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빠진 '공포의 아버지' 하나도 안 무섭네~
[바깽이의 이집트 여행기 ③] 죽음을 향한 그리움, 피라미드
사진 속의 피라미드 셋은 늘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피라미드와 피라미드 사이는 제법 거리가 멀다. 그 사이를 끈덕지게 치고 들어오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낙타몰이꾼들이다.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낙타몰이꾼들을 떼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길을 꿋꿋하게 걸었다. 4000년도 훨씬 더 넘은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지나 카프레왕을 거쳐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여기서부터 스핑크스까지는 너무 아득하다. 더구나 우리는 1시까지 다시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돌아가야 한다.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1시가 되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로 들어가는 입장권은 따로 사야 한다는 걸 미처 몰랐었다. 여기까지 와서 피라미드 겉만 본다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피라미드에 가려면 시간부터 확인해야 한다. 티켓은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루 두 번 제한되어 있다. 오전 8시와 오후 1시. 그것도 250명 한정이다. 피라미드 내부까지 들어가려면 그 때 표를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 만일 이걸 놓치게 되면, 티켓 오피스와 피라미드를 왔다갔다 해야 하는 수고를 한 번 더 감수해야 한다.
사람 잡아 먹던 스핑크스?... 코와 입 떨어진 모습 애잔한데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에서부터 스핑크스까지 낙타를 타기로 했다. 낙타몰이꾼은 실컷 흥정을 하고는, 우리 가족이 낙타 두 마리에 올라타자, 어린 아이 둘을 몰이꾼으로 붙여 주고는 가버렸다. 아이들은 기껏해야 열두세 살 정도밖에 안되어 보인다.
낙타의 등에 올라타고 보니 제법 높아 겁이 난다. 낙타가 끄덕끄덕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가 심하게 들썩거리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다 보니 허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더구나 나는 앞에 앉은 딸의 허리를 엉거주춤 붙들고 낙타 꽁무니에 간신히 얹힌 형국이다. 낙타 타는 법조차 만만찮다. 사막을 건너려면 낙타 타는 법부터 배워야할 것 같다. 시간이 좀 흐르자 요령이 생긴다. 낙타 발걸음에 맞춰 엉덩이를 눈치껏 움직이다 보니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되었다.
그제야 풍경도 보였다. 먼 곳에서 모래바람이 가볍게 일어났다가 가라앉곤 했다. 모래능선을 걸어가는 낙타의 실루엣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득하다. 낙타도 모래도 바람도 온통 사막 빛깔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카이로 시내를 쏘다닐 때, 건물들이 모두 모래 색깔, 사막의 색깔을 닮아 있었다. 남녀 할 것 없이, 이집션들이 왜 긴 치마를 두르고 바닥을 쓸고 다니는지 알 것 같다. 내리쬐는 태양빛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서이리라.
스핑크스 가까이 이르러, 낙타몰이 소년은 우리를 내려주고는 박시시를 요구했다. 아까 오는 길에 사진도 찍어 주었으니, 10E£씩(1이집션파운드=220원 정도) 줘야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20씩 내놓으란다.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약해져 20씩 두 소년에게 건네 주니, 신이 나서 낙타를 타고 쏜살같이 내뺀다. 아뿔사, 낙타를 60에 탔는데 박시시를 40이나 주었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셈이다. 그걸 노리고 아이들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몸은 사자, 머리는 인간의 형상을 한 스핑크스는 돌을 쌓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석회암 언덕을 조각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파라오 카프라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는 왕실의 석관을 지키고 있다. 그 뒤로는 멀리 카프라왕의 피라미드로 연결이 된다.
이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내고 못 맞히는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그리스 신화 속의 그 스핑크스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스핑크스의 모습은 오히려 애잔하다. 아랍어로 그 이름의 의미가 '공포의 아버지'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스핑크스의 코와 입과 수염은 다 떨어져 나가 버린 상태다.
원근법을 이용해, 피라미드 꼭대기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올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던 사람들은 스핑크스와는 각도를 맞추어 뽀뽀하는 사진을 찍곤 했다.
230만 개 돌로 쌓아올린 쿠푸왕 피라미드의 비밀
파라오 쿠푸의 피라미드 내부는 신비함이 가득했다. 헥헥거리며 발밑만 보며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다 문득 고개를 들면, 양쪽의 웅장한 암석이 피라미드 모선을 따라 비스듬히 맞닿은 속에 내가 갇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한껏 자세를 낮추고 올라가다 잠시 숨을 고르던 덩치 큰 외국인은, 방향을 틀어 도로 내려갔다.
한참을 기어 올라가 왕의 현실에 이르니 어둡고도 싸한 기운이 감돈다. 작은 소리조차 크게 울려 퍼지는 곳이다. 방의 한 구석에는 석관이 놓여 있다. 관은 텅 비어 있었다, 원래부터! 이 관 안에 쿠푸왕은 원래 없었다. 이 수수께끼는 아직까지 남아 있다. 대 피라미드는 무덤이 아니란 걸까. 그렇다면 그 용도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이집트 역사상 가장 큰 건축물이라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피라미드 사면이 각각 동서남북을 향해 있고 바닥은 정확하게 정사각형이라느니, 230만 개의 돌로 만들어졌다느니, 수만 명의 일꾼들이 수년에 걸쳐 완성했다느니, 뭐 이런 놀라운 정보가 아니라도, 피라미드가 흩어져 있는 기자 지구에 들어서면 저절로 압도당하게 된다. 낙타를 타고 휘이 한 바퀴 돌게 되면, 저절로 그 묘한 분위기에 빨려들게 된다.
물결처럼 유려한 모래능선, 내 발목을 벌컥벌컥 빨아들이는 사막에 흐르는 기운은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너무나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영원한 삶을 더욱 갈망하게 하나보다. 하여 이생에 대한 미련은 사막의 바람처럼 건조하고 저 세상에 대한 집착은 젖은 모래알처럼 질기다.
그리하여 피라미드 앞에 우뚝 서게 되면, 이런 말이 튀어 나올 정도이다. 아, 저 정도라면 죽음이 덜 억울하겠다. 저 정도라면 죽음이 그립겠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한방에 날려 버리는 것, 삶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무찔러 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에게는 피라미드의 비밀이었다.
덧붙이는 글
2011년 1월 2주 동안 이집트를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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