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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나간 죄? 세종대 인기 강좌, 왜 폐강됐나

[심층취재] 졸업생도 청강하는 회화과 '이론과 실제'를 둘러싼 의문들

등록|2011.11.28 17:43 수정|2011.11.28 17:43

▲ 김동우 교수가 담당하는 토론식 강좌인 '이론과 실제'의 수업장면 ⓒ 정운현


지난 16일 수요일 오후 6시반께,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서 내려 세종대학교 진관홀 402호를 찾았습니다. 이날 이곳에서 열리는 '공개강좌'를 한번 들어볼 참이었습니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법 넓직한 강의실에는 10여 명의 남녀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교단에서는 교수 대신 한 여학생이 프로젝트에 PPT 자료를 켜놓고 타 대학 미대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발표하고 있었는데 얼핏 봐도 수업 분위기가 좀 달랐습니다. 우선 사회대나 인문대도 아닌 미대인데다 대학원도 아닌 학부 수업임에도 토론식 수업으로 진행되는 것이 그랬습니다. 서울시내 모 대학의 한 미대 교수는 "미대의 경우 실기·이론수업이 대부분이며 학부에서 토론식 수업을 채택한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안다"며 "다만 대학원의 경우 강의식은 물론 세미나 수업도 더러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수업은 예체대 회화과 김동우(62, 조각 전공) 교수가 맡은 '이론과 실제'라는 과목으로, 수업 진행방식은 물론 강좌 개설 취지도 좀 남달라 보였습니다. 김 교수는 "미대 수업의 경우 실기수업은 회화나 조각의 기술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으며, 이론수업인 미학, 서양미술사 등은 실제 작품제작에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기존 미대의 커리큘럼은 공허한 교양수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긴데 김 교수는 평소 이런 점을 못내 아쉬워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김 교수는 회화과 동료교수(6명) 전원의 합의를 얻어 2010년 2학기부터 작품제작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론과 실제'라는 토론수업을 개설해 이 강좌를 맡아 왔습니다. 김 교수는 미래의 작가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고 오늘날 미술이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한편 학생들 스스로 공부하는 방식을 도입해 보고자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우선 틀에 박힌, 맹목적이고 현실감 없는 수업을 과감히 탈피하기 위해 유럽식의 토론식 수업을 채택하였습니다. 특히 포스트모던 미술에 있어서 작품의 주제로서 텍스트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토론주제 역시 미술로만 국한하지 않고 역사와 시대상황 등을 반영하여 생동감 있는 수업으로 바꾸었습니다. 즉, 예술과 인간의 본질문제, 정체성, 환경과 복지 등 사회문제를 과감하게 토론대상으로 끌어들이고 학생들로 하여금 국내외 작가 탐구나 타 대학의 유능한 교수 인터뷰도 과감하게 시도해보도록 하였습니다. 김 교수로서는 일종의 모험을 한 셈이었는데, 뜻밖에도 '대박'이 터졌습니다. 회화과 선택과목의 경우 수강생이 보통 10여 명 정도인데 이 강좌에 3·4학년 80명 중 33명이 수강신청을 한 것입니다. 이는 학생들이 이런 강의에 목말라 있었다는 반증인 셈이지요.

80명 중 33명이 신청한 인기강좌... "특정과목에 학생 몰려서" 문제?

▲ 작년 2학기말 '이론과 실제' 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이 카페에 올린 수강 소감 ⓒ 정운현


한편, 일주일에 두 시간만으로는 학생들의 학구열을 채울 수가 없게 되자 학생들이 주도해 인터넷에 카페 '세종대 회화과 이론과 실제'를 개설(2010.9.12)해 온-오프 병행수업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명씩 총 7개조로 편성해 각 조마다 조장을 두고 수업준비와 정보교환 등을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데, 주말이면 새벽까지 이곳에서 김 교수와 학생들이 토론을 벌이기도 합니다.  마치 동호인 모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이 카페는 참여 열기가 높은데 더 놀라운 것은 회화과 졸업생도 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현재 이 강좌는 온-오프라인에서 공개수업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청강생 포함 카페 회원은 88명임)

