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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령도시', 차라리 감옥이 더 낫다 3년째 폐허 루원시티... '뉴타운의 미래'다

[복지는 권리다-주거 ②] 중단된 '난개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등록|2011.12.15 08:56 수정|2011.12.15 14:15
복지는 시혜다? 보수진영이 유포한 논리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꼴지 복지'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복지는 시혜가 아닌, 보편적 권리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총 8부로 나눠 한국의 복지 상황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 기획에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여성단체연합, 전교조, 참여연대, 청년유니온(가나다 순) 등 6개 단체가 함께합니다. 자신의 사례를 기사로 올려주시거나, 댓글을 달아주시면 편집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편집자말]

▲ 노점상 이정수(53)씨의 집은 동인천역 4번 출구 앞이다. 그는 이곳에 주차대있는 자신의 승합차에서 먹고, 씻고, 잔다. 차량 안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 선대식


노점상 이정수(53)씨의 집은 동인천역 4번 출구 앞이다. 그는 이곳에서 먹고, 씻고, 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곳에 주차돼있는 승합차에서 지낸다. 이곳은 그의 일터이기도 하다. 승합 차 옆에 3~4단으로 쌓아올린 과일 박스 위로 귤·사과·감 등이 담긴 바구니와 비닐봉지를 올려놓았다. 그는 24시간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이씨를 만난 지난달 24일은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다. 차량 안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그는 "기름값이 없어 난방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꺼운 점퍼에 몇 겹의 이불을 덮어도 몸이 떨리는 걸 막을 수 없다. 귤을 팔아 하루 7만 원가량 번다. 그 중 순수익은 3만 원 정도다. "왜 인근 여관으로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억울해서…"라고 답했다.

차량 뒤로는 거대한 철제 가림벽이 우뚝 솟았고, 그 너머로 중장비 소리가 흘러나왔다. 인천시 종합건설본부가 시행하는 동인천역 북광장 조성사업 현장이다. 이씨는 "내 가게 있던 '양키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 시장에서 66㎡(20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인테리어 사업을 했다. 연매출이 1억 원을 넘었다.

하지만 2006년 재선에 성공한 안상수 당시 인천시장이 추진한 구도심 재생사업으로 그의 삶은 뒤틀렸다. 동인천역 4번 출구 앞 양키시장 일부가 개발에 포함됐다. 이씨에 대한 보상금은 27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여기에 보증금 1000만 원을 더해도 비슷한 크기의 공간을 마련할 수 없었다. 그는 싸웠다. 하지만 졌다. 그 사이 부인과 이혼했다.

지난 6월 그의 가게는 강제 철거를 당했다. 인천시는 철거 비용 2500만 원을 청구했다. 보증을 잘못 서 보상금은 압류당한 터라,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차량에서 풍찬노숙을 시작했다. 이씨는 "여름에는 빗물을 받아 씻기도 했다"며 "열흘 전 35만 원을 빌려 노점을 했다, 그래도 특별한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덜 춥기만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곳곳에서 재개발이 벌어지고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씨의 사례에서 보듯 인천에서는 구도심 재생사업으로 곳곳에서 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씨처럼 강제 철거로 길바닥으로 내몰리는가 하면, 시행사와 주민들의 분쟁으로 '유령 도시'가 된 곳도 있다. 바로 인천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사업지역이다.

'유령도시' 루원시티, 3년 동안 폐허로 방치돼

▲ 인천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사업구역은 '유령도시'다. 초저녁에도 가로등을 빼면 불빛을 찾아볼 수 없다. 가로등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흐릿한 달빛으로 건물의 위치를 분간할 뿐이었다. ⓒ 선대식


"여기서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겁니다."

오후 7시 가정동 봉수초등학교 앞에서 김종학(가명·46)씨는 씩씩 거렸다. 김씨는 "초등학교 정문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인데 덩치 있는 저도 무서워서 이곳에 못 들어갈 정도로 폐허가 됐다"며 "딸자식 있는 부모 마음은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이곳은 초저녁인데도 가로등을 빼면 불빛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가로등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흐릿한 달빛으로 건물의 위치를 분간할 뿐이었다. 오래된 집들은 창문이 떨어져나가고 유리가 바닥에 떨어져 깨진 곳이 많았다. 집집마다 'X', '공가'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철조망이 처진 곳도 있다. 곳곳에 '위험'이라는 공고문이 붙었다.

