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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톤 소형트럭, '칼의 달인'이 돌아왔다

'칼갈이' 백기왕씨의 '고진감래' 이야기

등록|2011.12.02 15:22 수정|2011.12.02 15:22

백기왕 씨마침 인터뷰 하던 안성시내 한 다방에서 칼을 갈아 달라고 했다. 기왕씨가 그 칼을 갈고 난 후 "이렇게 갈았시유"라며 자신의 작품을 내밀고 있다. 자신의 애마 앞에서. ⓒ 송상호


'칼의 달인', 그가 안성에 왔다. 그는 매주 목요일이면 안성에 온다. 다른 날은 천안, 평택 등에 다닌다. 그가 안성에 오는 날(12월 1일)을 손꼽아(?) 기다리다 만났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칼갈이'라고 소개한다. 좀 더 고상하게 이야기 하면 '칼 관리사'다. 이를테면 주치의 개념이다. 식칼은 사용할 동안 내내 갈아줘야 한다. 칼날을 계속해서 관리해주는 사람이란 이야기다.

0.5톤 소형트럭에 칼 가는 기계를 싣고 다닌다. 칼을 수거하면 그 트럭 안에서 기계로 칼을 간다. 트럭이 조그만 이유가 있다. 기계가 그리 크지 않아서도 있지만, 무엇보다 트럭이 작아 아무데나 주차하기에도 좋다.

그는 식당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음식점은 물론이고 학교 식당, 병원 식당, 가정집, 마을회관 등. 칼만 가는 게 아니다. 가위도 간다. 하루에 칼과 가위를 100개 까지도 갈아보았단다.

그가 가는 곳이 거의 식당이다 보니 식사 대접을 많이 받는다. 때론 김밥 같은 간식을 싸주기도 한다. 칼도 갈아주고, 돈도 벌고, 이웃의 정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요즘 실업 서민, 칼갈이로 많이 나서.

"최근 2년 사이 부쩍 '칼갈이'들이 늘어난 거 같어유"

기왕 씨의 증언이다. 그만해도 그렇다. 거의 11년 동안 치킨 집을 했었다. 그 일이 너무 고되어 육체에 병을 얻고, 가정적인 아픔도 겪었다. 그 후 소위 '백수생활'을 4년이나 하게 되었다.

작업 중멀리서 보니 이런 풍경이다. 0.5톤 트럭의 문을 열면 그곳이 곧 작업장이 된다. 움직이는 기업, 바로 그것이다. ⓒ 송상호


고육지책으로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붕어빵 장사를 시작 했지만, 큰 단점이 있었다. 바로 겨울 아니면 장사가 힘들다는 거.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붕어빵 장사를 하다가 길거리에 지나가는 '칼갈이 차'를 보았다. 그 차를 보는 순간, '그래 바로 저거다'란 생각이 들었단다. 원래 농부였던 그는 어렸을 적부터 숫돌에 낫과 칼을 갈아보았다.

이렇듯 '칼갈이'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서민들이 먹고살기 힘들다는 방증이다. 일자리는 물론이고, 자영업을 할 수 있는 그 무엇조차 쉽지 않다는 요즘 현상이다.

칼 가는 감이 오질 않아 그만두고 싶었다.

이런 그도 처음부터 칼을 잘 갈았던 건 아니다. 시작한 1년까지는 헤맸다. 그놈의 감이 오질 않았다. 칼을 가는 각도와 속도가 잘 맞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수없이 그만두어야 하나를 고민했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한 이 일인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칼 갈기를 연습했다. 갈고 또 갈았다. 1년 넘게 그런 고통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고객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무료로 갈아 준다고 해도 마다했다.

하지만, 그는 그만 둘 수 없었다. 2천만 원 넘게 투자한 돈도 돈이지만, 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무언가 하지 않았을 때의 고통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붕어빵 장사와 칼갈이가 아니었던가.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여기서 무너지면 나는 끝이다'란 절박감이 그에게 있었다.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그런 절박감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냈다.

그렇게 칼을 갈고 또 갈다가 어느 순간에 감이 왔다. '아하, 바로 이거구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의 눈이 반짝인다. 소위 득도의 순간이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빛을 보는 그 기쁨이 오죽했겠는가.

삼매경칼을 가는 순간 그의 얼굴이 변했다. 그 어느 순간보다 진지하게 집중했다. 이것이 달인들이나 한다는 고도의 '삼매경'순간이렷다. 그는 이렇게 3차 공정(가는 기계가 3개여서 3차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을 거쳐야 제대로 칼의 날이 선단다. ⓒ 송상호


"이젠 잃어버린 단골 찾으러 가유"

그를 만나던 날, 인터뷰할 장소가 마땅찮아 안성시내 한 다방을 택했다. 인터뷰 도중 한통의 전화가 왔다.

"여기 00마을 회관인데, 언제 칼 갈러 오실거유?"

인터뷰가 끝나고 일어서려니 다방 사장이 말을 건넨다.

"아니, 아저씨 아녀유. 안 그래도 연락할라 했는디. 잘됐네유."

그녀는 주방에서 칼과 가위를 주섬주섬 챙겨 나온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그는 칼과 가위를 대 여섯 개나 가는 쾌거를 거뒀다.

그렇다. '칼의 달인', 그가 돌아왔다. 이젠 이름만 아닌 실력으로 '칼의 달인'이 되어 돌아왔다. 모든 고통을 이겨낸 진정한 '삶의 달인'이 되어 그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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