이날 수업에 청강생으로 참석한 졸업생 최은혜씨(금년 2월 졸업)는 "평소 학과에서 토론수업이 부족해 작품 활동 등에 답답한 점이 많았는데 이 강좌를 통해 그런 점을 해소할 수 있어서 좋다"며 "2, 3학년 때부터 이런 수업을 들었더라면 미래의 작가로서 자질을 키우는 데 더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다른 두 과목에다 작품 활동은 물론 '이론과 실제'에 쏟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김 교수 몸은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는 "'teaching is learning(가르침이 곧 배움이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공부가 많이 된다"며 흡족해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2010년 강의평가에서 5점 만점에 4.93점(교수 전체평균 4.23, 총 1855개 강좌 중 29위)을 받아 객관적으로도 이 강좌가 우수강좌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강좌를 개설한지 겨우 한 학기만에 뜻밖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 교수가 진행하는 '이론과 실제' 강좌는 현재 '무학점 강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강좌 수강생들은 수업을 들어도 정식으로 학점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이유는 학교측에서 이 강좌를 폐강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회화과에서 최고 인기강좌인 '이론과 실제'는 대체 어떤 연유로 폐강됐을까요?

김동우 교수는 지난 5월 2일 세종대 교수 및 직원 전체를 상대로 '세종대학교 구성원들에게'라는 장문의 이메일을 하나 보냈습니다. 이 글에는 '이론과 실제' 강좌가 개설된 배경과 또 폐강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이 소상히 언급돼 있습니다. 그 내용의 대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9년 2학기 들어 예체대 학장이 된 회화과 김종학(57) 교수는 2학기 개강을 앞두고 당시 김동우 교수가 맡아오던 1학년 (1·2반) 드로잉 수업 중 한 강좌를 시간강사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김 교수가 이를 거부하자 김 학장은 자신을 거쳐 교무처로 올라가는 회화과 강의시간표 결재 거부로 맞섰습니다. 그러던 중 그해 12월말 회화과의 한 동료교수의 중재로 김 교수는 1학년 1·2반(분반 수업)중 하나를 양보하였습니다. 그 대신 3, 4학년 대상으로 새 강좌를 하나 개설해 이를 김 교수가 맡기로 김 학장을 포함해 회화과 교수 전원이 합의하였습니다. 2010년 4월 14일 회화과 교수회의의 합의를 근거로 교무처에 '이론과 실제' 과목 개설 협조문을 올렸습니다. 이후 절차를 거쳐 정식결재를 받아 2010년 2학기부터 '이론과 실제'는 회화과 3, 4학년 대상 선택과목(2시간, 2학점)으로 개설되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대로 '이론과 실제'는 개설 후 회화과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학기 중인 2010년 10월 중순쯤 학과 교수회의에서 김종학 학장이 돌연 '이론과 실제'의 폐강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김 학장은 '이론과 실제'가 큰 인기를 끌면서 다른 선택과목의 학생 수가 줄어들어 (타 과목으로의 학생 분산을 위해) 폐강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김 학장은 지난 21, 22일 두 차례에 걸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특정과목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3학년 전공 심화과정을 맡기에는 김 교수가 부적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즉, 조각 전공인 김 교수가 회화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인 셈입니다.  

수강생들 폐강반대 서명운동... 감사실 "적법한 절차 거치지 않았다"

▲ '이론과 실제2'를 김동우 교수가 맡기로 합의한 회화과 교수회의 회의록(2010. 10. 27) ⓒ 정운현


결국 다시 회화과 교수회의가 열리게 됐습니다. 2010년 10월 27일, 학과 교수 5명중(6명중 1명은 안식년) 4명이 참석한(김종학 학장은 불참) 가운데 열린 교수회의에서 2011년 1학기 '이론과 실제'를 김 교수가 맡는 것으로 최종 합의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2011년 1학기 회화과 강의편성표를 교무처에 결재를 올렸는데, 김 학장은 결재를 거부하면서 '이론과 실제'를 폐강시킬 것을 거듭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단과대 학장은 중간 결재자로서 대학본부로 올라가는 결재안의 민주적 절차 여부를 점검하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김 학장이 학과 교수들이 합의한 사안에 대해 결재를 거부하는 것은 일종의 월권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김 학장의 주장은 다릅니다. 김 학장은 "2010년 10월 27일 열린 교수회의에서의 합의는 학과 화합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학과 교수들 간에 이견이 남아 있어 결재를 유보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후 감사실 감사 때 회화과 교수들은 김 학장의 의견에 동조한 바 있습니다.)