가정오거리를 중심으로 한 가정동 일대 약 1㎢ 지역의 풍경은 비슷하다. 이곳이 '유령도시'로 불리는 이유다. 이곳은 지난 2004년 가정동 뉴타운으로 개발사업이 추진됐고, 2008년 '루원시티'로 이름으로 바꿔달았다. 2008년 6월 보상이 시작됐다. 1만5000세대 대부분은 2009년 초 보상을 받고 집과 가게를 비웠다.

하지만 120세대는 떠나지 못하고 남았다. 지하철 공사를 위해 일부만 철거됐을 뿐, 루원시티 사업은 멈췄다. 사업자인 인천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도 사업에 소극적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 탓에 수천억 원의 달하는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구재용 인천시의원은 "당장 사업이 진행되기 어렵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닫힌 한 휴대전화 가게에는 2009년 1~3월 방영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또한 당시 유행했던 터치폰 광고도 보였다. 2009년 2~3월의 우편물도 눈에 띄었다. 한 주민은 "무리한 개발과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사업이 중단됐다, 2009년 초 이후 지금까지 3년 동안 가정오거리 일대는 폐허로 방치됐다"고 말했다.

못나가는 사람들 "쫓겨나면 길바닥으로, 감옥이 더 낫다"

▲ 인천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사업지역은 폐허 상태가 된 지 3년이 됐다오래된 집들은 창문이 떨어져나가고 유리가 바닥에 떨어져 깨진 곳이 많았다. 집집마다 'X', '공가'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철조망이 처진 곳도 있다. ⓒ 선대식


'유령도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남아있을까? 1998년 사업을 하다가 수십억 원 규모의 부도를 낸 적이 있는 김석민(가명·51)씨는 2008년 서울에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 이곳의 56㎡(17평)형 아파트는 20만 원(보증금 1000만 원)의 월세만 내면 살 수 있었다. 그가 버는 돈은 모두 은행에 압류된다. 부인이 일해 번 돈으로 네 식구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후 2009년 9월 아파트 소유자가 보상을 받고 나갔다. 토지주택공사는 김씨에게 집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규모 이주로 인근 전셋값이 올라, 김씨가 갈 곳은 없었다. 공사는 불법으로 아파트를 점유하고 있다며 매월 22만 원의 임대료를 부과했다. 현재까지 보증금의 절반가량인 460만 원에 달한다. 공사는 곧 강제철거에 나서겠다고 했다.

김씨는 "공사는 한때 4000만 원의 대출을 해준다고 했지만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어차피 쫓겨나도 얼어 죽을 테니 저항이나 해보고 죽자는 생각에 집에 부탄가스를 가져다 놓았다, 어쩌면 감옥에서 지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아있는 사람들 중엔 토지주도 있다. 이민호(가명)씨는 "땅 165㎡(50평)에 단독주택을 가지고 있었는데, 3.3㎡당 390만 원의 토지보상금을 포함해 모두 2억 원의 보상금이 나왔다"며 "하지만 인근 83㎡(25평)형 아파트 가격은 2억 원을 넘는다, 수평이동이 안 되는데 어떻게 나가겠느냐"고 밝혔다.

이미 보상을 받았다가 실패를 경험한 후 다시 돌아온 이도 있다. 최민국(가명, 47)씨는 "가정동에서 23년 간 문구점을 운영했는데, 한때 순이익이 월 700만 원에 달할 정도로 잘됐다"며 "권리금만 1억5000만 원이 넘는 곳인데, 빨리 보상받아야 한다는 소리에 2009년 8100만 원 보상을 받고 나갔는데 실패했다, 계속 여기서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

유령도시는 당분간 그대로 방치될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 지역개발과 관계자는 "감정평가사들이 보상금액을 정하는 것으로, 보상을 더 해줄 수는 없다"며 "또한 부동산 경기 침체로 당초 사업 계획으로는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천시 관계자는 "구도심 재생사업은 진퇴양난인 상황이라, 어째해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가정동에서는 올해 초 영화 <통증>을 촬영했다. 영화에서 배우 권상우가 분한 남자 주인공 남순은 재개발 현장 용역으로 일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는다. 한 가정동 주민은 영화의 결말이 촬영된 빌딩을 가리키며 "가정동에서 영화를 찍었지만, 이곳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며 "서울의 뉴타운 지역 어디 곳도 아직은 유령도시가 되지 않았지만, 곧 유령도시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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