 음식을 차려주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라는 호칭은 최소한 '갑(이용자)'과 '을(접대종사자)'간의 관계를 더욱 구분 짓는 호칭은 아닐까? 이렇게 볼 때 호칭만 바뀐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무엇보다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는 한 호칭만 놓고 보기에는 결코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손님들이 아무렇게나 부르는 호칭이 식당 여성 근로자의 인격을 폄하하는 것으로 비쳐질수 있다. 하지만 식당 여성 근로자의 새로운 호칭으로 제시된 '차림사'도 호칭만 놓고 보기에는 어감이나 관계등을 고려할 때 결코 수긍하기는 어렵다. ⓒ 한국여성민우회


'차림사'는 정말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러다가 청소하는 여성노동자를 '미화사', 바닥청소 하는 여성노동자를 '광택사', 직장을 찾고 있는 미취업 여성을 '직업탐방사', 커피전문점 여종업원을 '접대사', 배달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를 '배달사'라고 부르지는 않을까? 또, 정체불명의 민간자격증으로 돈벌이에 혈안이 된 유령단체에서 곧 '차림사' 1급자격증을 신설하고 구인광고에 이런 제목이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차림사 1급, 홀 서빙 공채.'

아무래도 호칭이 있으면 부르기 편하지만, 인식의 변화 없이는 본질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으리라. 그들을 대하는 인식과 예절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적인 시선에서 대우를 하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다.

호칭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현재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신중하게 가려 쓰는 일부터 충분한 계도가 필요하다. 그런 이후에 정말 바꾸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질 때 바꾸는 게 맞다. 공모에서 1등한 호칭이라고 무조건 바꾸자는 건 '성숙한 사회'와 결코 코드가 맞지 않는 일이다.

기껏 만들어 놓은 호칭이 '어이 차림사 양반' '어이 차림사 학생' '어이 차림사 아가씨' '어이 차림사 이모'라 불리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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