한편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2010년 11월 중순 '이론과 실제' 수강생들은 폐강반대 서명운동을 벌여 120여 명(총 재적학생 160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총장과 교무처장에게 제출하였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10년 말 대학본부 감사실에서 회화과 교수들을 상대로 경위 조사를 벌였는데, 금년 1월 28일자로 감사실의 의견이 첨부된 교무처장 명의의 '협조문'이 회화과 사무실에 배달되었습니다. 내용인 즉 "('이론과 실제'는) 학과회의만 거치고 교육과정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에 적법한 절차를 수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학과 교수 전원의 동의를 받아 과목개설 신청을 다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과목개설 주무부서인 교무처의 최종 책임자인 교무처장의 결재가 나 이미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한 과목을 이제 와서 잘못 개설한 과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교무처장 그 스스로 자신의 '불찰'을 실토한 셈입니다.

'이론과 실제'의 폐강 배경에 대해 대학본부의 권오진 감사실장(전자공학과 교수)은 21일 전화인터뷰에서 "교과위의 심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거듭 밝혔습니다. 세종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규정집 제2편(위원회)의 '교육과정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교과위는 '교육과정 개편 계획 수립 및 심의' 등을 맡고 있는데, "교육과정은 4년마다 정기적으로 개편하되, 학제 개편 등 부득이한 경우 정기 개정 학년도가 아니라도 개편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대학의 전반적인 교육과정 개편에 관해 언급한 것으로, 학과 단위의 개별과목 개설(혹은 폐강)에 대한 구체적인 심의규정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대학당국이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심의규정을 들어 '이론과 실제' 폐강을 주장하는 김 학장 편을 들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입니다.

수업내용 지적은 핑계이고, 사실은 김동우 교수가 미운 것?

▲ 김동우 세종대 회화과 교수가 2002년 4월 18일 세종대 정문에서 부당해직 철회 및 원상복직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자료사진). ⓒ 권우성


설사 학교측의 주장대로 '이론과 실제' 과목이 소정의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교과내용에 별 문제가 없고 학생 다수가 수강을 희망한다면 대학이 이를 소급해 처리하는 것이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도 굳이 회화과 교수 전원의 동의를 받아 다시 과목개설 신청을 하라는 세종대의 태도는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회화과 교수인 김 학장이 이미 '이론과 실제' 폐강을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기 때문에 회화과 교수 전원의 동의를 받아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론과 실제'는 전공필수도 아니고 수없이 많은 전공선택 가운데 하나입니다. 소비자인 학생들이 수강여부를 선택하게 하면 될 텐데, 현실에서는 김 학장과 대학당국이 나서 '이론과 실제'를 폐강시킨 모양새가 됐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론과 실제' 폐강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이론과 실제' 수업내용이 아니라 담당교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제' 강좌를 담당해온 김동우 교수는 지난 2002년 주명건 전 재단이사장(현 명예이사장)의 소위 '8등신 모자상' 제작 요구를 거부하다가 재임용에서 탈락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김 교수는 재임용 탈락에 항의하며 3년여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3년 6개월 만인 2005년 9월 복직한 후 현재 세종대 교수협의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세종대 입장에서 보면 김 교수는 반가워 할 수만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게다가 대학 측은 김 교수가 '이론과 실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의식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교수의 '이론과 실제'가 이런 '전과교수'라는 낙인 때문에 수강생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끝내 폐강되고 만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끝으로 '이론과 실제'를 청강하고 있는 한 재학생(2학년)의 수강 소감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을까 합니다.

"실기 기법과 기예(技藝)를 주로 가르치는 회화과의 기존 수업은 문화센터 수준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목수나 장인을 만들어내는 데 불과합니다. 반면 '이론과 실천' 수업은 작가를 만들어주는 그런 수업입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자기식의 작업방식을 강요하지만 김동우 교수님은 자신의 전공을 한 번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김 교수님 수업시간은 바로 내 수업시간입니다. 특히 '이론과 실제'는 토론식 수업이어서 수업에 앞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되었고, 또 수없이 많은 외국작가를 스스로 탐구하면서 작가로서의 기본 자질을 다지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론과 실제'를 수강하면 굳이 해외로 유학을 갈 필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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