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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명당

등록|2011.11.25 20:22 수정|2011.11.25 20:22
늙은 가로수 기대어
얼마 전까지 맹인가수 부부 노래하던 자리
어제는 왕창 70% 대폭탄 세일 중국산 가방
불티나게 팔리던 자리
그제는 어느 별에서 내려온
어린왕자 닮은 풀잎 같은 아이 하나
죽은 듯 엎드려 시퍼렇게 멍든 손바닥에
하얀 아지랑이 피우다 사라진 자리
오늘은 오후 여섯시부터
"천원 내고 성불하세요! 천원 내고 성불하세요!"
외치는 구레나룻의 앉은뱅이 사내에게
달마 그림 한 장씩 받아 성불하는 자리
저 성스러운 자리 사라지고 나면
내일은 민들레 풀씨 날릴 자리
시끌벅적 온갖 그림자 조각들
퍼즐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는 자리
저 자리 두고 목숨 걸고
싸우다가 누가 칠성판에 실려 떠났다는
소문이 날까 쉬쉬 하는
롯데백화점역 13번 출구에서
에스컬레이터로 바로 연결되는 자리

▲ 명화, <눈먼 거지> ⓒ 줠 바스티엥 르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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