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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한 아이가 미래에도 행복합니다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⑮] 혁신학교에 대한 괴담 또는 오해-5

등록|2011.11.26 17:54 수정|2011.11.26 17:54
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기자말>

혁신학교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오해하고 있는 말 중에는 "혁신학교는 공부는 안 하나요?" , "혁신학교는 시험은 안 보나요?" , "혁신학교에서는 경쟁을 안 한다는데, 경쟁을 해야 발전이 있지 않나요?" , "혁신학교 아이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학부모들이 많이 해오는 질문은 "혁신학교 철학과 방법은 다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못에서 노는 아이들 쓸데없는 분수대로 만든 연못은 아이들의 인기있는 놀이터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연못에 있는 생물을 관찰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 이부영


혁신학교는 현실을 외면한다고?

"혁신학교 철학과 방법은 다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서울형 혁신학교의 철학은 경쟁을 통한 공부가 아닌 협력하는 공부를 하고, 암기하면서 하는 지겨운 공부가 아닌 몸으로 체험하면서 하는 즐거운 공부를 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구별하지 않고, 점수로 나타내는 사지선다형 일제고사형태의 평가가가 아닌 특징 관찰 중심의 과정 평가를 하면서 저마다 가진 다른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지향합니다. 학부모들이 이런 교육 철학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그러나 혁신학교 교육철학에 동의한다면서 '맞습니다. 초등학생들은 그렇게 공부하는 게 맞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꼭 등장하는 말이 '하지만...'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서 월급많이 받는 대기업이나 안정적인 직장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려면 경쟁해야 하고, 필기시험도 잘 봐야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미리 경쟁을 해 보고, 달달 외는 시험을 미리 적응시켜야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노는 시간에 아이들이 노는 모습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면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잘 노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부입니다. ⓒ 이부영


여전히 자녀 적성·능력에 상관없이 의사와 판검사 되기 바라는 부모들

6학년 아이가 앞으로 수능 시험을 보려면 6년이란 세월 뒤이고, 대기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보려면 적어도 10년 뒤에 일입니다. 아이가 대기업에 취직할 지, 공무원이 될 지 아이의 적성도 파악이 안 된 상황입니다. 또 교육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자주 바뀌는 우리나라에서 6년 뒤에도 지금의 수능이 그대로 있을지 모릅니다. 그때도 지금의 명문대가 그대로 명문대로 남아있을지, 지금의 대기업이 그때도 대기업으로 남아 있을지, 공무원은 10여 년 뒤에도 과연 안정적인 직업으로 남아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모들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장하준씨가 어느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꼽은 세 가지 중 한 가지가 바로 부모들이 아이들한테 '의사와 판검사가 되라'고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만나는 학부모들 중 많은 분들이 세상이 많이 바뀌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바뀌어도 부모들은 여전히 자신의 자녀가 자녀의 적성과 능력에 상관없이 의사와 판검사가 되기를 바라는 분이 많습니다. 그럴려면 시험을 잘 봐야 한다고 아이들을 책상 앞에 앉혀서 책을 달달 외우고 시험 잘 보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도 주장합니다.

이런 부모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되도록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려고 체험활동을 통한 교육을 많이 하면, '학교가 아이들에게 공부는 안 가르치고 애들 얼굴 까맣게 타도록 놀러만 다닌다'고 비방을 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또 다른 부모들은 공부는 가정에서 알아서 학원에서 빡세게 시킬 테니 학교에서는 그냥 아이들 괴롭히지 말고 편하게 놀려만 달라고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런 부모들을 만나면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공부,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밤늦도록 계획을 짜서 활동 중 안전사고 책임과 아이들 관리 부담이 큼에도 열심히 실행하려고 애쓰는 교사들은 그만 힘이 쭈욱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6년 또는 10년 뒤, 그동안 그래왔듯이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지금 현재의 세상 상황대로 아이들을 그에 맞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암만봐도 현명하지 못한 생각입니다. 또한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보류하고 억지로 참고 견디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이미 낡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지금 충분히 행복한 아이는 미래에 어려운 일을 헤쳐나갈 힘 얻습니다

지금 불행한 아이는 결코 미래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행복한 아이들이 미래에도 분명 행복합니다. 지금 현재에 닥친 문제를 잘 해결하는 아이는 미래에 어떤 문제가 닥쳐도 능히 헤쳐나갈 힘을 얻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대신에 지금 현재 아이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는 어떤 일을 할 때 눈이 반짝이는지, 가슴이 뛰는지, 목소리가 커지는지, 발자국 소리가 세지는지, 말이 많아지는지를요.

이런 것들은 책을 달달 외우고 시험을 많이 볼 때보다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때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공부를 즐겁게 하고 잘 익힙니다. 아이들 발달 단계를 보더라도 이 시기가 온몸으로 세상을 배우면서 온전히 골고루 성장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온몸으로 세상을 부딪혀서 충분히 배운 아이는 앞으로 몇 년 뒤에 책상에 앉아서 책을 달달 외는 공부를 할 때도, 6년 뒤 또는 10년 뒤 경쟁으로 하는 오지선다형 지필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니, 이렇게 온몸으로 행복하게 공부한 아이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오지선다형 시험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는 책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삶 속에서 온몸을 통해서 배우는 공부라는 것을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이 꼭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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